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사비 무더기 출토 통영 텃밭 제대로 파보니…단순 매몰지 아니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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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통제사 사적비 24기 출토
통영시, 매장유산 긴급발굴조사
통제사비 관련 ‘비각 유구’ 발견
비문 후세에 전하려 세운 건축물
삼대 걸친 통제사 가문까지 확인
학계 “학술적·사료적 가치 크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이 나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는 건축물이 세워졌던 터로 추정된다. 독자 제공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이 나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는 건축물이 세워졌던 터로 추정된다. 독자 제공

속보=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경남 통영의 변두리 텃밭(부산일보 2024년 12월 24일 자 11면 등 보도)이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는 건축물을 세웠던 터로 확인됐다.

여기에 조부와 아들, 손자까지 3대에 걸쳐 통제사를 지낸 무관 가문이 존재했다는 사료까지 발견돼 더 종합적인 보존·정비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영시는 무전동 786번지 일원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 결과,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 유구와 비신(碑身) 2기가 확인됐다고 23일 밝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을 가리킨다. 비신은 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다.

이번 조사는 국가유산청 ‘매장유산 긴급발굴조사 지원’으로 (재)경상문화유산연구원이 진행했다.

대상지는 조선시대 통제사길(삼도수군통제사가 한양에서 통영까지 부임과 퇴임을 하던 길)로 사용된 장소로 2014년 통제사 사적비 24기가 발견됐다.

사적비는 통제사 개인 행적과 연보가 상세히 기록된 유일한 흔적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비슷한 매장문화재 발굴 사례 중 가장 큰 규모인 데다 더 많은 사적비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역사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통영시는 첫 발굴 이듬해 국가유산청에 ‘긴급 조사 지원’을 요청했다. 최초 발굴지 주변 330㎡에 대한 조사 예산 1억 7890만 원을 지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은 “긴급하지 않다”며 “필요시 통영시 재정으로 하라”고 회신했다. 이후 세관의 관심 수그러들면서 통영시도 덩달아 손을 놨다.

그사이 발굴지 주변 훼손은 가속했다. 경사가 심한 비탈이라 토사와 잡풀이 뒤엉켜 현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주변엔 상가와 다가구 주택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일부 빈 땅은 인근 주민들이 텃밭으로 개간해 각종 농작물을 심었다.

이대로는 중요한 유적이 빛도 못 본 채 다시 사장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이 나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는 건축물이 세워졌던 터로 추정된다. 통영시 제공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조선 후기 통제사비 관련 비각(碑閣)이 나왔다. 비각은 역사적 비석이나 신도비, 능비 등 중요한 비문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로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는 건축물이 세워졌던 터로 추정된다. 통영시 제공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통영시는 유적 보호와 정비를 위해 올해 국가유산청 공모에 도전, 긴급 조사에 착수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조사 대상지 북편에서 비각의 기초 시설인 기단석, 초석, 전돌 바닥 시설 등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 일대가 단순한 비석 매몰지가 아닌 비석을 보호하고 기념하기 위해 별도의 건축물이 조성됐던 장소임이 확인된 것이다.

확인된 초석 배치로 미루어 볼 때 비각은 정면 2칸·측면 1칸 규모의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비각 내부와 인접한 복토층에서 비신 2기가 추가로 수습됐다.

내부에서 확인된 비신은 제170대 통제사 임성고(任聖皐)의 선정비로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임성고는 조선 후기 어영대장, 훈련대장,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비각 외부 남동편에서 출토된 비신은 제184대 통제사 임태영(任泰瑛)의 불망비로 확인됐다.

임태영도 조선 후기 어영대장, 좌변포도대장, 훈련대장 등을 역임했다.

두 사람은 제149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임률(任嵂) 장군의 아들과 손자로 임씨 가문이 삼대에 걸쳐 통제사를 역임한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는 평가다.

게다가 부자의 비석이 동일한 비각과 관련된 공간에서 함께 확인된 사례는 매우 드물어 학술적·사료적 가치 역시 크다는 게 연구원 설명이다.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제170대 삼도수군통제사 임성고(任聖皐)의 선정비. 독자 제공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 사적비가 무더기로 출토된 통영시 무전동 786번지 일원 정밀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제170대 삼도수군통제사 임성고(任聖皐)의 선정비. 독자 제공

조사단은 무전동 일대가 통영으로 진입하는 옛길인 ‘통영별로(일명 통제사길)’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통제사 공적을 기리기 위해 도로변에 비각과 비석이 체계적으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 근대기 도로 정비나 개발 과정에서 비각이 해체되고 비석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통영시 관계자는 “이번 발굴은 통제영과 관련된 기념 공간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힌 중요한 성과”라며 “향후 추가 조사와 함께 보존·정비 방안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향토사학계에서는 발굴지 위치와 출토된 유구의 품격, 규모를 토대로 이 일대가 ‘통제영 오리정(五里亭)’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오리정은 관리나 손님을 영접·배웅하던 관정으로 선비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풍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 향토사학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통영지도(옛 남해지도)>에는 통제영과 원문성 사이에 오리정이 명시돼 있다”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더욱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에 표시된 ‘통제영 오리정(五里亭)’. 이를 토대로 발굴지 일대가 오리정일 가능성도 제기 된다. 독자 제공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에 표시된 ‘통제영 오리정(五里亭)’. 이를 토대로 발굴지 일대가 오리정일 가능성도 제기 된다. 독자 제공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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