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의 과기세] 100년 만에 다시 만나는 슈뢰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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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교양교육원 교수·한국과학사학회 회장

1926년 양자역학 근간 방정식 발표
'생명이란 무엇인가' 과학자들에 영감
물리학자지만 철학·생물학까지 확장

100년 전의 과학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때는 1925년 12월 하순의 어느 날이었다. 슈뢰딩거는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을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여친과 함께 스위스 아로사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방정식의 골격을 세웠다. 약간의 보완을 거친 후 1926년 1월에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했다. 그 방정식은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물리학 교과서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물리학에서 아름다운 방정식 4개를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F=ma와 E=mc2가 생각날 것이다. F=ma는 뉴턴의 운동방정식이고, E=mc2는 아인슈타인이 만든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이다. 나머지 2개로는 맥스웰 방정식과 슈뢰딩거 방정식이 꼽힌다. 맥스웰 방정식은 전자기학을 집대성한 것이고, 슈뢰딩거 방정식은 양자역학을 파동함수로 묘사한 식이다. 맥스웰 방정식과 슈뢰딩거 방정식은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두 방정식에서 자연현상의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한다.

슈뢰딩거와는 별도로 1925년 7월에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을 이용하여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1926년 5월에는 슈뢰딩거가 자신의 파동역학과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이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행렬역학보다는 파동역학을 선호했다. 행렬보다 미분방정식이 간단하고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역학은 ‘양자역학’이란 이름으로 결합되었는데, 그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는 막스 보른이 꼽힌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얻게 되는 파동함수의 물리적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1926년 12월에 보른이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파동함수가 고유한 상태함수이긴 하지만 물리적 의미를 가진 것은 파동함수의 제곱 값이고 그 값이 단지 확률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다. 슈뢰딩거의 파동은 물질을 실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의 파동’이라는 것이었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도 보른의 주장에 동조했고, 양자역학에 대한 확률적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으로 불렸다. 코펜하겐은 보어의 이론물리학연구소가 있던 곳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슈뢰딩거가 코펜하겐 해석에 매우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1935년에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불리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그 실험은 1시간 뒤에 방사성 원자가 붕괴하면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는 상황에 주목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고양이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가 된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갈하며 양자역학이 불완전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와 유사하게 아인슈타인은 “당신이 달을 보기 전에는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말을 남겼다.

만년의 슈뢰딩거는 물리학보다 생물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43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생물학에 대한 대중 강연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준비 도중에 강연 내용이 계속 불어났다. 결국 슈뢰딩거는 세 번에 걸쳐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실시했으며, 이를 보완하여 1944년에 책으로 출판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물리학자가 바라본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를 담고 있다. 슈뢰딩거에게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것은 유전자였으며, 유전자의 본성은 다름 아닌 정보였다. 이제 생물학자들의 임무는 유전자에 저장된 정보를 해독하는 것이 되었다. 슈뢰딩거는 전신의 모스 부호를 예로 들면서 조그마한 유전자에 수많은 정보가 담길 수 있다고 설파했다.

분자생물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던 과학자들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윌킨스는 이 책을 접한 후 자신의 전공을 핵물리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꾸었고, 왓슨도 대학 3학년 때 책을 읽은 뒤에 유전자를 연구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크릭과 함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처럼 슈뢰딩거는 단순한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물리학에 뿌리를 두면서도 철학과 생물학으로 나아갔다.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을 달리는 가운데 양자역학의 철학적 의미를 캐묻고 생명현상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경향은 슈뢰딩거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현대물리학의 창시자들에게 공통된 것이었다. 그들은 나치가 집권하기 전까지 역동적인 학문공동체를 이루며 치열하게 탐구하고 토론했다. 학문이 세분화되어 있는 오늘날에도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새롭고 중요한 것들이 생겨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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