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연안에 온 향고래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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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로 구분된다. 이빨고래 중 가장 큰 종인 향고래는 ‘향유(香油)고래’로도 불린다. 수컷이 19m, 암컷이 13m까지 자라고, 몸무게는 최대 57t에 달한다. 향고래의 머리는 몸길이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향고래는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이 185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고래다. 2022년 방영된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소개돼 친숙하다.

향고래는 1시간 이상 잠수할 수 있으며, 수심 3000m 이상의 해저까지 내려가 심해에 서식하는 대왕오징어를 포식하기도 한다. 번식기 활동으로 움직임이 약해진 수컷 향고래의 창자에는 향수의 원료로 쓰이는 ‘용연향’이 생기는데, 이를 얻기 위한 무분별한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감했다. 현재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향고래를 멸종취약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07년 보호대상해양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향고래는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 유명한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포경선이 울산 근해에서 5마리의 향고래를 포획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고래류 조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이래, 2004년 3월 경북 포항 구룡포 근해에서 향고래 8마리가 발견됐다. 이후 동해 남부 해역에서 2~3년에 한 번씩 드물게 관찰되다가, 2017년 포항 앞바다에서 암컷과 새끼 등 총 6마리가 발견되기도 했다.

평소 깊은 바다에 사는 향고래가 수심이 5~10m 수준인 전남 광양항 연안을 떠돌다가 엿새 만에 바다로 나가 화제다. 향고래가 연안에서 산 채로 발견된 사례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광양항 연안에 나타난 향고래는 9일 오전까지 항구 주변 얕은 수심에 머무른 뒤 바다로 나갔다. 몸길이는 15m, 무게는 30t 이상의 수컷으로 추정된다. 향고래의 ‘연안행’에 대해 건강 이상, 방향 감각 상실, 탈진 등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됐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는 향고래가 얕은 연안에 장기간 머무르면서 등 부위에 화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다. 해경은 고래 뒤쪽에서 수면을 두드려 소리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연안 밖으로 유도했다. 연안에 머무르는 동안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향고래가 이제는 먼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기를 기원한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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