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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재진환자 중심 원칙 '가닥'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 ‘심각’ 단계가 해제됨에 따라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종료되고 시범사업으로 전환된다. 시범사업까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으나, 비대면 진료에 대한 구체적인 최종안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막판 조율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나, 재진환자를 중심으로 한다는 원칙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4일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제9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날 복지부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추진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의협 측의 의견을 수렴했다. 복지부는 이 자리에서 이번 추진안에 지난 2월 의협과 협의한 비대면 진료 추진원칙을 반영했다고 언급했다.
복지부는 지난 2월 9일 열린 제2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대면 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 △재진환자 중심 운영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 비대면진료 전담의료기관은 금지 등을 합의한 바 있다.
시범사업이 당장 다음 주로 다가왔음에도 비대면 진료에 대한 최종안이 나오지 않자, 시행 직전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최종안은 26일 열릴 예정이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후 공개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심의위원회가 이달 30일로 연기됐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두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의약계는 의료사고 등을 우려한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초진 환자를 포함한 비대면진료 전면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앞서 지난 17일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 초안이 당정협의를 거치면서 공개된 바 있으나, 보건복지부는 발표 내용이 최종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복지부는 안전한 시범사업을 위해 마지막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안을 확정할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2023-05-2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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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내년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에 위로금·생계비 지원
부산시가 내년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에게 위로금과 생계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폭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사건으로 인정받은 만큼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다만 부산에 거주하는 피해자에 대해서만 지원한다는 방침이어서 아쉬움도 제기된다.
부산시는 내년도 예산에 형제복지원 수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과 생계비를 편성하고 내년부터 이를 지급할 계획이라고 23일 밝혔다. 지원 대상은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임을 확인 받은 부산 거주자로 한정한다. 시는 대상자가 350명가량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확한 지원 금액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경기도 선감학원 피해자 지원 사례를 참고해 유사한 수준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선감학원 사건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아이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킨 사건으로, 경기도는 피해자에게 위로금 500만 원과 생활안정지원금 월 2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시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에 대한 의료비 지원사업도 더욱 확대한다. 지난해 11월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대상으로 본인 부담금 500만 원 한도 내에서 의료비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부산의료원에서만 적용 가능했다. 시는 관내 병원들과 협의해 지정병원을 권역별로 추가 확보해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또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조사와 피해지원체계 강화를 위해 전담팀을 구성하거나 인력을 늘리는 등의 방안에 대해서도 조직진단을 통해 구체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다. 시 민생노동정책과 관계자는 “피해자종합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 국비 지원을 소관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지원책이 부산 거주자에 한정돼 아쉬운 점으로 지목된다. 부산에서 발생한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생존자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있기 때문이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 대표는 “이번 대책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산지역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반기지만, 타지역 피해자를 배제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면서 “부산시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책임이 있는 만큼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과 인권유린에 대한 성찰과 반성, 추모사업과 트라우마 치유 등 자활을 돕는 후속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1986년 부산 사상구 주례동에 위치한 부랑인 수용시설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사건을 말한다. 지난해 8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형제복지원에서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리고,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와 피해 복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제대로된 사과와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난 14일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최승우 씨가 정부와 부산시를 규탄하며 광안대교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받은 만큼 시 또한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관계부처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한편,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시 차원에서 보다 두텁게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3-05-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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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돌봄부담에… 취학아동 있는 집 맞벌이 비율 줄었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가구의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특히 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가구에서 두드러졌다. 돌봄 부담으로 인해 맞벌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 대비한 사회적 돌봄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근로 연령층 사회적 위험의 경험과 대응의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시기의 취학아동(8~17세)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가구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에 따르면, 8~17세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의 비율은 2019년 상반기 65.9%였다. 