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 청년의 꿈 키우는 도시로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갑충이 되어 있더라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처럼, 어느 날 눈을 떴더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레고르 잠자처럼 벌레가 된 게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이 바뀐 느낌이었다. 지난 3일 부산공업고등학교(이하 부산공고) 개교 100주년 행사를 마치고 난 다음 날이었다. 하루 종일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부산공고 창립 100주년을 축하한다는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라 방송과 언론에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전교생 장학금 100만 원’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주위 반응에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며 부산공고 출신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갑자기 기울어진 가정 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건축과가 있는 학교를 선택해 부산공고에 진학했지만, 늘 가슴 한구석에는 왠지 달리기도 전에 출발선에서 뒤처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고 싶었던 건축 공부를 하며 도면을 그리고 건축 재료 실습과 목공 실습을 하면서도 늘 미래가 불안했다.
학력·학벌 우선시 하는 세태
지역 불균형·인재 유출 초래
기술·열정이 평가 기준 돼야
고교 시절 배웠던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구조 원리나 실습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면서 유용했다. 실습 시간에 익힌 경험은 대학에서 처음 건축을 접한 동기들보다 훨씬 폭넓은 지식으로 연결됐다. 건축사 시험은 단번에 합격했고 지역의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해 어느덧 대표가 되었다. 그래도 늘 공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부산공고는 최상위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는 학교였음에도 그랬다. 2% 부족한 느낌, 결핍된 뭔가가 필자를 규정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른다. 필자 혼자만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대학교수가 되어도, 굴지의 회사 대표가 되어도, 정치인이 되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공고 출신이라는 사실이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있어서 공고의 역할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서사다. 전쟁 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경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공업 또는 기술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그들의 기술력은 존중받기보다는 학력과 학벌 차별에 밀려 편견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대학 진학과 명문대 입학에 지나친 가치를 두어왔다. 이미 한국사회는,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삼은 지 오래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매기고 적성과 무관한 진로를 선택하도록 압박받는 현실은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인재 유출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
부산공고 개교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위의 지점이었다.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지지 않은 현실, 오히려 과거의 명문고라는 인식보다는 시대가 변하면서 더 많은 이유로 움츠러든 후배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부산공고 출신임이 자랑스러웠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후배들이 4만 동문을 믿고 기죽지 말고 당당히 학교를 다녔으면 한다는 의미로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정한식(51회) 선배의 말은 모든 동문들의 마음이었다. 이런 사실을 각 방송과 언론에서 크게 다뤄주어 뜻하지 않게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게 됐다. 부산공고 개교 100주년 기념, 전교생 장학금 100만 원은 후배들에게 보내는 선배들의 애정 어린 박수갈채이자 내일의 희망을 향한 따뜻한 바람이었다.
며칠 전, 부산의 미래를 이끌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청년 플랫폼 (사)청년문화진흥협회가 출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랜 기간 청년 지원 활동을 펼쳐온 부산 대표 기업과 기관, 대학, 언론이 참여해 새로운 청년문화를 싹 틔우고 청년 네트워크를 촘촘히 엮어 청년들이 몰려드는 부산을 만들어 보자는 의기가 모아진 것이라 한다. 부산에 청년 유입보다 더 중요한 건 부산에서 자란 청년이 성장해 부산의 발전에 힘을 보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학력과 학벌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 직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모든 청년들이 자신의 기술과 열정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한 개인의 내재된 가능성을 북돋아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여는 원동력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부산은 학력과 학벌과 무관하게 청년이 꿈꿀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도시의 미래는 그 품에서 자란 인재들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