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조선 구조조정] 하. 대규모 계획조선이 백년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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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먼저 계획 발주, 최소한의 일감 확보를

조선업계의 근본 위기인 수주 절벽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수요 창출과 함께 기업들의 고부가가치 상품 분야의 자체 경쟁력 강화, 생산 다각화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산 영도구 대선조선 영도조선소에서 1800TEU급 컨테이너선이 건조되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달 8일 정부는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부산의 대선조선에 대해 추가 자구계획을 이행해도 내년 중 자금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형 조선 3사를 제외하고, 대선조선 같은 중소형 조선사에 추가 자금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사망선고'로 받아들였다.

대선조선 측은 "정부와 채권단이 연간 수주량이 12~13척인 최적의 상황, 8척인 상황, 올해 6척을 수주하고 내년에 1척도 수주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놓고, 발표 때는 최악의 상황만 내세웠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가 금융권이 자금줄을 죌 수 있는 빌미만 제공했다는 비판이다.

'조선업=수주산업' 특성상
생존용 최소 일감 필수적

정부 주도 노후 선박 발주
조선기자재업체 참여 '해법'
업계 부실 요인 해양플랜트도
유가상승하면 시장성 증가

실제 대선조선은 올 들어 6척의 신주 선박건조 계약을 따내는 등 수주 잔량 21척을 기록해 2018년 인도분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다

대선조선의 한 임원은 "안정적인 수주가 관건"이라며 "정부의 노후 연안여객선 현대화 방안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향후 5년간 63척에 이르는 신규 수주 기반이 확보돼 조기 정상화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빅딜' 아닌 '뉴딜'이 돼야

국내 조선사와 조선기자재 업체들은 정부 주도의 계획조선 발주를 현재 조선업 위기 극복 최적의 해법으로 꼽고 있다. 조선업은 생존과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일감 확보가 필수적이다.

부산 A조선기자재업계 관계자는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을 하더라도 최소한 환자가 수술 과정을 견디고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영양 공급은 해줘야 하는데,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은 환자가 죽든 말든 칼부터 들이대자는 꼴"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이 2009년 건조한 26만 6000㎥급 LNG 선박. 부산일보DB
조선사들의 청산과 사업 축소를 전제로 한 '빅딜'이 아니라 정부가 선제적으로 유효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조선업 위기의 근본 원인인 '수주절벽'을 해소하는 '뉴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 상공계가 정치권과 정책당국에 건의한 계획조선 방안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노후 관공선, 노후 여객선, 해경 함정, 노후 원양어선 등 정부 주도의 계획 발주를 통해 건조 가능한 선박 물량이 385척, 13조 5690억 원 규모에 달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계획조선 대상인 노후 관공선의 경우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7개 지자체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2척(1373억 원 규모)을 교체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이 보유한 307척의 경비·특수함정 중 2020년까지 교체해야 할 함정과 신규 건조해야 할 함정은 모두 55척(1조 18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또 건조 31년 이상 지난 노후 원양어선 교체 대상은 2019년까지 123척(4380억 원)에 이른다. 이 밖에 벌크선, 일반화물선, 냉동·냉장선 중 25년 이상 지나 교체해야 할 중소상선 수요는 45척에 달한다.

LNG선 역시 한국가스공단 보유 선단 중 선령 15년 이상의 노후 선박 17척에 대한 교체가 필요하다.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번 건의가 반영되면 조선업계가 일감 확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100만 명에 이르는 대규모 실업사태와 이에 따른 막대한 재정 지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감한 미래 먹거리 투자

정부 주도의 계획 발주가 적기에 이뤄지려면 대규모 선박 펀드를 조성해 건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선박금융 지원 역시 일본과 중국 수준으로 확대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선박 가격의 90% 이상을 사실상 제로 금리에 제공해 자국 조선소 발주를 유도하고, 일본 선사들 역시 일본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국내 조선사들이 최소한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플랜트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조선업계는 올해 하반기부터 원유 수요가 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안착하면 드릴십(시추선) 등 해양플랜트 발주가 본격적으로 재개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해양플랜트 기자재 국산화 비율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정부 주도로 해양플랜트를 시범 발주하고, 국내 기자재업체들의 참여를 의무화시켜 국내 조선사와 기자재업계가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건조 실적을 축적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알아서 생존하라는 식으로 정부가 현재의 위기를 방치한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국내 조선기자재 기술이 사장되거나 유출돼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진국·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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