이 수치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상반기 60.5%, 2021년 상반기 59.3%로 떨어졌다. 2021년 하반기에는 61.1%로 회복하는가 싶더니 2022년 상반기 59.7%로 크게 반등하지 못하는 추세를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고 일상 회복에 접어든 시점에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자녀가 미취학 아동(8세 미만)일 때도 맞벌이 비율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경우 코로나19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회복세를 보였다. 8세 미만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비율은 2019년 상반기 46.1%에서 2020년 상·하반기에 41.8%로 떨어졌다. 2021년 하반기에는 45.7%, 2020년에는 45.3%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반면, 아동이 없는 부부의 경우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이 없는 부부가구의 맞벌이 비율은 2019년 상반기 51.6%에서 2020년 하반기 54.5%로 느는 등 오히려 증가하는 추이를 보이기도 했다. 2022년 상반기에는 51.7%로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맞벌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취학아동을 둔 부모의 가구당 취업 소득도 감소했다. 8~17세 아동 부부가구의 평균 월 취업 소득은 2019년 상반기 314만 원에서 2021년 상반기 290만 원으로 24만 원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코로나19으로 인한 ‘돌봄 부담’이 커지면서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미취학연령 아동의 경우 긴급보육 형태의 공적 보육시스템이 작동했으나, 취학연령 아동의 경우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학습과 돌봄 영역에서 부모의 역할이 더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돌봄 체계의 강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등교일이 줄어들면서 높은 돌봄 부담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맞벌이 부부의) 취업자 수 감소가 컸을 것”이라면서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돌봄 체계를 작동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3-05-2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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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연구원 "인구위기에 부울경 공동 대응해야"
부산·울산·경남이 인구위기 극복을 위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부울경 특별연합은 무산됐지만, 인구 문제에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18일 부산연구원은 ‘인구위기에 대한 부울경 지역 공동의 대응’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부울경의 인구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인구’ 중심 정책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생활인구는 기존의 주민등록인구를 비롯해 통근·통학 등으로 인해 특정 지역에 머무르는 체류인구, 출입국 관리법에 따라 외국인 등록을 한 외국인 인구를 포함한 개념이다. 부울경의 주민등록상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이나, 체류인구는 제주도와 수도권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연구원은 체류인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반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휴양지에서 여행을 즐기면서 업무도 할 수 있는 근무 형태인 ‘워케이션(일·휴가의 합성어)’ 프로그램이 사례로 소개됐다.
한발 더 나아가 인구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메가시티 전략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부울경 특별연합’은 지난해 중단됐으나, 수도권 인구 쏠림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 시·도가 뜻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은 하나의 경제공동체인 만큼, 인구 유입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연구원은 부울경 지역 연구기관 간 인구정책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나아가 시·도간 상생 교류사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과 울산, 경남이 가지고 있는 매력요인과 결핍요인을 상호보완해 교류를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연구책임을 맡은 김세현 연구위원은 “부울경 특별연합 설치 노력이 실패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인구 문제에 대한 지역간 연합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부울경 연구기관 간 인구위기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연구하고, 기반 조성을 위한 부울경 상생교류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3-05-1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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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10만 명당 고독사 9.8명 ‘전국 최고’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 이전에 생전 삶이 고독하지 않도록 하는 정부의 고독사 예방 기본 계획이 처음 수립됐다. 고독사 위험군을 사전에 발견하고, 이들의 사회적인 고립을 해소할 수 있도록 지역별·연령별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18일 보건복지부는 임종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기 위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기본계획은 고독사 예방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첫 기본계획이다.
고독사란 가족·친척·이웃 등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이나 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법률상 기준은 없으나 부산·서울 등에서는 자체 기준인 3일을 적용해 판단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은 다른 시도에 비해 인구 10만명 당 고독사 사망자 수가 9.8명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전국의 고독사 사망자 수는 3378명으로, 5년 사이 점차 증가 추세를 보여 고독사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부는 우선 2027년까지 전체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 비율을 20% 감소하는 것으로 정책 목표를 설정했다. 2021년 기준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 사망자 수는 1.06명인데, 이를 0.85명으로 줄이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먼저 고독사 위험군 파악에 초점을 맞춘다. 일상 생활에서 사회적 고립가구가 사전에 발견될 수 있도록, 공동주택 입주자대표회의나 이장·통장·반장 등 이웃을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생명사랑 지킴이)’로 양성한다. 또 부동산중개업소, 식당 등 지역밀착형 상점을 통해서도 위험군을 발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생전에 사회적 단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고독사 취약지역 내 공동체 공간도 조성한다. 함께 커피를 마시거나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두고, 공유 부엌이나 취미 활동·생활 도움 등을 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연령별로 고독사의 원인과 유형이 다른만큼, 생애주기에 맞는 정책도 적용한다. 청년 고독사 중 주요 원인은 자살인 만큼 청년 위험군에 대한 정신건강 관리를 강화한다. 또 고립·은둔 청년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한 체계도 갖춘다. 50~60대 중장년은 고독사 사망자 중 가장 많은 비중(58.6%)을 차지하는 연령대다. 이 연령대 위험군은 ‘경제적 문제’를 가장 힘든 점으로 꼽는 만큼, 조기퇴직한 중·장년을 대상으로 재취업 지원과 평생교육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도 함께 마련했다.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집에서 지내는 노인의 경우, 건강뿐 아니라 가사노동, 외출동행 등 다양한 욕구를 보이는 만큼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적 돌봄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도 고독사 예방과 관리를 담당할 중앙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설립하고, 각 지역 내에도 역할을 담당할 센터를 지정한다. 근거 기반의정책 추진을 위해 고독사 실태 파악 주기도 현행 5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고, 매년 사망자 현황과 위험군의 서비스 욕구 등을 정교하게 파악해나갈 방침이다.
