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기생' 화보·약 광고 등 생활상 담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모던일본 조선판 1940'에 실린 미스 조선 화보. 오른쪽이 미스 조선에 당선된 평양 출신의 박은실. 나이 신장 체중 취미까지 자세히 실었다. 사진제공=어문학사

일본잡지 '모던일본'은 1939년 11월호에 조선특집판을 내 30만 부나 팔리는 예상치 못한 반향을 불러왔다. 잡지사는 당초 예상에 없던 2차 조선특집판을 냈으니, 그게 바로 '모던일본 조선판 1940년 8월호'다.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40'(모던일본사/홍선영·박미영·채영님·윤소영 옮김/1만7천원/어문학사)은 그 잡지를 완역한 것.

1940년 사회·문화상 실은 대중잡지
당시 일본인들의 조선 인식 등 반영


1940년의 조선을 만날 수 있는 자료다. 대중 잡지인 만큼 광고와 화보도 많은데, 특히 기생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로 치면 탤런트 평균 수입쯤에 해당하는 '경성 일류 기생의 재산보유 순위'를 일목요연한 표로 소개하기도 하고, 도쿄 히비야를 방문한 경성 기생과 기생의 하루를 찍어 화보로 처리했다. 조선을 조목조목 이해한다는 취지의 백문백답에서도 기생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일류 기생은 한 시간에 얼마 정도입니까?' 라는 질문과 '요금은 모두 동일하며 1시간 1엔30전입니다'라는 답변. 심지어 여대생을 모아놓은 대담에서도 기생이 주제로 오를 정도로 일본인들의 조선 여성에 대한 인식은 '기생'이란 한 단어에 집약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약 광고, 화장품 광고, 책 광고 등등 광고에서도 시대의 상황이 반영돼 있다. '창씨개명은 신 성명학과 작명법'으로 라는 제목을 단 책 광고는 마스다 선생이 다년간 고심해 쌓은 모든 지식을 결집했노라 선전하고 있고, '중국군은 어떠한 병기를 사용하는가'라는 책에는 만주사변 하에서 국민의 필독서라는 문구가 도드라진다.

강력한 내선일체를 추진했던 일본의 치밀한 문화정책의 일면이 책 전반에 걸쳐서 목격된다. 물론 지금 독자들이 읽으면 불편한 심기를 감출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미나미 총독과의 대담이 그 중 하나. 창씨개명에 대한 미나미 총독의 이해는 이러했다. '조선인에게 일본인이 될 수 있는 문화를 연 것이야. 조선은 4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성명이 중국식이 되어 버렸네. 창씨란 성명은 중국인이고, 정신, 신체는 일본인이라는 모순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고 성명에도 일본인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이라네.'

어쩔 수 없는 현실인식의 한계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감추고 싶은 건 감추는 '소록도 탐방기'에서 정점에 달한다. 일본 현지에서 특파된 기자가 '조선의 어느 작은 섬의 봄'이란 제목을 달고 쓴 르포에서 소록도는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지상낙원이다. '육지에서 흰 쌀밥을 보기 어렵다고 할 때도 이 섬 정미소에서는 벼를 찧어 자급자족하니 백미를 먹을 수 있었다'란 구절, 혹은 '원장님이 아무리 거절을 해도 환자들이 봉사작업을 그만두지 않는다며 환자들의 아름답고 진심어린 심정을 세계에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는 구절 등등. 일본인 원장에 의해 강제노동과 일본식 생활이 강요되고, 불임시술이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판이한 인식이다.

당시 일본인들의 조선 인식과 조선의 사회 문화 경제에 대한 걸러지지 않은 1차 자료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있는 책이다. 물론 가려읽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