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장벽 위로 피어난 선율 ‘오페라 도시’ 대명사 되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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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50만 명에 1000석 넘는 오페라 극장 3곳
베를린 주정부 연간 2000억 원 달하는 운영비 지원
수준 높은 예술 향유 기회 제공… 재정 부담은 현실


국립오페라 극장 외관. 박석호 기자 국립오페라 극장 외관. 박석호 기자

부산오페라하우스가 2027년 개관을 앞두고 있다. 2018년 공사에 들어간 오페라하우스는 내년 12월 건물이 완공될 예정이며, 시험 공연과 최종 점검 등을 거쳐 2027년 공식적으로 문을 연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오페라 관련 인프라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수도 베를린을 찾아 오페라 시장의 미래와 생존 전략 등을 살펴봤다.


극장 세 곳, 수준 높은 공연 자랑

인구 350만 명의 베를린에는 객석이 1000석이 넘고,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오페라 극장(Full Production Opera Theater)이 3개나 된다. 국립오페라극장(Staatsoper Unter den Linden), 베를린 도이치오페라극장(Deuteche Oper Berlin), 베를린 코미쉬오페라극장(Komische Oper Berlin)이다.

한 도시 내에 오페라 극장이 3개나 있는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독일의 분단이 자리잡고 있다. 3개 극장 가운데 도이치극장은 서베를린 지역에, 나머지 2개는 동베를린에 자리잡고 있다. 동서독 간의 체제 우월성 경쟁으로 각각 오페라 극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는데 독일 통일 이후에도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진 것이다.

국립오페라극장의 화려한 객석 모습. 박석호 기자 국립오페라극장의 화려한 객석 모습. 박석호 기자
국립오페라극장의 무대 뒷편 공간. 천장까지의 높이가 26m에 달한다. 박석호 기자 국립오페라극장의 무대 뒷편 공간. 천장까지의 높이가 26m에 달한다. 박석호 기자

국립오페라극장의 무대 뒷편의 지하공간. 리허설장과의 연결통로가 무려 110m나 된다. 박석호 기자 국립오페라극장의 무대 뒷편의 지하공간. 리허설장과의 연결통로가 무려 110m나 된다. 박석호 기자

먼저 국립오페라극장은 1742년 개관한 뒤 화재로 전소됐다가 1843년 완전히 재건축했고, 그 이후에도 부분적으로 외관과 시설을 고쳐오다 2017년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건축물로 프로이센 제국의 전성기 때 세워졌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좌석은 1400여석으로 초대형 건물 치고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다. 부산오페라하우스는 1800여 석이다.

하지만 무대와 그 뒤편(백스테이지)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무대 폭이 15m, 길이는 30m에 달한다. 무대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26m로 아파트 건물 기준으로 10층 정도 된다. 각종 조명과 장막을 오르내릴 수 있는 5개의 플라잉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무대에서 지하공간까지의 깊이는 9m에 달한다. 지하공간을 통해 별도 건물인 리허설장과 무대장치 및 의상·소품 보관장으로 연결되는 통로의 길이가 무려 110m나 된다.

현재 140여명의 음악가, 80여명의 합창단, 기획관리직, 시설직 등 상주 직원이 600여명이라고 한다. 한 때는 직원 수가 1240명에 달했는데 경영 효율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감원했다고 한다.

도이치 오페라극장 외관. 박석호 기자 도이치 오페라극장 외관. 박석호 기자
도이치 오페라극장의 휴식공간에서 관객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주류와 음식을 즐기고 있다. 박석호 기자 도이치 오페라극장의 휴식공간에서 관객들이 휴식시간을 이용해 주류와 음식을 즐기고 있다. 박석호 기자

코미쉬 오페라극장의 공연장면. 현재 리모델링 중이어서 공연은 도심 외곽의 옛 비행장 격납고에서 열렸다. 박석호 기자 코미쉬 오페라극장의 공연장면. 현재 리모델링 중이어서 공연은 도심 외곽의 옛 비행장 격납고에서 열렸다. 박석호 기자

도이치 오페라극장은 1912년 건립됐는데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됐다. 그 후 독일 분단으로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자 서독 정부는 1961년 현재의 위치에 1859석 규모의 미끈한 현대식 건물로 오페라 극장을 새로 지었다. 1년에 180여 건의 오페라 및 발레, 현대무용 등을 무대에 올린다.