2023-05-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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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가 톤즈로 간 이유 [부산피디아] ep.4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느라 허리가 굽은 홀어머니에게 번듯이 효도할 수도, 풍족한 생활을 누리면서도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장된 미래'를 벗어 던지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사람이 있다. 바로 의사 대신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난 ‘남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다.
■의사 대신 택한 사제의 길
이태석 신부는 1962년 10월 17일 부산광역시(당시 경상남도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이 신부가 불과 아홉 살 때 부친이 세상을 뜨면서 홀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 신부는 집 바로 옆에 있는 송도성당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는데, 이곳에서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이 그의 삶에 큰 울림을 준다.
이 신부와 함께 수도원 생활을 했던 이태석신부기념관 이세바 관장은 “하와이 몰로다이 섬에서 한센인을 위해 평생 헌신한 ‘다미안’ 신부라는 분이 있다. 그의 생을 다룬 영화를 본 이태석 신부는 ‘나도 저렇게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어려운 형편에도 학창 시절 내내 우수한 성적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대단해 중학교 3학년 때는 직접 ‘묵상’이라는 성가를 작곡·작사하기도 했다. 천마초, 토성중,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태석 신부는 1981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한다.
1987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육군 12사단에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사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이미 10남매 중 2명이 사제의 길을 걷고 있어 가족의 반대가 컸지만 이 신부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1991년 전역 직후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 1994년에 평생 수도자로 살겠다는 맹세인 서원을 받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
로마에 있는 살레시오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1999년 8월, 이태석 신부는 우연히 아프리카 수단에 열흘간 봉사활동을 가게 된다. 이때 전쟁과 가난으로 병든 사람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당시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 중이던 수단은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수족이 없는 장애인들, 거리를 누비는 헐벗은 사람과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아이들을 본 이 신부는 이곳에 다시 돌아올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2001년 정식 사제가 되자마자 남수단의 마을 ‘톤즈(Tonj)’로 간다.
이세바 관장은 “이태석 신부에게 ‘형은 왜 하필 톤즈에 가려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누구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에, 가장 가난하고 도움이 절실한 곳에 가는 게 하느님이 맡기신 내 몫인 것 같다’더라”고 회고했다.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만드는 것이었다. 20년 넘게 내전 중이던 수단은 곳곳에 총상 환자가 넘쳐났지만 반경 100km 안에 의사라고는 이태석 신부뿐이었다. 수십km 밖에서도 환자가 몰려와 밤낮없이 진료소 문을 두드렸지만 이 신부는 싫은 내색 없이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았다. 백신을 보관할 냉장고를 돌릴 전기조차 없자, 직접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신부는 한센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한센인은 문둥병, 나병에 걸린 환자를 뜻한다. 이 신부는 한센인의 마을 ‘라이촉’에 자주 들렀다. 발 모양이 제각각 다른 한센인을 위해 맞춤형 신발을 만들어 선물했다.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은 “이태석 신부는 수단 안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한센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고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시간만 나면 라이촉 마을을 찾아갔다”고 전했다.
■교회보다 먼저 세운 학교
이 신부는 선교사 자격으로 왔음에도 교회보다 학교를 먼저 세웠다. 그는 저서에서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톤즈에서 초, 중, 고등학교 12년 과정을 모두 가르치는 유일한 학교를 세웠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직접 음악을 가르쳤다. 전쟁과 가난을 겪고 있는 톤즈 아이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쥐어 주고 기쁨과 희망을 전하기 위함이다. 악기를 가르칠 선생을 구할 수 없자, 직접 악기를 배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35명의 아이를 모아 남수단 최초의 악단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고, 창단 불과 1년 만인 2006년에 수단 정부 행사에 초청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톤즈에서 왕성히 활동하던 이태석 신부는 2008년 10월 휴가차 귀국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4기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때조차 의사에게 ‘톤즈에서 우물을 파다 와서 돌아가야 한다’며 자기 몸보다 톤즈를 걱정했다.
