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출발 영남여성건축가회
국내 최초의 여성 건축사는 한국여성건축가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한 지순(1935~2021) 건축가다. 그는 1966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때만 해도 한국 건축계는 사실상 금녀 지대였다. 그 시절 건축계의 금녀 분위기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프랑스만 해도 1960년대까지 여성 건축가의 위상이 매우 낮았다. 프랑스에서는 군복무를 마친 남성만이 공공청사 설계를 맡을 수 있게 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1991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프리츠커상이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에게 주어졌다. 그는 30년 동안 동업자이자 아내인 데니즈 스콧 브라운과 함께 작업을 해왔다. 그런데도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브라운의 이름과 업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크게 줄어드는 등 변화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이를테면 2021년 전국 각 대학 건축학과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은 40%를 넘었으며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한 여성의 비율도 수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증가했다. 세계적으로 여성 건축가들의 활약도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프리츠커상 수상자 중 여성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자하 하디드가 있다. 그는 프리츠커상을 수상(2004년)한 최초의 여성 건축가다. 이어 일본의 여성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2010년), 아일랜드의 여성 듀오 건축가 이본 패럴과 셀리 맥나마라(2020년)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2021년에는 안 라카통이라는 여성 건축가가 받았다. 여성 건축가라는 사실 자체가 여전히 일부에서는 편견의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남성 중심이었던 건축계에서 이 같은 여성의 두각은 분명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여성건축가협회는 여성 건축인의 자질 향상과 권익 신장 등을 목표로 1982년 창립한 단체다. 최근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영남여성건축가회가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부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여성 건축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여성이 전국 단위 또는 지회 단위 건축사회나 건축가회 회장을 맡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성 건축가들은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의지가 강한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강점을 잘 살려 건축 분야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영남여성건축가회 창립을 계기로 지역 정체성을 반영한 창의적인 건축, 소통하는 건축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른바 혼(魂), 창(創), 통(通)의 건축 말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