코미쉬 오페라극장은 1892년에 세워졌는데 1190석 규모로 가장 작다. 하지만 정통 오페라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작품들을 많이 올리면서 주목받았다. 현재는 전면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는데 정부 지원이 줄어 재개관이 늦어지고 있다. 건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외곽의 옛 비행장 격납고를 빌려 지금도 공연은 계속 열고 있다.


■재정 부담 키워 ‘세금 먹는 하마’

1990년 독일 통일 초기에는 연방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에 힘입어 세 오페라 극장 모두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 말 경기 침체로 연방정부 지원은 급감했고, 클래식 인구 감소로 공연 수익까지 줄었다. 그러자 베를린 주정부는 오페라 극장들의 합병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예술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세 오페라 극장은 각각의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공연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면서도 세 극장의 기획자들은 주기적으로 만나서 공연 계획을 조율한다. 같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지 않도록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기본이고, 한 극장에서 새로운 오페라를 공연할 경우 3년 정도는 독점적인 권리를 보장해준다.

문제는 정부 지원 없이는 오페라 극장 운영이 힘들고, 오페라를 찾는 젊은 층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베를린 주정부는 연간 국립오페라극장에 6200만 유로(약 992억 원), 도이치 오페라극장에 5600만 유로(896억 원)의 운영비를 각각 지원하고 있다. 코미쉬 오페라극장에 주는 공사비까지 감안하면 매년 천문학적인 국민들의 세금을 쏟아붓는 것이다. 공연 티켓 판매를 통해 충당하는 운영비는 전체의 23%에 머문다고 한다.

지난 24일 도이치 오페라극장에서 '투란도트' 하이라이트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 박석호 기자 지난 24일 도이치 오페라극장에서 '투란도트' 하이라이트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인사하고 있다. 박석호 기자

도이치 오페라극장 로비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서비스 공연 모습. 박석호 기자 도이치 오페라극장 로비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서비스 공연 모습. 박석호 기자

그러다 보니 오페라 극장들의 생존 전략도 치열해지고 있다. 우선 오페라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공연의 문턱을 낮추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기자가 도이치 오페라극장은 찾은 지난 24일은 2025~2026년 시즌 오픈일이었다. 극장 측은 개막일에 맞춰 ‘Was Kommt?’라는 미니 오페라를 보여줬다. 우리 말로 ‘뭐가 나오지?’라는 의미다. 이날은 ‘헨젤과 그레텔’ ‘투란도트’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등 유명 오페라를 각각 10유로 티켓으로 판매했다. 원래 3~4시간 짜리 공연인데 50분 정도로 줄여서 하이라이트 장면과 인기 아리아곡들 위주로 재구성했다.

압축 공연이라고 해서 2군 배우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극장의 주역들이 모두 출연하며 무대도 제대로 갖췄다. 1800여 석이 좌석은 거의 매진됐다. 정장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반바지 차림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온 관객들도 많았다.

이 극장의 수석 극작가 요르그 쾨니히스도르프 씨는 “현재 유럽의 오페라 시장은 오페라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장르의 공연을 만들고 있다”면서 “특히 젊은 사람,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 이들이 나중에 커서 고객이 되기 때문에 미리 관심을 끌만한 작품을 부담 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극장은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기회를 향유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설명했다.

도이치 오페라극장은 연간 20회 정도 34유로의 고정 요금으로 오페라 공연을 한다. 관객들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일종의 ‘프로모션 공연’을 하는 것이다. 쾨니히스도르프 씨는 “가격이 저렴한 공연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성과 공연의 질은 완벽하게 보장돼야 한다”며 “쉽게 접한다고 해서 공연 수준이 낮으면 장기적으로 오페라 팬층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이치 오페라극장에서는 공연장 바깥 로비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서 성악가가 올라와 피아노 반주와 타악기에 맞춰 오페라 곡을 들려주는 등 서비스 공연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날 밤 찾은 국립오페라극장에도 ‘Gods and Dogs’라는 현대무용이 무대에 올랐다. 오페라 만으로는 극장을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외에도 비용 절감과 관객 확보를 위한 각고의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극장 홍보담당자인 카이 케스너 씨는 “예전에는 베를린의 오페라 극장 3곳에 발레단이 각각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1개의 발레단으로 통합해서 3개 극장을 순회하면서 운영한다”고 전했다.

베를린의 자존심인 오페라 극장들이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예술 향유를 통한 행복감을 안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재정적인 부담을 넘기는 현실이 교차되고 있었다.

베를린(독일)/글·사진=박석호 기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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