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너무 늦은 정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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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전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상임대표

피해자가 왜 그리 늦게 밝혔는가
폭력이 왜 그리 오래 감춰졌는가
사회적 공감이 적을수록 그런 것

성폭행 피하려 혀 깨물었던 그녀
61년간 정당방위 판결 외면당해
내달 재심 결과 모두가 지켜봐야

최근 OTT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는 형제복지원과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사건, 지존파, 삼풍 백화점 참사 등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다뤄 화제를 모았다. 인권유린, 성폭력, 고문과 살인 등 각종 재난과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보고 듣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저 당사자로서 겪어야 했던 시간들을 딛고, 당사자가 아니라면 들을 수 없는 진실을 방송에 나와 증언해 준 이들의 용기를 응원하는 마음뿐이다.

생존자는 말 그대로 살아남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자’인가? 국가가 겪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어떤 사건은 한 개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전쟁과도 같고, 그 시간들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한편, 피해자라는 말은 가해자에 대응되는 위치에 있는 말이다. 우리는 가해자를 응징하는 것을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남겨진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경우가 많고, 피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지 않다. 피해 당사자가 오히려 낙인을 감수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과 낙인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피해가 고통의 크기와 항상 같은 것은 아니고, 피해를 겪은 이들의 대응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피해자가 당당하면 뭐가 그리 당당하냐고 묻고, 피해자가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면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의 경우 피해자에게 비난이나 책임이 전가되는 경우가 있어 왔다.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스토킹이나 교제폭력이 폭력이나 범죄로 인정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때문에 재난과도 같았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보다 당당할 수 있도록, 경의의 뜻을 담아 생존자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어떤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날 때, 우리는 종종 왜 이토록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피해자가 진실을 밝히게 되는 것인지, 어떻게 그런 폭력이 그토록 오랫동안 묻힐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 한다. 사회가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않고 적대적인 환경일수록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 생존자의 각성과 용기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정의로울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꼭 필요한 또 다른 상징적인 사건이 최근 부산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56년 만의 미투’로 알려진 최말자 씨의 재심 청구 사건이다.

1964년, 18세의 최말자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자신을 방어했으나, 도리어 가해자가 되어 중상해죄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선고를 받았다. 검찰은 강간미수 혐의조차 적용하지 않았고 재판부는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물으며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당시 언론 또한 ‘키스 한 번에 벙어리’, ‘혀 자른 키스’ 등 남성이 피해자인 것처럼 보도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최말자 씨는 생사를 넘나들던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국가는 어떠한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했다.

2020년, 74세의 그녀는 56년 만에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는 1, 2심에서 모두 기각되었다가 2024년 대법원이 파기환송하고, 2025년 부산고법이 재심을 결정한 끝에 마침내 7월 23일 무죄가 구형되었다. 정당방위에 대하여 가장 잘못된 판결 중 하나로 법원사에 기록된 이 사건은 61년 만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현재 79세인 최말자 씨는 “나의 재심 진행 과정을 보고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 내서 피해를 얘기하고 삶의 주권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법이 있어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기억해 달라고 전했다.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에 관한 연구의 권위자인 주디스 허먼은 피해 생존자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생존자의 임무는 정의를 추구하는 형태를 띤다”고 지적한다. 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이 개인의 안녕뿐 아니라 더 큰 사회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일임을 생존자가 깨닫기 때문이다. 증언하고 발화함으로써 잘못된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는 한걸음 앞선 용기이며, 이는 여전히 피해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정의는 없듯이 생존자에게 너무 늦은 시간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존자인 피해 당사자들이 그 언제 어느 때라도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낸 목소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일이 아닐까.

최말자 씨의 재심 사건은 9월 10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우리 모두가 역사의 증인이 되어 부산지법의 선고를 지켜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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