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탈세용 잔존유 불법 유통 근절하고 클린 포트로 나아가야
부산항, 동아시아 암시장 전락할 위기
당국 적극 단속으로 신뢰 회복 나서야
부산항에서 선박용 기름 불법 유통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19년 3월 5일 해경이 180억 원대 해상용 면세유를 빼돌려 유통한 일당을 검거한 뒤 범죄 수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적 항만인 부산항이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암시장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소문이 오랫동안 항만업계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음에도 관계 당국이 뒷짐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산항 위기의 주범은 불법으로 거래되는 대규모 유출 면세유다. 주로 외국 무역선 벙커링 현장에서 은밀하게 거래되는 이 불법 유출 면세유로 인해 정당하게 걷었어야 할 세금 손실액만 한 해 10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5년 전 합법적으로 중고 연료 유통을 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사업자 등록을 한 회사가 그동안 한 차례도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고 하니 이 같은 불법은 오랜 기간 만연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발전연구원 김길수 원장이 최근 발표한 ‘외국 무역선 미적재 면세유 정상 관리 대책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선박용 연료유 공급량의 약 6~8%가 탈세용 잔존유로 추산된다. 최대 60만kL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탈세용 잔존유는 외국 무역선이 다음 항차에서 쓰려고 구매한 면세유의 급유 과정에서 남는 ‘잔존유’다. 운항 도중 연료 소모를 아껴 외국 선원들이 따로 모았거나 급유선 업자가 선원과 공모해 계량 조작 등을 통해 빼돌린 기름 따위가 포함된다. 이런 잔존유는 부산항에서 국내 연료 소매상에게 무자료로 거래된다. 정상 급유 기피 현상이 나타날 정도였다니 이 같은 거래는 일상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부산항에서 탈세용 잔존유의 불법 거래가 횡행하고 있으나 관계 당국의 대응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안일하다. 부산해양수산청 측은 면세유 부정 유출·거래에 대한 단속 권한은 관세청에 있다며 뒷짐을 지는 모양새다. 단속 주체로 지목된 세관과 해경도 불법 거래 단속 때마다 현장에 보이는 급유선이나 소매상 위주로만 단속을 하다 보니 겉핥기식 수사가 되기 일쑤다. 강 건너 불구경식 칸막이 행정과 소극적 단속으로 불법 거래가 버젓이 이뤄지는 사이 외국 무역선 선원들 사이에선 부산항에 가면 잔존유를 손쉽게 팔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부산항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 하락이 불가피할 지경이라 할 것이다.
관련 보고서를 낸 김 원장은 문제 해결책으로 우선 해수청이 외국 선사를 대행하는 국내 해운대리점의 선용품 공급 과정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해운대리점이 합법적인 계약을 했는지 계약서를 해수청에 제출해 검토받도록 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속은 관세청 몫’이라는 해수청의 해명이 책임 전가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단속 주체인 세관과 해경이 현장에서 현행범만 단속하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잔존유의 소유와 통제권을 가진 외국 선사 지점과 해운대리점을 대상으로 한 사전 단속에도 치중하라는 뜻이다. 부산항이 ‘클린 포트’의 명성을 잃으면 해양수도 부산은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