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희의 스크린 산책] '로얄 어페어'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와 왕비 '치명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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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어페어. 화인픽쳐스 제공

18세기 후반 덴마크의 왕이었던 크리스티안 7세는 총명하고 예술적 재능이 풍부했으나 정신분열증 환자였다. 그는 1766년 17세 나이로 즉위하자 영국의 공주이자 사촌이기도 한 캐롤라인 마틸다와 혼인한다. 그러나 그의 정신병으로 인해 생활은 방탕했으며 왕비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왕의 마음을 조절할 수 있었던 주치의 스트루엔시는 왕의 병세가 악화될수록 세력을 키워 나갔고 왕비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1772년 왕의 계모 율리안느 마리가 이끄는 귀족들의 쿠데타로 왕비는 이혼당해 유폐되고 스트루엔시는 처형된다. 왕비는 프리데릭 왕자와 루이스 공주를 낳았는데, 그중 루이스 공주는 스트루엔시의 딸로 알려져 있다. 1784년에 프리데릭 왕자는 병세가 악화된 크리스티안 7세를 대신해 섭정을 시작하여 이후 55년 동안 덴마크를 지배하게 된다.

로코코 시대 덴마크 왕실스캔들 영화로
사극이 줄 수 있는 지적 즐거움 가득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천일의 앤'을 방불케 하는 이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다. 덴마크 출신의 니콜라이 아르셀 감독은 이 사건을 '로얄 어페어', 즉 '궁중의 사랑 이야기'로 풀어낸다. 18세기 말은 유럽이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격동에 휘말렸던 시기이다. 이 시기 귀족들의 사치와 방탕이 극에 달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왕이나 왕비가 비밀스러운 애인을 두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실제로 당시 귀족사회에서 연애는 혼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영국 출신 덴마크 왕비의 불륜과 그것을 빌미로 독일인 개혁파였던 스트루엔시가 처형된 사건은 단순한 스캔들을 넘어 매우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자유로운 두 영혼의 만남으로 해석한다.

영화는 캐롤라인 왕비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 당사자였던 왕비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부터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입장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루소와 볼테르를 탐독하는 왕비가 덴마크로 시집와서 유폐된 채 죽기까지 9년의 세월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안에서 자유주의자 스트루엔시와의 만남과 개혁에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다.

스트루엔시와 왕비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어디를 가나 구속당한다"는 루소의 책 구절로 처음 소통하게 되고 두 인물의 사랑은 구습 타파와 변혁을 향한 시대적 갈망과 겹쳐진다. 빛 속에서 시작한 그들의 사랑이 어둠과 죽음으로 끝나고, 그 이후는 왕의 이야기가 부연되는 것은 자연의 빛을 사방에 미치도록 한다는 '계몽'(enlightenment)의 추이와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치명적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은 이러한 사극영화만이 줄 수 있는 지적 즐거움이다. 그중에서도 미학적으로 유럽 역사에서 가장 볼거리가 풍부한 '로코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 하겠다. 27일 개봉.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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