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학 공모전-중등부 해양수필 우수상] 조용히 해 줄래요, 바다가 아파요 / 김세형
엄마가 범고래 태몽을 꾸고 내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나는 고래가 정말 좋다. 초등학교 1학년때 보스턴으로 가족여행을 갔을 때, 고래 관광선을 탔는데, 눈앞에 나타난 혹등고래가 물 위로 뛰어올라 꼬리를 탁 치고 다시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물방울이 하늘로 튀어 오르고, 그 뒤에 잔잔한 물결이 퍼져 나가는 모습은 슬로우 모션 영화처럼 그 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가이드는 고래가 노래로 서로 대화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바닷속에는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래의 노래들로 가득하겠구나’ 하고 상상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해양 생물학자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고, 내 책상 위에는 항상 고래 사진이 붙어 있다. 시험 공부를 하다가 힘들 때면 고래 사진을 한 번씩 바라보며 용기를 얻곤 한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고래와 다른 해양 생물들이 인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쓰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바다거북 콧구멍에 꽂힌 빨대 사진, 물개 몸에 비닐이 감겨 있는 영상, 플라스틱 조각을 먹고 배가 빵빵해진 새 이야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이 왜 저런 걸 바다에 버릴까? 그냥 쓰레기통에 넣으면 되는데…” 하고 속으로 여러 번 중얼거렸다.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받을 때마다 나는 괜히 죄인처럼 나의 고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몇년전, 과학 시간에 선생님께 해양 소음 오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나는 그때 처음 듣는 단어여서 깜짝 놀랐다. 소음 오염이라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해수욕장에서 크게 떠드는 걸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큰 화면에 배와 해저 공사 장면을 보여 주면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바닷속은 사실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이 소리의 피해를 가장 크게 받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그 순간 나는 바로 나의 고래를 떠올렸다.
알고 보니 바닷속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리가 숨어 있었다. 거대한 선박의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해저를 뚫는 시추 기계가 진동을 내보낸다고 한다. 군함에서 사용하는 강력한 초음파는 물속을 찢어 버릴 것처럼 퍼져 나간다고 한다. 사람 귀에는 거의 안 들리거나 멀게 느껴지는 이 소리들이, 고래와 돌고래, 물개 같은 해양 동물들에게는 귀 바로 옆에서 울리는 폭죽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교과서 속 그림은 조용해 보이는데, 실제 바닷속은 공사장 한가운데와 비슷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고래는 눈보다 귀에 더 의지하며 산다고 한다. 물속에서는 멀리까지 잘 보이지 않고, 밤에는 더 깜깜하니까 소리로 가족을 찾고,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한다. 나는 고래가 내는 노래를 “안녕, 어디 있어?”, “여기야, 같이 가자” 같은 말풍선으로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거대한 소음은 그 말풍선들을 한 번에 터뜨려 버리는 것이다. 친구를 부르는 노랫소리가 엔진 소리에 묻혀 버리고, 방향을 찾기 위한 메아리가 인간이 만들어낸 다른 음파들 때문에 이상한 방향으로 튕겨 나간다. 결국 고래는 길을 잃고, 얕은 곳으로 잘못 들어왔다가 해안에 좌초되기도 한다고 한다. 뉴스에서 고래 떼가 해안에 한꺼번에 밀려와 죽어 있는 장면을 볼 때면, 예전에는 그냥 안타깝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해양 소음에 대해 알고 난 뒤로는, 그 뒤에 인간의 소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깊은 밤에, 눈을 가린 채 시끄러운 공사장 한가운데 던져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디가 안전한지, 누가 나를 부르는지, 어떤 소리를 따라가야 하는지 전혀 모른 채 계속 떠밀려 다녀야 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아마 고래들도 그런 기분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고래들이 해안에 잘못 올라온 것은 길을 잘 모르는 길치라서가 아니라 너무 시끄러워 방향을 찾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음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들도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잘게 부서져 미세 플라스틱이 되고, 물고기와 조개들이 그것을 먹는다. 기름이 유출되면 바닷새의 날개가 젖어 날지도 못하게 된다. 지구 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산호들이 하얗게 죽어 가는 장면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소음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쓰레기나 기름은 눈에 보여 심각함을 느낄수 있지만, 소음은 사진에도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쉽게 잊고 넘기는 것 같다.
작년에 지인들과 함께 전라북도 방축도 해안 정화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모래사장에 서 보니 하얀 모래사장으로 보이는 것들이 다가가 보니 전부 스티로폼 가루였다. 청소를 시작하니, 페트병, 담배꽁초, 플라스틱 포장지, 낚싯줄, 부서진 스티로폼 조각들이 끝없이 나왔다. 특히 스티로폼 가루는 손가락 사이에 끼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파도에 밀려온 플라스틱 병 사이로 작은 게가 겨우 움직이는 모습도 보았다. 반나절을 주워고 해안 한쪽을 완벽하게 치울수 없어서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또 하나 머릿속에 떠오른 오염, ‘보이는 쓰레기는 이렇게 손으로라도 주울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쓰레기인 소음은 도대체 어떻게 치워야 할까?’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바다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살다가 지금은 아버지 고향인 제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 살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밤이 되면 파도 소리랑 바람 부는 소리만 들렸어. 가끔 작은 배 한두 척 지나는 소리가 나면, 그게 오히려 특이한 날이었지. 그런데 요즘은 밤늦게까지 큰 배 엔진 소리, 관광선 방송, 제트스키 돌아다니는 소리 같은 게 자주 들리더라.” 아버지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그땐 그냥 사람이 많아져서 그렇구나하고 넘겼는데, 네 말을 들으니까 그 소리들이 바다 동물들한테는 얼마나 시끄러운 폭죽 같을지 생각하게 된다.” 아버지의 말을 듣자, 옛날의 비교적 조용했던 바다와 지금 더 시끄러워진 바다가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그림처럼 이어졌다. 예전에는 몰라서 지나쳤을지 몰라도, 이제는 알고 있으니 더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가 시끄럽지 않게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은 계속 내 안에서 맴돌고 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일회용품을 덜 쓰고, 재활용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리고 보이는 쓰레기를 주우면 된다. 하지만 소음을 줄이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거대한 배의 엔진을 조용하게 만들고, 해저 공사를 줄이고, 군사용 초음파 사용을 조심하는 일은 결국 기업과 정부, 그리고 어른들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중학교 2학년인 나는 조금 작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완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적어도 우리는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냥 “바다는 원래 넓으니까, 조금 시끄러워져도 괜찮겠지”라고 무신경하게 생각하는 대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입장이 되어 문제를 심각하게 느껴보는 것이다.
