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 수출’, 퍼주기·수익성 논란에 ‘후폭풍’…탈핵·시민단체 진상조사 촉구
‘26조 잭팟’ 체코 원전, WEC와 이면계약 허상 드러나
‘수출 원전 1기당 물품·일감·로열티 등 1조 원 이상 보장’
연료의 공급권도 웨스팅하우스…계약 유효기간 50년
UAE 원전은 적자 전환…한전·한수원 법적 공방
대통령실, 정부에 체코 원전 수출 진상 파악 지시
지난 8일(현지시간) 체코 두코바니 원전 부지세부조사 착수식에 참가한 내빈들이 부지세부조사를 위한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한수원 제공
중동 시장에 이어 최근 유럽 시장 진출에 성공하며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한국 원전(K원전)이 퍼주기 논란과 수익성 논란 등으로 수출 드라이브에 급제동이 걸렸다. 탈핵·시민단체가 체코 신규 원전사업 등과 관련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대통령실은 체코 원전을 둘러싼 불공정 계약 논란 등과 관련한 진상 파악을 정부에 지시하고 나섰다.
전국 3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탈핵시민행동을 비롯해 에너지정의행동, 환경운동연합 등은 19일 일제히 성명을 내고 윤석열 정부인 지난해 4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중심으로 한 팀코리아가 수주를 확정하고 올해 6월 본계약을 체결한 약 26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원전 2기(두코바니 5·6호기)에 대해 ‘퍼주기·굴욕적 합의’라고 비판하고, 수주계획 전면 재검토와 국정조사 등 철저한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수원·한국전력(한전)과 원전업계, 탈핵·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체코 두코바니 원전사업은 본계약 조건으로 지난 1월 한수원·한전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사(WEC)와 체결한 ‘글로벌 합의문’에 1기당 총 1조 원이 넘는 과다한 물품 및 용역구매 계약 제공, 기술 사용료 납부, 50년 로열티 등 독소조항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합의문에는 한수원·한전 등이 원전을 수출할 때 ‘원전 1기당 6억 5000만 달러(약 9000억 원)어치의 물품 및 용역 구매계약 제공, 1억 7500만 달러(약 2400억 원)의 기술 사용료 납부’와 더불어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모든 차세대 원전 독자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사의 기술 자립 검증을 통과할 것’ 등 굴욕적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체코·사우디아라비아에 소재한 원전의 연료 100%를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고,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도 50%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한국형 원전에 쓰일 연료의 공급권도 웨스팅하우스에 넘어갔다. 계약기간은 무려 50년으로 설정하는 50년 유효기간까지 포함됐다.
한수원은 지난 6월 4일(현지시간) 체코 신규 원전 사업에 대한 본계약을 발주사와 체결했다. 사진은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건설 조감도. 한수원 제공
친원전 정책과 ‘원전 최강국’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체코 두코바니 신규원전 계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24조 원의 대박이 터졌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체코 원전 수출은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 외에도 프랑스와 유럽연합(EU)에서 ‘불공정 수주’라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탈핵시민행동은 성명에서 “체코 원전 수주의 이면계약과 관련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모든 진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며 특히, 체코 원전 사업의 저가수주, 과도한 현지화율 보장, 고정가격 계약 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위험 등을 짚었다.
‘한국형 원전 수출 1호’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총 4기) 사업 역시 초기 7~8% 수익률을 점쳤지만, 공사 기간이 지연되면서 비용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누적수익률은 –0.2%로 떨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금을 정산하는 과정에서 한수원이 런던국제중재법원에 한전을 상대로 한 중재 신청을 내는 등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전의 ‘2025년 상반기 재무제표’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바라카 원전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UAE 원전 사업 등' 항목의 누적 손익은 349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누적 수익률은 -0.2%로 떨어졌다. UAE 원전 사업의 누적 손익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UAE 원전 사업’의 누적 손익은 2023년 말 4350억 원에서 작년 말 722억 원으로 급감한 뒤, 올해 상반기에 적자로 돌아섰다. 누적 수익률도 2023년 말 2.0%에서 2024년 말 0.3%로 낮아진 뒤 결국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한국형 원전 수출 1호’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원전 1~4호기 전경. 한전 제공
총 4기로 구성된 UAE 바라카 원전은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9년 한국이 처음 해외에서 수주한 원전이다. 수주 금액은 약 22조 6000억 원이었다. 2021년 1호기를 시작으로 지난해 4호기까지 순차적으로 상업운전에 들어갔으며, 현재 발주처와 주계약자인 한전이 종합준공을 선언하기 위한 최종 정산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수익성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는 공기 연장이 지목된다. 애초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했으나 실제로는 2024년에야 마지막 4호기가 완공됐다. 이 과정에서 추가로 들어간 비용을 놓고 모기업인 한전과 자회사인 한수원이 이례적인 법적 다툼까지 벌이고 있다.
시운전에 해당하는 운영지원용역(OSS)을 맡은 한수원은 “발주사인 UAE와 한전의 귀책으로 인한 공기 지연과 추가 작업 지시로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며 이를 정산해달라고 요구하는 '클레임'을 한전에 제기했다. 지난 5월에는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한전을 상대로 10억달러의 추가 공사 대금을 정산해달라는 중재 신청도 냈다.
반면 한전은 '팀 코리아' 차원에서 UAE에 추가로 더 들어간 공사비를 받아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양측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에너지시민행동은 “체코 원전 수출이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성과를 위한 것은 아닌지, 핵산업(원전산업)계 만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세금이 지원된 것인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UAE 바라카 원전 역시 제대로 된 조사를 통해 핵발전(원전) 수출을 무조건적인 국익으로 포장하는 것은 허상임일 밝힐 필요가 있다”며 철저한 국정조사와 함께 책임자 처벌, 원전 해외 수주사업 전반에 대한 재검토 등을 촉구했다.
한편,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19일 오전 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에 "관련 보도 내용을 포함해 진상을 파악해 보고하라"며 "체코 원전 수출에 대해 국민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밝혔다.
강 대변인은 "공공기관인 한전과 한수원이 웨스팅하우스와 협상하고 계약을 체결한 과정이 법과 규정에 따라 이뤄졌는지, 원칙과 절차가 다 준수됐는지에 대해 조사하도록 오전 점검 회의에서 비서실장 지시로 결정이 됐다"고 말했다.
송현수 기자 song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