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의 원전 고리가 불안하다] ⑥ '어둠의 장막'을 걷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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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 귀막은 독점 정책… 시민 참여 보장해야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지난 31일 고리 1호기 주제어실과 비상발전기 등 주요 설비를 언론에 공개했다. 김경현 기자 view@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국내 원전의 안전성 논란을 둘러싼 논쟁의 양상은 한결같다.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은 철저한 기술적 검토를 거치고 3중, 4중의 보호장치를 갖춘 만큼 어떠한 안전상 문제도 있을 수 없다고 강변한다. 반면 환경단체와 반핵론자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정부와 원자력 사업자가 핵심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사고 위험을 축소, 은폐하려 하고 있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논의에서 사고 발생시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민들과 시민 안전을 위한 행정의 1차 보루인 지자체는 빠져 있다는 것이다.

■ '원자력 마피아'가 정책 독점

우리나라 원전 정책과 산업의 두 축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다. 지경부가 에너지 수요 전망에 따라 에너지 수급계획을 발표하면 원전 추가 건설 규모가 정해진다. 교과부는 원전 연구·개발과 안전 규제를 담당한다.

문제는 원자력 산업의 진흥과 규제를 한 부처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건설 사업자가 감리·감독까지 다 맡고 있는 셈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진흥과 규제를 병행하며 내·외부의 비판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오다 사태를 최악으로 몰아 가고 말았다.

수명연장 안전조사 보고서도 비공개
전문가 집단 결속, 이익 추구만 급급


국내 원자력계는 정부, 산업계, 학계가 단단한 인맥을 형성하고 강한 결속력을 과시해 '원자력 마피아'란 비판까지 받아왔다. 원자력과 관련된 중요 정보와 정책 결정을 이들 전문가 집단이 사실상 독점하면서 비판적 접근은 차단되기 십상이었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안전조사 보고서는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5년째 공개되지 않고 있고, 크고 작은 원전사고들이 축소되거나 뒤늦게 공개되는 등 비밀주의가 만연해있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에너지정의행동 정수희 활동가는 "원자력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원자력위원회는 원자력 기술을 이용하고 확대하는 데 근간을 두고 있어 비판적 접근은 봉쇄되기 일쑤였다"며 "이 때문에 국내 원전 정책은 신규 발전소 건립부터 수명 연장, 출력 증강까지 주요 사안 결정에서 사업자의 의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뒤늦게 원자력 안전 규제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교과부에서 원자력안전국을 분리시켜 원자력안전위원회로 독립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원회의 인적 구성이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정책국장은 "전문성을 앞세워 또다시 원자력계 인사들로만 채워질 경우 균형감각과 비판 기능은 상실한 채 원자력계의 집단이익 추구로만 흘러간다"고 강조했다.

■ 시민·지자체 참여로 사회적 안전망 구축해야

부산을 동남권 원전산업의 육성 메카로 발돋움시킨다는 비전을 내세우는 부산시지만, 정작 시와 일선 지자체에 제대로 된 원전 전문가는 없는 실정이다. 부산시와 기장군이 군 출신의 화생방 전문 요원 1명씩을 두고 있는 게 고작이다.

원전 운영과 관련해 부산시와 지자체의 역할은 원자력시설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상대응시설을 구축하고, 주민 대피 계획을 세우는 등 방재 조치를 하는 것으로 한정돼 있다. 결국 중앙정부가 원전 정책을 결정하면, 지자체는 사고가 났을 때 뒷처리를 하는 수준이다.

발전소 주변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전 인근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민간환경감시기구 역시 실질적인 조사권이 없어 역할이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민간환경감시기구들은 원전 측과 지역 주민들 간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관리·조정해주는 중재자 역할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지방변호사회가 이례적으로 고리 원전 1호기 정보 공개와 가동중지 가처분 신청에 나선 것도 이같은 문제의식에서다.

부산지방변호사회 강동규 변호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도 보듯이 사고가 났다하면 부산과 울산 전역이 직접적으로 방사능 위험에 노출되고 만다"며 "정부는 원전이 안전하니 믿고 따르라고 강요하지만, 뒤로는 갖은 당근책을 제시하며 불신과 불안을 봉합해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원전 설비 자체의 안전성 못지 않게 원전 운영과 관련한 통제와 감시 감독 등 사회적 안전망도 보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국장은 "원전 운영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원전 관련 정보와 의사 결정에서 시민사회와 지자체의 참여가 구조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끝-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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