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2026년의 항해 앞에서
영토 확장과 번영 향한 인류 여정 항해에 빗대
패권과 자본에 키 넘기고 자주 길을 잃는 우리
공동체 안녕을 길잡이별로 새 지도 상상할 때
왜 ‘우주차’나 ‘우주비행기’가 아니고 ‘우주선’일까.
이런 질문을 봤다.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비행 물체를 차나 비행기가 아니라 ‘배(船)’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1865년작 ‘지구에서 달까지’ 속 대포 모양의 유인 발사체 ‘콜롬비아드’를 우주선 개념의 시작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아폴로호의 달 착륙은 100년도 더 뒤다. SF 문학이 과학보다 먼저 우주 여행을 상상하면서 당시 가장 멀리 가는 수단인 배의 이미지를 가져왔고, 그 표현이 굳어졌다는 이야기다.
차나 비행기가 잠깐 탔다가 내리는 것이라면 우주선은 일정 기간 고립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설비와 식량을 갖추고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배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기권에서 날개와 공기의 힘으로 나는 비행기나 바퀴를 굴려서 노면을 이동하는 차와 달리 우주선은 진공에 가까운 우주 공간을 탐사한다는 건 구동 환경과 원리의 차이다.
사실 이런저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왜 ‘우주선’인지 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바다를 미지의 세계, 극한 환경, 두려울 만큼 넓고 큰 것에 빗댔다. 고개를 들어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 인간이 상상한 우주는 아는 것 중에 바다와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항해다. 배가 망망대해 바다를 헤쳐나가듯 우주선은 끝없는 우주 공간을 나아간다.
영토 확장과 번영을 향한 인류의 여정도 항해에 비유된다. 그 결과 극지와 우주, 해저까지 미답의 영역에 깃발이 꽂혔다. 돈만 있다면 민간인도 우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생명 과학은 질병 정복과 젊음의 연장을 꿈꾼다. 인공지능이라는 요술 방망이는 일상과 산업을 뒤흔들고 창작까지 넘본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현대인은 과거 한 사람이 평생 접했을 분량의 정보를 하루에 처리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정복했다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강대국과 초거대기업에 조타석을 넘긴 결과 인류 공동체의 항해는 종종 길을 잃는다. 기후 변화는 실재하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개인 정보와 쇼핑 기록으로 쪼개져 바코드와 알고리즘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일자리와 사회의 신뢰를 공격한다. 인류는 과거보다 더 똑똑해지지도 건강해지지도 행복해지지도 못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가 국내 이용자 98만 명의 종교관, 정치관, 동성 결혼 여부 등 민감 정보를 무단 수집해 광고주에게 넘긴 일로 216억 원 과징금 결정을 받은 게 2024년이다. 국민 337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챗GPT의 성인 콘텐츠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는 세계의 선출된 도덕 경찰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한 해는 유독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이 컸다. 계엄의 대혼란으로 시작해 정치적 격변과 기술적 충격을 겪으면서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알아차리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온갖 플랫폼이 들이미는 쇼츠 뒤에는 인간성이 오염되는 감각이 찾아왔다. 무한한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의 이미지가 잔상을 남긴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억울한 죽음들도 있었다. 가자전쟁 2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1만 8430명이 사망했다. 전국택배노조 추산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쿠팡 택배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 최소 29명이 과로나 안전사고로 숨졌다. 세밑에는 179명이 사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의 1주기와 미등록 노동자 단속을 피하려다 숨진 25살 뚜안 씨 아버지의 108배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지나가는 무한한 공간의 형태에 대한 정확하고 예민한 감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담고 있는 시간의 틀이 마치 크기가 다른 사발들이 차례로 조금 더 큰 사발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층층이 포개진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그러니까 하루 중의 특정 시간이 음력 또는 양력에서 특정한 날 속에 담겨 있고, 다시 이 모든 것이 한 문화적 시대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
미국의 여행 작가 배리 로페즈가 〈호라이즌〉에서 아프리카 북동부 사막에서 초기 현생인류의 화석을 수색하는 케냐인 탐사대를 묘사한 대목이다. 진화론 연구의 배경이 된 태평양의 화산섬 갈라파고스에서는 이렇게 쓴다. “내가 보고 있던 항해도의 한 귀퉁이에는 자주색으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경고: 분별 있는 뱃사람이라면 하나의 항해 보조물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다시 새해가 시작됐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묻고, 분별 있는 뱃사람으로서 익숙한 지도 대신에 새로운 지도를 상상하기 좋은 때다. 항해의 길잡이별은 경제적인 번영보다는 공동체의 안녕이라면 좋겠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