이태석 신부는 투병 중에도 자선 공연을 통해 톤즈에 대한 봉사활동과 지원을 호소했다. 하지만 결국 암이 간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2010년 1월 14일 오전 5시 35분 ‘Everything is good’이라는 유언을 남긴 채 4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울지마 톤즈
이태석 신부의 선종 이후 KBS 제작진이 그의 생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톤즈를 찾았다. 딩카(남수단 민족)의 전사들은 눈물을 수치로 여기지만, 이 신부의 선종 소식을 들은 수많은 톤즈 사람은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쏟아낸다. 이후 2010년 9월 ‘울지마 톤즈’ 영화가 개봉해, 44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 신부의 선행이 대중에게 크게 알려졌다.
이 신부가 선종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 많은 사람이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태석신부기념관 이세바 관장은 “의사가 돼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려운 곳에 가서 헌신한 모습이 모두에게 충격과 교훈을 함께 준 것이 아닐까 한다”고 언급했다. 이태석재단 구수환 이사장은 “존경받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봉사와 나눔에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준 이태석 신부. 그가 보여준 섬김과 봉사, 헌신의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본 취재는 부산광역시 지역신문발전지원 보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3-05-1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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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플 권리도 없나요” 중증장애인, 구강 진료 ‘별 따기’
뇌병변장애인인 김기환(34) 씨는 지난달부터 밤낮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내야 했다. 잇몸질환 때문에 치과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진통제를 먹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에 선뜻 나서는 민간 병원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인데다 기댈 수 있는 공공의료시설의 경우 예약이 꽉 차 최소 두 달은 기다려야 의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씨의 어머니 문해숙(62) 씨는 “장애인에게는 아플 권리도 없는 것 같다”며 “비장애인에게는 병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겠지만, 중증장애인은 매번 병원에 사정해야 하는데 문전박대가 일상”이라고 말했다.
6만여 명에 달하는 부산 중증장애인이 상시로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사실상 한 곳에 불과해 장애인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 장애인도 아프면 제때 구강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공공의료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부산뇌병변복지관과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부산에서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부산대병원 부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 부산의료원, 나눔과열림장애인치과의원(민간시설) 3곳이다.
지난해 12월 부산시에 등록된 장애인은 모두 17만 6245명이다. 이 중 마취가 필요하거나 보조인력이 필요한 치과 영역 중증장애인(지체·지적·뇌병변·자폐·정신·뇌전증)은 11만 8624명이다. 이들에게 상시 치과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부산대병원 부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 한 곳뿐이다.
중증장애인은 신체 이동 제약 때문에 구강 치료를 받기 어려워 전담 병원이 필요하다. 휠체어나 보조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치과 진료실에는 전용 이동 공간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거나 소리에 예민하기 때문에 진료 과정에서 저항하거나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치과 치료를 받으려면 사회복지사 등 보조인력 5~6명이 팔다리와 머리를 붙잡아야 한다. 수면마취나 전신마취가 필요한 경우가 많아 전문의와 시설 장비는 필수적이다.
그나마 중증장애인이 구강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인력 부족 등 인프라가 열악하다. 부산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서는 지난해만 지적장애인, 뇌병변장애인 등 6100여 명, 하루 30명이 진료를 받았다. 치과 의사 3명 등 의료진 9명이 상시 인력으로 근무하고 마취과 전문의가 상황에 맞춰 지원해도 환자를 전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또 다른 공공의료기관인 부산의료원에도 담당 의사가 한 명뿐이라 여건상 주 1회만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증장애인의 구강 건강에는 항상 적신호가 켜져 있는 셈이다. 중증장애인은 혼자 치아 관리를 하기 힘들어 보호자의 돌봄을 받아도 충치와 잇몸병 등 구강질환이 많다. 보건복지부의 ‘2020∼21년 장애인 건강보건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구강검진 수검률은 17.7%로 비장애인보다 8.1%포인트(P) 낮았다. 중증장애인(14.3%)은 비장애인에 비해 11.5%P 낮은 수준이었다. 장애인의 다빈도 질환 1순위는 잇몸병으로 불리는 치주질환이었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공의료 확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부산시의 대책 마련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서울의 경우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와 의료진 50여 명이 상근하는 독립된 ‘시립장애인치과병원’이 있다. ‘제2시립장애인치과병원’도 문을 열 예정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산뇌병변복지관 등이 포함된 ‘부산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 정책 제안 연대’는 19일 오후 2시 부산시청 앞 광장에 모여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립장애인치과병원 설립 △중증장애인 치과 진료를 위한 전담인력 확충 △서부산의료원 개원과 침례병원 공공 전환 시 중증장애인을 위한 치과 진료 시설 확충 등을 시에 요구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부산경남지부 김권수 공동대표는 “부산의 장애인 치과 현실은 지난 10년 동안 개선된 게 거의 없다”며 “서울 현황을 참고해 부산에도 장애인 구강진료기관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한 시는 이를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3-04-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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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피아노 선생님 열정이 음악 신세계 열어줘”
“이번 수상이 다른 장애인 예술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열정적인 선생의 도움으로 어엿한 피아니스트가 된 시각 장애인이 이제는 장애인 예술가단체에서 다른 장애 예술가를 도우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장애 인식 개선 등의 공로를 인정받은 그는 제43회 장애인의날 기념행사에서 부산시장상을 받는다.
