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책방골목에서 본 청년과 독서 문화 [미유 기자의 부산 후일담]
쉬운 책보단 지적 욕구 찾아
자신만의 감성 포착 경향도
이이무라 미유 서일본신문 기자
봄날,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을 거닐다 보면 일본에서 읽었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어머니 무릎에 앉아 들었던 그림책, 중학생 때 친구들과 몰래 빌려 읽던 소녀 만화, 대학 시절 깊이 빠져 읽었던 소설들. 책을 한 권 집어 드는 순간마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최근 한국 서점가에서도 일본 작가들의 번역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YES24 수영점을 찾아가 보니 일본 소설만을 모아 둔 책장이 있었다. 담당자는 “예전에는 미스터리 장르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과 같은 순문학이나 철학적 에세이로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며 “젊은 작가들의 약진도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본 젊은 작가들의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문체가 한국의 젊은 독자들과 정서적 공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내가 학부를 졸업한 모교 서남학원대학교 대학원에 재학 중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스즈키 유이(24) 씨의 작품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가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의 책은 교보문고, 알라딘, YES24 등 주요 온라인 서점 3곳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출간 직후 이동진 평론가가 ‘11월의 책’으로 선정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소개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은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
이는 한국 젊은 세대의 독서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이 책의 구매자 중 절반 이상이 20~30대였다. 이에 대해 명지대학교 주민재 교수는 “이 작품의 인기는 현재 한국 청년 독서 문화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주 교수는 또, 현재 젊은 독자들이 단순히 ‘읽기 쉬운 책’만을 찾기보다는 지적 욕구를 자극하면서도 이야기의 몰입감을 제공하고, 인용·언어·진실의 경계를 새롭게 질문하는 형식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흐름 위에 놓인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한때 MZ세대 사이에서는 독서를 자기표현과 소통의 수단으로 삼는 ‘텍스트 힙(text hip)’ 문화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 교수는 “이 표현 자체의 사용 빈도는 줄었지만, 흐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북스타그램, 북토크, 필사, 책상 투어, 독립서점 방문 등 읽기·쓰기·공유가 결합된 형태로 오히려 더욱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필사 문화의 확산과 함께, 긴 독서보다는 인상 깊은 문장이나 감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포착하는 독서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젊은 독자들이 일본에서 사랑받는 작품들을 읽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도 무척 반가웠다. 사실 나 역시 일본에서 ‘K문학 붐’을 직접 경험한 세대다. 2018년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이례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에 대해 고민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한강의 소설이나 윤동주의 시집을 함께 읽고, 작품과 관련된 지역을 찾아가 보기도 했다.
올해 4월부터 교환 기자로 서일본신문에서 부산일보에 파견돼 근무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내가 이곳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당시 한국 문학을 통해 다른 사회와 감정,문화를 접한 경험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학의 힘은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웃음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