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항일투쟁 의지 뒤늦은 햇빛 `二題`-박세현지사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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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서 애국가 작곡독립희망 담아 보급

박일철씨(54.부산 해운대구 반여1동 대림아파트)는 정부수립 50주년을 맞는 올 8.15 광복절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지난 93년 건국훈장을 받았던 백부 박세현지사(사진)가 일제시대 때 고향인 기장에서 애국가를 작사 작곡,주민들에게 보급하는 등 나라를 되찾기 위한 활동상이 한 향토사학가에 의해 재조명 됐기 때문.

기장향토사학자 공태도씨(61)가 박씨의 아버지 박세건씨(92년 사망)으로부터 넘겨받아 보관해 오던 백부 박세현지사의 기록을 지난 5월 "기장향토문화사"에 발표하면서 백부가 만든 애국가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

"꿈을 깨세 꿈을 깨세 얼른 꿈깨세/,/오매불망 국권회복 성취하고서/세계열강 대열속에 전진해보세."

기장지역에서 불리워지던 애국가(일명 꿈을 깨세)는 일제가 조선을 합방한 1910년이후 주민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항일투쟁의 의지를 고취하고 주권회복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아버지는 제게 "당시 누구도 이 노래를 자유롭게 부를 수 없었지만 아무도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이 애국가는 1914년 기장군 기장읍에 자리잡고 있던 "명전의숙"의 교장이자 기장광복회 총무를 맡고 있던 박세현(1897년 출생)지사가 기장보통학교 국어교사 박우돌지사와 함께 작사.작곡했다.

박 지사는 일경들의 눈을 피해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비밀리에 가르쳤으며 아이들의 입을 통해 7천 기장군민들에게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박지사는 기장광복회 의거계획이 밝혀져 1916년 당시 경남경찰청에 잡혀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 속에서도 기장광복회(회장 김약수)회원명단과 배경추궁을 끝내 함구하다 1917년 약관 20세의 나이로 부산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백부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1919년 3.1만세 운동 당시 명전의숙 졸업생들이 가장 먼저 일어나 주도적으로 일제에 항거 했으며 애국가는 기장지역민이 좌절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버팀목 구실을 한 것 같다"고 박씨는 말했다. /김수진기자/

kscii@p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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