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카데미 출신 신예감독 "이번에도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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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제명에 죽고 싶다.

5천만 원. 보통이라면 어지간한 직장인의 연봉에 해당될 만큼 큰돈이다. 하지만 영화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50억 원을 웃도는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를 감안하면 웬만한 배우 한 명 몸값도 안 된다. 그런데 이 돈으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친구들이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학생들이 그 주인공인데, 이들 신예 감독에게 주어지는 제작비가 바로 5천만 원이다.

KAFA 출신 감독의 작품 2편이 잇따라 개봉에 나선다. 먼저 김승현 감독의 '누구나 제명에 죽고 싶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공식 초청돼 신인답지 않은 과감함으로 한 남자가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묘사하며 새로운 복수극을 탄생시켜 눈길을 끌었다. 인간의 억눌린 욕망과 분노, 폭력을 드라마틱하게 그려 낸 이 작품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주인공이 엉뚱한 일에 휘말려 그동안 참아 온 모든 불만을 폭발시키는 과정이 꽤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꼬여 있는 채무 관계, 매혹적인 팜 파탈이라는 익숙한 소재들을 끌고 왔지만, 사건의 연결 고리가 흥미롭게 맞물려 이야기를 힘 있게 밀고 간다.

김승현, 복수극 '누구나 제명에…'
이사무엘, 판타지 스릴러 '설인'
기존의 성공 신화 이어갈지 주목

요즘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마마보이 캐릭터로 얼굴을 알리고 있는 최원영은 일상에 지친 직장인의 모습부터 욕망과 분노로 치를 떠는 광기 어린 모습까지 입체적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이사무엘 감독의 '설인'. 묘한 공간에서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수상한 인물들의 잊혀진 이야기로 꾸며진 한국형 판타지 스릴러다. 지난해 시네마디지털서울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첫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 주면서 한 편의 소설과 같은 시나리오를 입체적으로 빚어낸다.
설인. KAFA FILMS 제공 영화는 시작부터 몽환적이다. 뼈가 시리도록 새하얀 산의 영상을 비춘다. 설인이라는 소재와 몽환적인 분위기는 긴박한 스토리 진행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파장을 던져 준다. 미완성인 인간은 언제고 작은 충격에 흔들리는 존재라는 것. 극 중 주인공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로 앞만 보고 살아가는 존재였지만 자신의 삶을 가로막은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흔들리고 죄의식에 힘들어 한다. '분노의 윤리학' '남쪽으로 튀어' 등을 통해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김태훈이 주연을 맡았다.

이들을 포함해 KAFA 출신 신예감독의 작품은 초저예산으로 제작됐지만 의외로 성과가 좋다. 지난 2009년부터 매년 4편의 장편 영화를 제작해 왔는데 2011년 '짐승의 끝'을 선보인 조성희 감독이 지난해 '늑대소년'으로 상업영화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조영직 촬영감독 역시 '피에타'로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 세계적으로 촬영실력을 인정받았다.

'파수꾼' '밀월도 가는 길' 등 해마다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 어느새 KAFA가 신인감독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14일 개봉에 나선 두 감독의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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