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없었다면…” 너무 일찍 세상과 작별한 부산대병원 안과 의사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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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병원 안과 교수 돌연사

40대 의사, 24일 뇌졸중으로 숨져
“마음까지 치료하던 분” 애도 확산
전공의 10명 공백 교수 9명 메워
의료진 업무 과중… “그로기 상태”
교수 사직서 제출은 예고대로
갈등 장기화에 애먼 희생양들만

지난 11일 경남 양산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 앞에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응급실 정상 진료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안내판이 놓여져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11일 경남 양산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 앞에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응급실 정상 진료가 차질을 빚고 있다는 안내판이 놓여져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대학교병원 안과 소속 40대 A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애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부산대병원 안과 전공의 10명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면서, 안과는 9명의 교수진이 업무를 맡아왔다. A 교수의 사인은 지주막하 출혈로, 과로사 여부는 조사 중이다. 하지만 전공의 공백으로 평소보다 업무가 과중했던 것은 사실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한다.

■전공의 공백 현실 보여준 사례

25일 경찰과 부산대병원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전 4시 30분께 A 교수가 의식이 없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A 교수는 호흡과 맥박이 없었으며 부산 해운대구 자택 인근 인제대 해운대 백병원에 옮겨졌지만 숨졌다.

해운대 백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에 이송됐을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1시간가량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끝내 숨졌다”고 전했다.

A 교수 사인은 지주막하 출혈이다. 지주막하 출혈은 뇌 표면의 동맥이 손상하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뇌졸중의 하나다. 지주막하 출혈 특성상 A 교수는 맥박이 뛰는 채 병원에 이송됐더라도 생존 여부는 장담할 수 없었고, 까다로운 응급수술이 필요했다.

부산대병원에 따르면 A 교수의 과로사 여부는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과 전공의 10명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면서 남은 교수진 9명이 외래 진료, 입원환자 회진, 야간 당직을 떠맡으면서 평소보다 업무가 과중했던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안과가 바이탈과(필수 의료과)는 아니지만 야간에 종종 안구를 다친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는 경우가 있어서 안과도 야간 당직을 선다”면서 “A 교수의 과로사 여부는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필수 의료과로 분류되는 응급의학과와 내과, 외과 등 병원 내 대부분의 과가 교수와 간호사 등 남은 의료진으로 버텨왔다.

부산대병원 한 의사는 A 교수와 관련해 온라인에 올린 글에서 “본원 안과 의국은 그로기(몹시 피곤한) 상태로 보여진다. 건강 잘 챙기기를 당부한다”며 “저도 지난 수요일부터 SBP(수축기혈압) 170 이상 나와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고 썼다. 전공의가 떠난 이후 대학병원에 남은 의료진의 업무 과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애도 확산에도 교수 사직 잇따라

A 교수는 평소 환자 진료와 연구에도 열심이었다고 알려졌다. 전공의 시절 ‘이달의 친절 직원’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부산대병원 홈페이지에는 2012년 11월 A 교수를 ‘이달의 친절 직원’으로 추천한 환자 글이 올라와 있다. 당시 글을 쓴 환자는 A 교수에 대해 ‘권위나 위압감보다는 환자의 외적인 상처와 더불어 마음까지 치료해 주시는 선생님이셨습니다’라고 썼다.

A 교수는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연구도 활발히 했고 40대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A 교수 애도 분위기는 확산하고 있지만, 예고대로 25일 부산대병원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이 잇따랐다. 진료 거부는 아니지만 ‘주 52시간 축소 근무’ 등의 방식으로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는다면, 이미 마이너스 통장 도입으로 차입 경영을 시작한 부산대병원이 더 버티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대란의 가장 큰 피해자인 환자 역시 한숨이 짙다.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 단체 연합인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5일 성명을 냈다. 이들은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가중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의료계와 정부가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가 아닌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설 것을 촉구한다. 환자들은 지금 당장 의사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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