교과서에서 한 줄로 지나가는 해양 생태계 파괴라는 말 뒤에, 실제로 어떤 동물들이 어떻게 고통 받고 있는지를 상상해 보고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내가 이 수필을 쓰는 것도, 어쩌면 그런 노력의 한 부분이라고 느낀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한 번이라도 “바닷속 고래 귀는 괜찮을까?” 하고 생각해 준다면, 그걸로도 조금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를 생각하면, 나는 먼저 속도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항상 더 빨리, 더 멀리, 더 많이를 외친다. 배도 더 빨리, 공사도 더 빨리, 개발도 더 빨리 진행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바다에서의 더 빨리는 곧 더 시끄럽게와 이어지는 것 같다. 선박이 속도를 조금만 줄여도 소음이 많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술개발 이전에 조금 느리게 가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이 조금만 느려지면, 고래의 심장이 조금 더 편안하게 뛸 수 있다.
또 하나는 경계선에 대한 태도이다. 인간은 지도를 그으면서 수많은 경계선을 만들어 왔다. 국경선, 도로선, 공사 구역, 어업 구역 등. 하지만 바닷속 생물들은 그런 선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그저“사는 곳”일 뿐이다. 우리가 해양 보호 구역을 정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편의를 위한 선이 아니라, 해양 생물들이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야 한다. 소음이 가장 심한 구역에는 일정 시간 공사를 중단하고, 번식기에는 선박이 우회하도록 하는 등의 규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선 하나를 지우고 다시 그리는 일은 어렵겠지만, 한 번 그어 놓은 선을 영원히 고정된 진리처럼 믿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나는 또 일상 속의 작은 소음을 떠올려 본다. 여름철 바닷가에서 울려 퍼지는 폭죽 소리, 모터보트나 제트스키가 만들어 내는 큰 엔진 소리, 해변 가까이까지 다가오는 배들의 음악 소리. 사람들에게는 잠깐의 재미일지 몰라도, 그 주변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와 고래에게는 갑자기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공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 바다를 사랑한다면, 바닷가에서조차 조금은 조용해지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조용한 바다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알려 줄 필요가 있다. 물론 중학생인 내가 직접 그런 법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과학 시간에 손을 들고 “우리나라는 해양 소음에 대해 어떤 규칙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는 것, 사회 시간에 “경제 발전도 중요하지만, 고래들이 사는 바다는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라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어른들에게 “우리가 조금만 조용히 하면 다른 생명들이 숨을 쉴 수 있대요”라고 말해 보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모이면 언젠가 큰 결정을 하는 어른들도 움직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어른들이 바쁘게 하루를 보내느라 잊고 있던 바다를, 우리가 가끔씩 떠올려 주는 역할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또한 나 개인적으로도 달라지고 싶은 점이 있다. 예전에는 바다를 떠올리면 그저“놀러 가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파도에 발을 담그고, 사진을 찍고, 조개껍데기를 주워 오는 장소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바다를 “누군가의 집”이라고 먼저 떠올리려고 한다. 고래가 아기를 낳고, 돌고래가 친구와 장난치고, 작은 물고기가 무리 지어 헤엄치는 거실 같은 공간 말이다. 다른 집에 놀러 갔으면, 주인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않고 조용히 예의를 지키는 것이 기본이다. 바다에서도 우리에게 그런 예의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 전에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하고 속으로 인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예의다.
나는 고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가끔 부담이 되곤 하는데, 좋아한다는 말에는 책임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나는 고래가 살고 있는 바다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바다와 관련된 기사를 읽어 보고, 해양 생물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며, 언젠가 내가 해양 생물학자가 되거나, 해양 오염을 줄이는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설령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어있더라도, 바다를 좋아하는 마음은 잃고 싶지 않다.
가끔 밤에 불을 끄고 누워 있으면, 바다 속 상상을 해 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래의 노래가 낮게 울려 퍼지고, 그 곁을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간다. 먼 바다 아래에서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생명들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로 거대한 엔진 소리가 ‘쾅쾅’ 끼어들어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리는 장면도 떠오른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어 본다. “제발, 조금만 조용히 해 줄 수는 없나요? 바다가 아파하고 있어요”라고. 이 기도를 듣는 존재가 누구든, 언젠가는 대답해 주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는 진짜 바다에서 고래를 직접 보고 싶다. 그러나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내는 배를 타고 가까이가서 보는 것 말고,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고래의 호흡 소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고 싶다. 인간이 조금 달라진다면, 그런 장면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고래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바다, 돌고래와 물고기,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작은 생명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바다. 나는 그런 바다를 만들어주고 싶고, 지금 모습으로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너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니?”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바다가 너무 시끄러워지지 않게, 소리를 조금 낮춰 달라고 말할 줄 아는 어른이요. 그리고 해양 생물들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어른이요” 그렇게 되기 위한 첫걸음으로 오늘 나는 이 수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