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체제 전환기의 부산과 해역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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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명예교수

오랜만에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가끔 자신의 윤곽을 드러내던 쓰시마는 보이지 않는다. 동백섬 귀퉁이로 광안대교가 지나고 건너편에 있는 이기대 공원을 넘어 영도 아치섬까지 눈에 선연하다. 축복이라고 해도 좋을 만치 아름다운 바다 경관이다. 숲길보다 바닷가 공기가 치유의 효과가 더 크다고 한다. 파도에 휩쓸려 다리를 간질이고 밀려 오가는 물길이 부드럽다. 대양의 느낌? 이 말을 처음 제안한 이는 프랑스 문학가 로맹 롤랑이다. 인도의 종교와 문화에 해박한 그여서인지 그는 ‘대양의 느낌’을 무한히 외부와 연결된 종교적 감성으로 표현했다. 문득 이 말이 떠올랐지만, 바다를 다른 세계로 인식하는 문화에 오래도록 길들여져 쉽게 그 말이 지닌 실감에 닿기 힘들었다.

주변부적 이미지에 머물러온 부산

하지만 동아시아 해역 중심에 위치

수도권 일극체제 속 위상 점점 축소

한국 자본주의 병폐·한계 드러내

해수부 이전은 다극체제 전환 기회

해양수도 위상과 역할 꼭 부여 받길

조선 시대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 대륙은 거대하고 섬과 바다는 형편없이 작아 보인다. 현대에 만들어진 지도도 바다가 지구의 70%가 넘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한다. 사람들은 지도를 따라 세계를 인식하고 그 형상을 믿는다. 대다수 사람은 조선 시대처럼 여전히 한반도를 대륙 쪽에서 바라보고 있다. 열도가 아니라 군도에 가까운 일본의 크기를 잘 모른다. 하물며 동남아와 인도를 접한 태평양과 인도양 그리고 남극해를 시야에 넣기는 힘들다. 일본은 태평양을 바로 접하고 있고 미국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쪽에 두고 있다. 태평양의 패권을 두고 격렬하게 부딪힌 적이 있는 두 나라는 서해와 남해와 동해를 곁에 둔 우리와 다른 인식 지도를 그려 왔다.

부산을 한반도의 끝으로 보는 시각은 아직도 충분히 교정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시대엔 바다를 통해 다가오는 적을 방비하는 군사 기지라는 인식이 많았고 임진왜란 이후엔 병참이 더 강화됐다. 한국전쟁 당시엔 피란지였다. 한시적으로 피란 왔다가 돌아가야 할 후방에 불과했다. 정부가 부산으로 오면서 피란수도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는데 이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한 이들이 적지 않다. 아마 수도라는 매혹적인 말의 위상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내포도 적지 않다. 김동리, 박경리, 이범선, 이호철, 황순원 등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부산에서 겪은 피란 경험을 서술한 내용을 보더라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저 한때의 고난이나 치욕으로 치부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많은 문화 예술가들이 남긴 족적은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진정한 수도인 서울로 다들 떠나고 난 뒤의 부산은 텅 빈 폐허에 가까웠다.

간혹 지도를 거꾸로 들고 보자는 제안을 한다. 그럴 때 부산은 동해에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이르는 바다인 아시아 지중해의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지의 법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해역의 관점으로 우리를 인식하자는 강변이다. 크지도 않은 나라임에도 수도 서울만 바라보고 거기에 사람과 자본과 권력이 집중하는 일극체제를 비판하기 위함이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 제국의 바다가 해체되자 대양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고 부산은 상선과 원양어선을 오대양으로 띄워 근대화의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해방 80년을 맞은 오늘날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 대국이라고 하는 한국 사회에서 부산의 위상이 한없이 줄어드는 곤경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결국 수도권 일극체제의 효율성만 내세운 한국 자본주의의 병폐이자 한계이다. 그렇다면 이를 탈피할 방도는 없는가? 우리에게 남은 프런티어는 대양일 수밖에 없는데 이에 관한 중대한 인식의 전환에 도달해야만 한다.

최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으로 지역균형의 실마리를 다시 찾고 있다. 정부 기구를 옮긴다는 상징적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부수되는 기관과 산업도 옮겨올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계기로 일극체제 극복이라는 더 큰 목표를 생각할 수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정책도 제대로 실현이 된다면 기여할 바 적지 않겠다. 이 모두를 아우르면서 체제 전환이라는 개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가는 길을 일컫는 말인데 이와 같은 합의가 가능하다면 작금의 현실을 전환기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전환기가 되려면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분단체제라는 제약에 일극체제의 모순이 더해진 끝없는 위기 상황에서 변화의 해법이 쉽게 도출될 수는 없을 터이지만, 한국을 해양국가로 정위하는 방향을 제기할 수 있겠다. 이럴 때 부산은 해양국가 한국의 수위 도시로서 그 위상과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단지 한반도의 관문이 아니라 아시아 지중해와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남극해와 북극해를 네트워킹하는 첨단 글로벌 해항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부산발(發) 해역 구상이 요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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