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해저터널 로비 PK 정치권 번지는 통일교 게이트
여야 안 가리고 광범위한 접촉 정황
원칙 따른 신속 수사만이 국민 납득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이 정치권을 강타한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가평군 통일교 천정궁 일대가 적막하다. 연합뉴스
통일교의 정치권 로비 관련 불똥이 부산·경남 여야 정치권 전체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한일해저터널 추진이 통일교의 정치권 집중 로비 이유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이미 통일교 로비 관련 피의자가 된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서도 통일교가 한일해저터널 관련 현안 협조 로비를 했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파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통일교의 숙원사업으로 꼽혀온 한일해저터널은 출발 지점이 부산 혹은 부산 인근지역으로 설정돼 온 만큼 통일교의 접촉 대상 정치인은 해당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에선 이 사안이 지역 정치권을 흔드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전재수 전 장관은 처음 알려진 것보다 더 자주 통일교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며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한 언론사는 전 전 장관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통일교 행사에 참석하는 등 모두 7번 통일교 측과 접촉했다고 15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2018년 통일교 부산지역 행사 다음날 “우리 일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며 전 전 장관에 대한 특별보고를 하기도 했다. 전 전 장관 외에도 통일교는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 캠프에 속해 있는 PK 인사들을 집중 접촉해 협력 관련 내부 보고를 남긴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협력 대상은 통일교 숙원사업인 한일해저터널로 추정된다.
한일해저터널 사업은 통일교 창시자 문선명 씨가 1981년 ‘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을 밝히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구상은 부산과 대한해협, 쓰시마, 규슈를 잇는 약 200km 길이의 해저터널을 만드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국가적 명운을 걸 정도로 주력해야 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이 때문에 사업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 전문가들이 많다.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에 통일교가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광범위하게 정치권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교로서는 해당 사업이 문 씨의 뜻을 잇는 상징성이 크기에 후계자 다툼에도 큰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PK 정치권은 너도나도 통일교의 로비는 없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으나 수사 확대 이후 금품 수수 대상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통일교 서울본부와 천정궁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15일에야 이뤄졌다. 특검 수사 때부터 금품 로비 관련 진술이 나온 점을 감안하면 늑장 수사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자칫 결정적 증거를 못 찾아 수사가 한없이 장기화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 미치는 악영향도 그만큼 커질 공산이 크다. 여야를 막론하고 원칙에 따라 신속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이 납득할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다. 그럴 경우 이 사안의 종점은 또 다른 특검이 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