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가 시작"… 피 마르는 지역 건설업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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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태 장기화로 복합 위기
자재 단가 이달 50%까지 급등
공사 비용 수요 ↓ 악화일로
"당장 공사 중단 현장 나올 수도"
1분기 폐업 12년 만에 1000건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내 건설업계가 공사비 상승 등 위기 상황을 맞았다. 23일 부산의 한 재개발 현장 모습. 정종회 기자 jjh@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내 건설업계가 공사비 상승 등 위기 상황을 맞았다. 23일 부산의 한 재개발 현장 모습. 정종회 기자 jjh@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원자재 수급 차질, 단가 상승 충격이 건설 현장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 중 공사가 아예 중단되는 현장까지 나올 수 있다는 점검 결과를 내놨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빚어졌던 공사비 상승 갈등이 되풀이될 우려가 커진다.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부산시회가 23일 기계설비 공통자재 품목에 대한 긴급 가격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반용 경질 PVC(폴리염화비닐) 스핀관(D100 규격)의 경우 지난해 12월 단가가 m당 5460원이었던 것이 이달 들어 7717원으로, 41.3% 상승했다. PVC뿐만 아니라 아티론(난연), 알미늄밴드 등 기계설비 공사에 많이 쓰이는 자재들이 전쟁 후 20~40% 올랐다.

문제는 전쟁 직후였던 지난달보다 이달 들어 원자재 가격이 훨씬 더 급등했다는 점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이제까지는 전초전, 원자재 값 상승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건설 공사는 계약에서 실제 집행까지의 시차가 길어 유가가 올랐을 때 비용 반영은 늦게 되고, 반대로 유가가 진정되더라도 이미 상승한 자재 단가와 물류비가 즉시 안정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중동 전쟁 개전 이후 이미 레미콘 관련 혼화제는 최대 30%, 단열재는 최대 40%, 접착제는 30~50%가 인상됐다. 국토부는 이날 전국 274개 공사현장을 점검한 결과 5월 중 공사가 중단되는 현장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부산 전문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계약을 일단 하고 나면 적어도 2~3년간 공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나마 관급공사는 에스컬레이션(물가연동)을 해 주지만, 민간공사에서는 안 해 줄 경우 업체가 고스란히 인상분을 떠안아야 해 손실이 나는 구조”라며 “수요 감소, 자금 경색으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문 닫는 업체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토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 1분기 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는 1088건으로 집계됐다. 1분기 기준 폐업 건수가 1000건을 넘은 건 2014년 이후 처음이다. 부산에서도 올해 들어 23일까지 폐업 신고 건수가 종합건설 20건, 전문건설 59건이나 된다.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부산시회 강기윤 사무처장은 “비수도권, 영세업체일수록 타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영세업체들의 경우 폐업 신고조차 하지 않고 문을 닫고 가버리는 곳들도 많다”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수치까지 감안하면 현장의 충격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사비 상승분을 현실화해 달라는 요구도 늘고 있다. 롯데건설은 최근 부산 대형 공사 현장의 시행사와 조합에 공문을 발송해 자재 수급 차질이 계속되면 공사비 인상이나 공사 기간 연장 협의를 적극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건설도 최근 발주처로 공문을 보내 원자재 가격 상승과 자재 공급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추가 공사비 반영을 요청했다.

지역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때 공사비가 1.3~1.4배가량 급등하면서 곳곳에서 공사비 인상 관련 마찰이 빚어졌고 이후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일이 빚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가 적극 나서 물가연동 조정 체계를 점검하는 등 현장의 충격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박선구 경제금융실장은 “전쟁의 종료와 건설업의 정상화는 같은 시점에 오지 않으며, 유가 충격은 향후 수개월에 걸쳐 뒤늦게 나타날 현재 진행형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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