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헌법에 새겨야 할 이름 - 기억은 어떻게 국가의 형식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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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담, 가자 도청으로, 목판화, 54.5 × 40.8cm, 1988. 작가 제공 홍성담, 가자 도청으로, 목판화, 54.5 × 40.8cm, 1988. 작가 제공

부마와 5·18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질문이다. 국가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헌법에 새길 것인가?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울려 퍼진 ‘유신 철폐, 독재 타도’의 함성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넘어선 시민의 각성이었고, 자크 랑시에르의 말처럼 권력에 의해 가려지고 말해지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의 전환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를 종식하는 거대한 불꽃이 되었고, 그 불꽃은 80년 5·18 민주화운동과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헌법은 모든 법 위에 서서 국가의 근본 가치와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한계를 규정하는 최고 규범이다. 또한 헌법전문은 그 정당성이 어떤 역사와 희생 위에서 세워졌는지를 드러내는 정신적 선언이며, 국민이 공유하는 기억의 형식이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비워두는가에 따라, 국가는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부마민주항쟁은 ‘군부독재’를 실질적으로 무너뜨린 최초의 시민 항쟁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지켜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두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그 윤리적 기준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헌법전문 밖에 머물러 있다. 이 공백은 단순한 누락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서사의 단절이며, 국가 기억의 불균형이다.

홍성담의 판화는 그 공백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검은 선으로 깊게 파인 화면 속에서, 광주의 거리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장면으로 솟아오른다. 불길과 연기, 무너진 차량, 그리고 무엇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몸짓, 이 이미지는 어떤 특정한 순간을 재현한다기보다, 국가 폭력과 시민의 저항이 충돌하던 감각의 총체를 우리 앞에 다시 펼쳐 놓는다. 판화 속 인물들은 공포 속에서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이들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말하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통의 감각과 행동을 통해 연대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형성되는 ‘다중’이다. 이 다중은 공통의 분노와 존엄의 감각을 통해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되었다. 홍성담의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적 주체가 형성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성한다.

우리는 최근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다. 2016년의 ‘촛불 항쟁’과 2024-25년의 ‘빛의 혁명’은 국민주권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경험은 헌법이 아직 완결된 기억의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제 국회와 국민은 이 역사적 공백에 응답해야 한다. 헌법전문은 법이 아니라 기억이다. 부마와 5·18을 (그리고 추후 6·10항쟁까지) 헌법전문에 새겨 그 기억을 완성하는 것, 이야말로 이 시대가 감당해야 할 헌정사적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현재의 과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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