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남고 경력단절도 해결… ‘그릿지’ 일자리 매칭 덕분”
부산 본사 소프트스퀘어드 개발
일자리 연결 플랫폼 ‘그릿지’
‘디지털 노마드’ 업무 방식 제공
공간 제약 없이 재택·원격 가능
IT 기업 부족 지역 개발자 호응
“아기 낳기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행복해요.”
부산에서 거주하는 8년 차 웹 디자이너인 김혜연(30) 씨는 올해 초 아들을 출산했지만, 디자인 외주 업무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보다 더 많은 외주 업무를 맡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의 웹페이지 제작을 총괄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배달의민족, 토스 같은 큰 기업에서 일했던 개발자들과 협업을 진행하는 등 커리어를 풍부하게 쌓아 나가고 있다. 아이를 낳은 김 씨가 부산에 머물면서도 더 많은 급여를 받고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업무 방식 덕이다. 디지털 노마드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공간 제약 없이 재택·원격 근무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부산 지역 개발자에게 새로운 기회
직원 30명가량을 둔 부산에 본사 스타트업 소프트스퀘어드가 운영하는 ‘그릿지’는 디지털 노마드들을 엮는 역할을 한다. 일자리 매칭 플랫폼인 그릿지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개발자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릿지에서는 현재 5000여 명의 개발자들이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다양한 프로젝트과 매칭을 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발굴해 개발자들에게 업무를 맡기는 방식이다.
그릿지는 타 지역에서 ‘좋은’ 일감을 따와 관련 일자리가 많지 않은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연결한다. 수요자와 개발자를 일대일로 매칭해 주는 플랫폼은 많지만, 그릿지처럼 프로젝트를 직접 따오고 계약을 중개하는 곳은 없다.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에 따르면 부산은 과학기술인력을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이 배출한다. 하지만 과학기술 부문 졸업자의 순유출 규모는 2만 100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크다. 김 씨 같은 개발자는 ‘정보통신기술’ 직군으로 분류되는데, 부산에서 정보통신기술 전공자의 과학기술직업 종사율은 13.6%(2023년)로 전국 평균 27.3%보다 훨씬 낮다.
부산 개발자들은 수도권으로 이직도 잦다. 지역에 일할 수 있는 기업이 부족해서다. 부산의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김 씨는 2018년부터 부산 기업 2곳에서 근무했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이라 연차를 쓰기도 힘들었다. 일감이 많지 않은 부산에서는 더 이상 직장을 다니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수도권 이직도 진지하게 고려했지만, 디지털 노마드라는 업무 형태를 접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부산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경력단절 해결을 넘어 커리어하이
그릿지는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개발자들에게 주선한다. 김 씨도 지난해 연예인 ‘이영지’ 홈페이지를 총괄해 제작했는데, 많은 팬이 ‘이영지의 정체성을 잘 담았다’며 김 씨가 만든 홈페이지에 열광했다. 김 씨는 “그전 회사에서는 커리어라고 할 만한 프로젝트를 하지 못했다”며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고, 대단한 개발자들과 협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그릿지는 부산에 본사를 뒀지만 배달의민족이나 토스 같은 전국구 기업들과 협업 기회를 만들고 있다. 그릿지는 프로젝트 성과로 개발자 순위를 매기는데, 김 씨는 최근 상위 10위에 들기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디지털 노마드 업무 방식을 활용한 일자리 매칭 플랫폼은 개발 인재들의 ‘탈부산’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릿지 직원들은 각 인력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제시해 꾸준히 일감을 맡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IT 전문가 떠나면 신산업 동력도 잃어
그릿지는 부산이 신산업으로 키우는 IT 분야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인재들이 부산에서도 양질의 개발 업무를 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방식을 제안했다.
이하늘 소프트스퀘어드 대표는 “부산에 개발자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으로 인재들이 유출될 수밖에 없다”며 “그릿지에서는 지역의 개발자들에게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를 소개함으로써 부산에서도 충분히 대기업과 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김 씨를 비롯한 경력단절 여성들이나 IT 분야를 전공한 대학생들도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을 수 있게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