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mm 비에 침수…합천 마을 침수는 예고된 인재?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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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막고 임시도로 설치…수관 5개 그쳐
침수 예견…합천군 공문 보내 철거 요청도
경남도·합천군, 침수 대책 마련·원인 조사

침수피해를 입은 합천군 대양면의 한 농가. 집 내부까지 모두 침수돼 복구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현우 기자 침수피해를 입은 합천군 대양면의 한 농가. 집 내부까지 모두 침수돼 복구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현우 기자

어린이날 내린 비로 경남 합천군 2개 마을이 침수돼 쑥대밭으로 변한 가운데(부산일보 5월 7일 자 8면 보도) 이번 사태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집이 잠길 만큼 수해를 입은 적도 없는 데다 이번에 내린 비의 양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7일 경남도와 합천군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11시 40분쯤 합천군 대양면 양산·신거마을 일대가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날 수해로 해당 지역에서는 40여 가구가 침수됐고, 55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방당국이 구조한 주민만 40명이었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인명피해가 생길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한 주민은 “비가 좀 많이 온다고는 생각했지만 처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차기 시작해 깜짝 놀라 대피했다. 50년 가까이 이곳에 살고 있지만 이 정도로 침수된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비가 많이 내린 것도 아니다. 경남도에 따르면 하천이 범람할 무렵 합천군의 누적 강수량은 59.6mm로, 같은 시각 경남 평균인 86.1mm보다 오히려 적었다.

경남도와 합천군 등은 침수 원인으로 인근 고속국도 제14호선 함양~창녕 간 건설공사 현장을 꼽고 있다. 임시도로를 내기 위해 하천을 막고 수관 5개를 설치했는데, 빗물을 무리 없이 흘려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현우 기자 경남도와 합천군 등은 침수 원인으로 인근 고속국도 제14호선 함양~창녕 간 건설공사 현장을 꼽고 있다. 임시도로를 내기 위해 하천을 막고 수관 5개를 설치했는데, 빗물을 무리 없이 흘려보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현우 기자

경남도와 합천군, 마을주민들은 마을 침수 원인으로 인근 공사현장을 지목하고 있다.

현재 마을 인근에는 한국도로공사에서 발주한 고속국도 제14호선 함양~창녕 간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공사 측은 이곳에 직경 1m짜리 수관 5개를 설치한 뒤 하천을 막고 임시도로를 냈다. 이곳에 설치한 임시도로가 물의 흐름을 방해했고 결국 하천이 범람했다는 것이다.

현장에는 하천을 막고 직경 1m짜리 수관 5개만 설치해 놓은 상태다. 많은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상황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군 관계자와 마을주민들의 설명이다. 그나마도 마을 쪽 수관은 상류에서 떠내려온 나뭇가지와 부유물로 막혀버린 상황이다.

또 다른 주민은 “구멍이 5개 밖에 안 되고 그마저도 이렇게 막혀 있는데 물이 흘러가겠나”며 “이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공사 측은 “지금까지는 해당 수관만으로 큰 문제가 없었다”며 “수관 보다는 갑작스런 집중호우 영향이 크다”고 해명했다.

공사 관계자는 “오후 9시까지는 순찰 돌면서 확인했는데 이후에 집중호우가 상류 쪽에 많이 내려서 갑자기 물이 몰려내려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쪽에서 바라본 수관 모습. 부유물 등에 완전히 가려져 구멍조차 보이질 않고 있다. 김현우 기자 마을 쪽에서 바라본 수관 모습. 부유물 등에 완전히 가려져 구멍조차 보이질 않고 있다. 김현우 기자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침수가 이미 예견돼 있었다는 점이다.

해당 지역은 지난해 같은 원인으로 농경지 침수가 한 차례 발생한 바 있다. 이에 군은 올해 집중호우를 우려해 지난 3월 한국도로공사 측에 ‘임시성토한 가도구간과 유수흐름을 방해하는 가시설물에 대해 우수기 전 반드시 철거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아직 본격적인 우수기는 아니지만 올해 초부터 계속해서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조기 철거를 검토해야 했는데 결국 때를 놓쳐버린 셈이다.

합천군 관계자는 “공문을 통해 앞서 사전 안내조치를 했지만 피해가 발생했다. 8일부터 행안부 감찰이 진행되는데 정확한 원인과 문제점을 파악할 예정이다. 일단 피해주민이 일상생활로 신속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침수 이후 마을 모습. 당시 물이 집 지붕 아래까지 찼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조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김현우 기자 침수 이후 마을 모습. 당시 물이 집 지붕 아래까지 찼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조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김현우 기자

경남도 역시 이번 합천군 침수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과 함께 추가 조사에 착수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7일 도청 확대간부회의에서 하천공사 인허가 과정을 조사하라고 감사위원장에게 주문했다. 합천 공사현장에 설치된 임시도로는 경남도 사무위임조례에 근거해 공사 하천 점용허가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지사는 또 지난해 7월 많은 인명피해가 난 ‘오송 지하차도’ 사고를 거론하며 다른 지역 하천공사 현장도 살펴 추가 피해를 예방하라고 지시했다.

박 지사는 “물 흐름에 지장을 주는 하천공사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완전히 점검해 곧 닥칠 홍수기에 피해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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