마음까지 침범하는 암, 혼자 해결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암 환자의 정신건강 관리]
암에 걸릴 확률 30% 시대
정체성과 삶의 의미 흔들려
가족 지지·의사와 대화 중요
개개인 대처 방식 존중해야
진단 초기 우울증·자살 위험↑
치료 않으면 예후 나쁠 가능성
'암'은 이미 특별한 소수가 아니라 모두의 삶과 얽힌 질환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대 수명까지 생존한다면 암에 걸릴 확률은 남녀 모두 30%를 넘는다. 암 환자와 완치 후 생존자를 포함한 암 유병률에 따르면 국민 20명 중 1명은 '암 유병자'다. 65세 이상은 7명 중 1명 꼴이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정신건강의학과 심인희 주임과장은 "암 환자 정신 건강의 권위자인 홀랜드 박사는 암이 다양한 장기를 침범할 수 있는 질환인 것에 빗대 암이 공통적으로 침범하는 장기로 '마음'을 든다"며 "대부분의 암 환자가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함께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암을 맞는 방식에 정답은 없다
암 진단은 평범한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진단과 함께 환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암 환자'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족 내에서는 돌봄의 주체에서 돌봄을 받는 대상으로 전환될 수 있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장에서 환자로서 배려를 받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일상에서도 사소한 증상이 모두 암과 관련된 것은 아닌지 신경 쓰거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불안에 시달리는 일이 잦아진다.
암 치료 과정 역시 환자에게 큰 부담을 준다. 수술을 앞둔 두려움, 항암요법으로 인한 오심과 구토, 피로감, 식욕 저하, 호흡 곤란, 탈모와 같은 외모 변화 등은 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삶의 의미가 흔들리면서 정신적 여파는 깊어진다. 환자는 중대한 질병 앞에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다른 환자의 사망은 삶과 죽음, 인간의 유한성을 깊이 성찰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고 회피하려 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
심 과장은 "암 환자의 정신적인 고통은 슬픔, 두려움, 걱정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에서부터 고립감, 실존적 위기, 우울, 불안, 불면, 섬망 등 치료가 필요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단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단계에서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이야기하거나 심리적 지지를 받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암 치료 과정에서는 암의 상태, 현재 가능한 치료법, 앞으로의 기대 수준, 환자가 할 수 있는 일 등에 대해 담당 의사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명심할 것은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보편적인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만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면 가족을 실망시킬까봐 태연한 척 한다면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심 과장은 "암 환자는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지금은 도움을 받아야 할 중요한 시간임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족과 의료진 또한 치료에 지장이 없다면 환자 개개인의 대처 방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개별화된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울증 방치하면 암 치료 부정적
우울증은 암 환자에서 나타나는 주요 정신 질환 중 하나로, 삶의 질뿐 아니라 암 치료의 예후와 자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무력감과 쓸모 없다는 느낌, 암 치료 부작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수면 장애나 식욕 저하, 부적절한 죄책감, 자해나 자살 시도 등과 같은 우울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조기에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전문가를 통한 개별화된 약물 치료나 정신사회적 개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암 환자는 특히 진단 초기 1년 동안 우울증과 자살 위험이 일반 인구에 비해 현저히 높다. 암 환자의 배우자와 일반인의 배우자 간의 정신 건강을 비교했을 때도 이러한 경향이 유사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암 환자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1.5배 이상 높으며, 자살의 약 75%가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 과장은 "우울증 치료가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연장한다는 명확한 근거는 부족하지만, 치료하지 않을 경우 예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우울증이 동반된 암 환자는 삶의 질이 낮고, 의학적 치료에 덜 협조적이며, 입원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암 환자 중 약 20%가 우울증을 경험하는 것에 비해 실제로 치료를 받는 환자는 적다. 특히 국내 암 환자 우울증 유병률 조사를 보면 외국 연구들에 비해 낮게 나타나는데, 이는 우울증 유병률 자체가 낮다기보다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환자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심인희 과장은 "암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정신적 고통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통합적인 지지 의료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암 환자의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환기하고 개선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