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연구 예산, 정치 바람에 삭감 불똥?
시의회 원안서 10% 감액 시도
북극 물류 선점 경쟁에 역행
李 대표 언급에 여권 반발 기류
북극항로 이슈가 정치 쟁점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해운항만 관련 학계와 업계에서는 정파를 떠나 북극항로 대응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3일 부산시와 부산시의회에 따르면 ‘북극항로 거점 항구 부산 조성을 위한 연구 용역’ 추경 예산 2억 원이 시의회에 상정돼 2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시는 지난해 12월 13일 시, 연구·공공 기관, 업계 관계자 등 19명으로 ‘북극항로 개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지난 2월 13일 TF 첫 회의를 열어 북극항로 관련 각국 동향, 운항 경험과 시사점, 부산시가 준비할 일 등을 토론한 뒤 연구용역을 추진했다. 연구 주제는 북극항로 시대에 대비한 부산항 추가 조성 방안부터 북극항로 연계 해운항만산업 활성화 방안 등으로 범위가 매우 넓다.
2014년부터 선행 연구가 이뤄졌지만 국제 동향 분석 수준의 학술적 연구에 그쳐 정책 수립과 사업에 활용할 만한 연구는 부족했다. 시도 이번에 인접 국가와의 협력 방안, 북극 물류 선점을 위한 전략 등 실효성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북극항로 물류 선점과 쇄빙선 등 조선산업 활성화, 천연가스·희토류 등 자원 개발, 선박·해양 금융을 통한 금융 중심지 육성 등 연구 용역을 통해 선제적 정책 과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21일 시의회 해양도시안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는 2억 원 중 2000만 원을 삭감해 예결위에 상정하자는 수정안이 의결됐다. 방대한 연구 주제과 과제를 수행하기에 증액을 해도 부족할 판에 10% 삭감한 것이다. 명분은 기존 연구를 활용해도 되고, 시 재정이 어렵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북극항로를 언급하고, 지난 6일 박형준 부산시장과의 면담에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업은행 이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여권의 반발 기류가 작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시도 지난달 북극항로 TF 발족 회의를 연 이후 추가 일정 논의와 움직임이 없는 답보 상태다. 시 관계자는 “분기별 1회 회의는 열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데 정해진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북극항로는 2030년을 전후해 혹한기를 제외한 연중 상업 운항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항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기존 수에즈운하 항로에 비해 운항 거리와 시간, 연료비가 30% 이상 절감되는 이점이 있다. 또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각국이 ‘북극항로 시대’를 노리고 있고 국내에서는 경북 포항 등 동해안 지자체들이 북극항로 거점 도시를 노린다.
한 연구 기관 관계자는 “미래혁신부시장이 TF장을 직접 맡을 만큼 의지를 보였던 북극항로에 대해 부산시와 지역 여권의 온도가 급속히 식은 느낌”이라며 “북극항로는 거대한 글로벌 시장의 움직임인데,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준비할 타이밍을 놓치고, 경쟁국과 도시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