부산시는 19일 "피아니스트 박송이(32) 씨에게 20일 제43회 장애인의날 기념행사에서 부산시장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030월드엑스포 유치 기원 부산대상국제음악콩쿠르’ 대학(일반) 부문에서 3등상을 수상하는 등 장애 인식 개선의 공로를 인정 받았다.
박 씨는 네 살이 되던 해에 시력을 잃었다. 병원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원인을 모르니 마땅한 대책도 없어 답답한 상황이었다. 박 씨는 현재 빛과 어둠을 분간하는 정도로만 앞을 볼 수 있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 음악이 자리를 잡았다. 시작은 피아노 장난감이었다. 어머니 이경선 씨는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으면 송이가 장난감 피아노로 그걸 따라 연주했다”며 “곡을 연구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머니는 피아노에 소질과 관심을 보인 일곱 살 딸을 동네 피아노 학원에 데려갔다. 자식의 관심사를 응원해 주고 싶은 여느 부모와 똑같은 평범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동네 피아노 학원은 시각 장애인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박 씨를 받아 주지 않았다.
피아노에 대한 박 씨의 열정은 그래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인생 첫 ‘은사’를 만나게 된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살며 개인 피아노 교습을 하던 주민이 소식을 접하고 박 씨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둘의 피아노 수업 방식은 남달랐다. 선생이 먼저 피아노를 치면 박 씨가 뒤따라 곡을 따라 치는 방식이었다. 악보를 볼 수 없는 박 씨를 위한 교육 방법이었다. 박씨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 집에서 밥을 먹는 등 피아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도움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양손 연주가 가능해졌을 때 선생님에게 자랑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며 “굉장히 열정적으로 그리고 열린 생각으로 나를 대해 줬다”고 추억을 되살렸다.
박 씨가 8세 때 시각장애인 학교인 청주맹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둘의 연주는 1년도 안 돼 멈췄다. 하지만 당시 배운 기본기는 박 씨에게 ‘나침반’이 됐다. 박 씨는 이후 부산예술고등학교 콩쿠르에서 2등으로 입상해 부산예술고에 진학했고,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악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박 씨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 연주자로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박 씨는 “내 음악 인생의 첫발을 떼게 해 준 분”이라며 “어릴 때 헤어져 연락할 방법이 없어졌다. 다시 연락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음악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 씨는 이번 수상이 비슷한 다른 장애인 예술가, 음악가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현재 장애인 예술가단체 ‘아르테문화복지회’에 소속돼 부산의 장애 음악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장애 음악인 자립과 장애 인식 개선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박 씨는 “이번 수상이 선한 영향력을 미쳐 많은 이에게 응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2023-04-1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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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서비스 곧 시동
발달장애인 보호자에게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오는 6월부터 부산에서 시작된다.
부산시는 오는 24일까지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 수행기관을 지정하기 위한 공모를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시는 공모를 거쳐 오는 6월부터는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은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입원, 경조사, 신체적·심리적 긴급상황 발생 시 7일 이내로 24시간 돌봄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사업이다.
이용 대상은 만 6세 이상부터 65세 미만 등록 발달장애인이다. 이용 기간은 1회 입소 시 최대 7일까지 가능하며, 연 최대로는 30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 1일 이용료는 1만 5000원이며, 식비는 3만 원(본인부담 1만 5000원, 기관 지원 1만 5000원)이다. 이용자는 총 3만 원만 지불하면 된다. 긴급돌봄을 이용할 경우 일상생활 지원, 사회참여 활동 지원, 식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보건복지부에서 마련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따른 것으로, 발달장애인 돌봄서비스를 다각화하고 보호자의 돌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추진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연말까지 발달장애인 긴급돌봄 시범사업을 시행한 뒤, 시범사업 결과를 반영해 2025년부터 본사업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새롭게 시행하는 사업뿐 아니라 부산시의 다양한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을 통해 더 많은 발달 장애인이 혜택을 누리고, 가족의 돌봄 부담도 함께 경감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23-04-17 [14: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