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부의 기술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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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는 전략적인 칭찬이자 특별한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으로서의 칭찬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수석 편집장을 지낸 리처드 스텐걸의 저서 〈아부의 기술〉에 나오는 말이다. 스텐걸에 따르면 아부가 인류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고대 이집트 시대였다. 이집트는 신이자 왕인 파라오를 정점으로 제사장, 장관, 귀족, 노동자, 하인, 노예 등으로 이뤄진 엄격한 위계 사회였다. 신분 이동이 불가능했던 고대 이집트에서 아부는 절대 권력자인 파라오에게만 집중됐다. 기원전 1500년 전 이집트 관리는 “왕은 모든 이의 부모이며,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칭송했다. 피라미드는 오직 파라오만을 추켜세우기 위한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라오와 같은 절대 권력자라고 할 만하다. 그가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모든 국가가 극도의 불안과 긴장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상호 관세가 오는 7일부터 발효되면 미국 주도의 다자간 자유무역주의 체제는 사실상 끝나고, 각자도생의 보호무역주의가 중심인 새 국제 통상 질서가 도래한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을 앞두고 각국 정상은 트럼프를 향해 ‘아부의 기술’을 부려야 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TV에서나 뵙던 분을 가까이서 뵙는 감동이 각별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2월 백악관에서 국왕의 초청장을 트럼프에게 건네며 “선출직 지도자의 두 차례 국빈 방문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달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로 추천한 서한 사본을 전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트럼프와 무역 합의 발표 뒤 환하게 웃으며 악수했지만, 유럽 언론들은 “EU의 굴욕 협상”이라고 꼬집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달 30일 한국 협상단에 트럼프 상대법을 알려주며 ‘리스펙트’란 단어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물어도 그가 존중받는다고 느끼게끔 답하라는 것이었다. ‘리스펙트’라는 단어 뒤에 ‘아부’의 의미가 함축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첨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지적을 보면 그러하다. 불확실성이 커진 ‘트럼프 관세 시대’에서 각국은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부의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셈이다. 관세 협상에서 드러난 냉혹한 국제질서의 민낯을 보니 이래저래 씁쓸하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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