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인생 3라운드에 선 '전설의 복서' 박종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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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안에선 프로, 링 밖에선 아마추어' 진정한 챔프를 꿈꾸다

지난 2일 부산 해운대구청 문화복합센터에서 '인생 3라운드 공을 울려라' 강연에서 프로복싱 전 세계 챔피언 박종팔 씨가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들려주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전설의 복서' 박종팔(55) 전 세계챔피언은 요즘 전국을 돌며 인생 특강을 하고 있다. 강연 제목은 '인생 3라운드 공을 울려라'.

그는 인생을 복싱 3라운드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박종팔은 체력 안배에 실패한 선수다.

그는 전력을 쏟아부어 인생 1라운드에서 KO를 뺏어 냈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로 돈과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다음 라운드 준비가 안 됐다. 신용불량자, 대인기피증 등 세상의 온갖 펀치를 맞고 전 챔피언은 쓰러졌다.

5일 오후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의 한 뷔페에서 박종팔을 만났다. 창 밖의 풍경을 보며 그는 "해운대에 투자하라는 말에 넘어가 15억 원 정도 날렸지"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그가 사기 등으로 탕진한 돈만 90억 원이다. 온갖 굴곡으로 얼룩진 전 챔프의 인생 이야기는 한 시간 정도 이어졌다. 현역 시절 그의 경기 못지않은 드라마가 그 속에 있었다. 그렇기에 기적적으로 인생 3라운드 링에 올라선 그가 더욱 짠했다.

1980년대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부와 명예 단번에 얻어

은퇴 뒤 사기 등으로 거액 탕진
전 부인과 사별…대인기피증까지

2008년 재혼 뒤 재기 '구슬땀'
방송 출연·매달 10여 차례 강연

■인생 1라운드 "한 방을 꿈꾸다"


1980년대 최고의 복서, 가장 화끈한 선수, 전설의 주먹… 온갖 수식어가 그의 이름 석 자 앞에 붙어 있다.

박종팔은 화끈했고 그래서 더욱 사랑받았다. 프로 통산 52전 46승 5패 1무의 전적. 이 중 KO승만 39번이다. 19연속 KO승 진기록도 세웠다. 5번 패배 중 4번이 KO패다. 크게 쓰러뜨리거나 크게 쓰러지는 저돌적인 스타일 때문에 그의 경기가 열릴 때면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그의 삶도 많은 이들의 응원을 자아냈다. 꼭 영화 '록키'의 살아있는 주인공 같았다.

1958년 생인 박종팔은 전라남도 무안 출신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가족들은 병구완을 하느라 가세가 기울었다. 방황하던 중학생 박종팔은 가출해 서울로 올라왔다. 철물점 아르바이트·중국집 배달원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우연히 복싱에 입문했다. 겨울이면 천장에 고드름이 생기는 그곳에서 먹고 잤다. 그리고 챔피언이 되었다.

"부동산을 많이 사들여 돈팔이라고 불렸지. 어머니 병원비 대느라 집안 땅을 팔아야 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이야. 그게 한이 됐는지 이를 더 악물었지."

온갖 불행을 KO시켜 버린 박종팔의 인생 1라운드는 그 자체가 감동 스토리다.

현역시절 박 씨가 챔피언 벨트를 착용하고 포즈를 취한 모습. 부산일보DB

■인생 2라운드에 녹다운 되다.

권투만 알았지 세상을 몰랐다.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재산을 탕진했다. "너무 순진했던 것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는 "순진은 무슨, 바보였지"라고 답했다.

1988년 은퇴한 뒤 적당히 인생을 즐기다 1993년 동양프로모션을 인수해 국제대회를 유치했다. 그러나 권투협회의 파벌 싸움에 말려 경기승인이 안 났다. 꽤 큰돈을 물어 주었고, 홧김에 권투위원회와 국회의원 사무실에 찾아가 난동을 부렸다. 구치소에서 37일을 보냈다.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어떤 이들에게 박종팔은 챔피언이 아니라 그냥 '순딩이 땅부자'였다. 그는 "10억 원 투자하면 30억~40억 원을 번다는 말에 여러 번 속았다. 주변에서 힘든 소리를 하면 믿고 땅도 나눠줬다"며 "본전 생각도 나고 인생 한 방이라는 생각에 계속 엉뚱한 땅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주점도 차렸지만, 장사는 안됐다. 오히려 "큰돈 벌 수 있다"며 박종팔을 꾀러 오는 손님이 많아 또 많은 돈을 떼였다. 그렇게 2005년 즈음엔 돈을 탕진했고, 아내와도 사별했다.

그즈음 그는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어느덧 그의 이름 앞엔 '신용불량자'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밖을 나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썼다. 대인기피증까지 왔다.

박종팔은 "돈 떼먹은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박살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잠을 못 잤다"며 "고혈압, 뇌졸중까지 왔다, 매일 수락산에 올라가 뛰어내릴 자리를 찾아다녔다"고 회상했다.

지난 5일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 내 한 뷔페에서 만난 박종팔 씨가 링에 오른 듯한 포즈를 잡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인생 3라운드, 다시 링에 서다

"경기는 3라운드가 끝나야 승패가 나는 거다."

전 챔피언은 다시 링에 올랐다. 2라운드에서 KO패 직전까지 갔지만, 2008년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재혼하면서 달라졌다. 아내는 피폐해진 남편을 다독였고, 수락산에 막걸리집을 열고 정착할 것을 부탁했다. 산을 개간하다시피 해 가게를 열고 박종팔은 몇 년 만에 땀다운 땀을 흘렸다.

그는 "아내는 운동의 '운'자도 모르는 사람인데 인생이라는 게 알 수가 없어"라며 "아내가 용기를 주니 마음이 바뀌고 서서히 3라운드를 준비하게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인기피증을 극복한 박종팔은 지난해부터 방송에도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올해부턴 강연을 시작했다. 한 달에 10여 차례 강연을 하고 다닐 정도로 찾는 곳이 많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옛추억을 떠올리며, 그의 재기를 응원한다고 한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부터는 "용기를 얻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박종팔은 "권투에선 프로였지만, 인생에선 3라운드용 아마추어 수준의 선수밖에 안 되는 것 같다"며 "3라운드 공이 울렸으니까 이번엔 꾸준히 주먹을 날려 KO승을 따낼 것이다. 인생엔 행운의 한 방이 없다"고 말했다.

사각의 링이 인생의 링으로 바뀌었지만, 이번에 승리하면 더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줄 듯하다. 그때 박종팔은 진짜 챔피언이 될 것이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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