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상속세 감면해 주면, 해외 안 뜨고 지방 오나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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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주간

10대 그룹 5년간 270조 지방 투자
본사 아닌 인프라 위주 ‘속 빈 강정’
R&D 등 핵심 기능 수도권 집중 심화
균형발전의 본질은 대기업 지방 이전
실현하려면 없는 특혜라도 만들어야
결국 정부 의지에 정책 성패 갈릴 것

‘문제는 기업이야, 바보야!’ 망국적 부동산 문제의 근본 원인인 망국적 수도권 집중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비수도권 입장에서 보면 균형발전은 희망 고문의 다른 이름이다. 대통령이 하루가 멀다고 지역을 순회하며 균형발전은 국가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전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대통령의 의지를 폄훼하거나 정책 불신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역대 정부 균형발전 정책의 역사와 더 피폐해지는 지역의 현실이 그렇다.


국가균형발전의 본질은 지역에도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그 핵심은 기업이다. 행정통합도, 5극 3특도, 광역 교통망도 결국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기업은 죄다 수도권에 둥지를 틀고 있다. 정부가 각종 혜택을 내세우며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있지만 수도권을 벗어나면 망한다고 생각하는 게 우리의 대기업이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10대 그룹 총수들을 불러 모았다. 청와대가 주관한 ‘청년 일자리와 지방 투자 확대를 위한 간담회’ 자리였다. 이날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은 10대 그룹이 향후 5년간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270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대 그룹 외 기업 투자까지 합하면 30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성장의 과실과 기회가 지방, 중소기업, 청년 세대에게 골고루 퍼지면 좋겠다”라고 화답했다.

대기업이 지역에 수백조 원을 투자한다는 건 반길 일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세부 투자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기존에 계획돼 있던 인프라 투자를 모아 포장만 그럴듯하게 꾸민 것들로 보인다. 삼성과 SK의 영호남 데이터센터, 포스코의 포항·광양 수소환원제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순천 발사체 제작센터, 한화오션의 신안 해상풍력단지와 거제사업장 스마트야드, GS의 울진 소형모듈원자로, HD현대의 사업장 AI 전환 따위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이 그룹 총수들을 부산 국제시장으로 불러 ‘떡볶이 먹방’을 찍던 것에 비하면 생산적이고 진일보한 행태지만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근본 처방이 아닌 퍼포먼스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세계적으로도 우리 같은 나라가 없다. 30대 기업 중 지방 소재는 포스코(포항) 중흥건설(광주) 하림(익산) 정도다. 90%는 수도권이다. 부산에는 100대 기업 본사 하나 없다. 미국의 테크 기업들은 샌프란시스코, 코카콜라는 애틀랜타, 나이키 본사는 오리건에 있지만 글로벌 기업의 입지는 굳건하다. 세계적 자동차 기업 메르세데스 벤츠는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에 있고 일본의 토요타자동차도 도쿄가 아닌 아이치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창조경제의 롤 모델로 꼽히는 이스라엘도 우리나라 면적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산업군별로 전 국토에 고루 분포돼 있다.

우리 대기업의 수도권 집중은 통계적으로 드러나는 숫자보다 내용 면에서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기업이 전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지만 본사와 핵심 R&D 기능은 모두 수도권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주사로 전환해 본사를 서울로 옮기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다 지역 여론에 막히자,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포스코센터를 짓고 그룹의 핵심 기능을 수행 중이다. 바다가 현장인 조선과 해운사가 수도권에 본사와 핵심 기능을 두고 있는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본사 기능과 R&D센터는 판교테크노밸리에 있다. 부산 센텀에 있던 HD현대마린솔루션도 결국 2024년 본사를 판교로 옮겼다. 지역의 젊은 인재들이 기를 쓰고 수도권으로 떠나려는 이유다.

대기업으로서는 자본과 인력이 몰려 있는 수도권을 고수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최근 부동산 문제에 진심인 이 대통령이 다주택자에게 집을 강제로 팔라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제발 팔지 말고 버티라고 해도 파는 게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합리적 판단을 하게 제도를 만드는 게 정부가 할 일이라는 취지다. 그런 제도를 만들 권한이 없거나 장치가 부족하지 않으며 얼마든 할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 지방 이전도 마찬가지다. 정부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으로 한국을 떠난다는 대한상공회의소 보도자료가 가짜 뉴스 논란이 휩싸였다. 잘못된 통계에 근거한 자료지만 기업 입장에서 상속세 부담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방으로 이전하는 기업에 상속세를 면해 주면 안 될까. 수도권 쏠림을 완화할 수 있다면 상속세가 아니라 없는 특혜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망국적 부동산 문제의 근본 처방이라면 더 그렇다. 이재명 정부 균형발전 정책 성패도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릴 것이다. 역시 문제는 대기업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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