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 차별 말고 차이로 봐주세요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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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만 빛이 보인다면
시각장애인 부모를 이해할까요
<은설의 하루> 여중생 작가
장애인 인식 바꾸고 싶어서
여러분께 편지를 띄웁니다

부산 맹학교 박은설 양이 학교 교정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 맹학교 박은설 양이 학교 교정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시각장애인 은설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건 지난해 연말이었다. 무장애 그림 동화책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작 참여자 중에 은설이 아빠 박기진, 엄마 김진아 씨가 있었다. 20일 장애인의 날이 가까워지자 은설이가 생각이 났다. 책을 낸 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연락을 했다. 은설의 인터뷰 내용을 일인칭 편지 형태로 지면에 싣는다.

제 이름은 은설입니다. 박은설. 2월에 태어났습니다. 처음엔 아빠 엄마가 은빛 눈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으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사람 이름에 ‘눈 설(雪)’ 자가 들어가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은혜 은(恩)·베풀 설(設)로 지어 주셨습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났냐고요? 대학에서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아빠는 엄마가 쫓아다녀서 결혼해 줬다고, 엄마는 아빠가 매달려서 결혼했다고 하세요. 중학교 2학년인 제가 볼 때는 두 분이 서로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23년 11월에 〈은설의 하루〉라는 책을 냈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제힘으로 글을 써서 책 한 권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그 덕분에 오늘 여러분께 공개 편지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아빠는 제가 다니는 부산맹학교에 교사로 근무하고 계시고, 엄마는 올해초까지 안마원을 운영했습니다. 저도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시각장애인입니다. 은설의 하루가 어떤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 평범한 일상이지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아침이면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뜹니다. 등교길은 아빠랑 함께 가서 좋습니다. 활동 보조인 이모가 오래전부터 도와 주고 계세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장난치고, 공부하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냅니다. 방과 후에는 요일에 따라 좋아하는 색소폰과 보컬 수업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 차별 말고 차이로 봐주세요> <우리 모두가 소중한 존재, 차별 말고 차이로 봐주세요>

하교 후에는 아빠랑 약속한 시간만큼 공부하고, 그 외에는 자유 시간입니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통화하기, 혼자서 책 읽기, 유튜브 보기, 글 쓰고 그림 그리기 등등 재미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저는 색깔을 보고, 형태도 봅니다. 큰 글씨는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나 심지어는 부모님도 제가 거의 못 본다고 취급하는 편이에요. 여러분과 비교하면 저에게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일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이만큼이라도 보는 것이 소중합니다. 안 보이면 좀 답답할 것 같습니다.

장애로 인한 단점이 있지만 장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기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해도 시각 정보가 먼저 들어오니, 그걸 완전히 배제하며 사물 또는 사람을 판단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일 테니까요.

개인적인 장점은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저한테 장애가 없었다면 시각장애인인 엄마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 친한 친구들도 제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단점은 가족끼리만 여행을 가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조금만 더 잘 보였으면 부모님을 모시고 멋진 곳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쉽습니다.

만약 시각장애가 없다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보고 싶습니다. 부모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고, 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경치와 멋진 풍경도 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일출을 보고, 밤에는 수많은 별들을 보며 소원을 빌고 싶습니다.

저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알게 해줍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사는 사회인 만큼 나와 다른 생각들을 책을 통해 접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도 커지지 않을까요. 저만의 글쓰기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쓰다 보면 글이 되고 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이 들어가면 소설이 되고, 리듬을 붙이면 시가 되겠지요. 어떤 문학 작품이든 결국 글쓴이가 말하려는 의도나 주제는 작가의 진실한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쓴 〈은설의 하루〉에서는 ‘나는 나다’라는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특별하든 특별하지 않든, 평범하든 평범하지 않든 나라는 존재의 개성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나는 충분히 소중한 존재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저와 같은 시각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 힘들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저는 아직 무엇이 되고 싶다는 명확한 계획은 없어요. 아빠처럼 특수교사가 되어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저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 주고 싶습니다. 장애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거나 우연한 사고나 질병으로 생깁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고, 그게 우리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장애인을 차별이 아닌 차이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합니다. 여유가 있다면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도움을 준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분명 그 사회는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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