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통푸통 대만 여행기 下. 타이중·이란] 눈에 꼭꼭 멋진 공간, 맛있게 꼭꼭 버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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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인 곡면이 마치 동굴 같은 느낌을 주는 타이중 국립가극원 1층 공간.

여행을 하다 보면, 사람을 사랑하듯 건물이나 장소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푸통푸통(두근두근의 대만어) 대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곳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타이중 국립가극원(臺中國家歌劇院)'이다. 공연 관람의 기회까진 갖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 멋스러운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타이베이, 가오슝에 이어 대만 제3의 도시라는 타이중. 인구 270만 명의 도시에서 문화의 저력을 느꼈다. 대만 정부가 십수 년째 강조하고 있는 소프트파워는 이런 역동적인 도시에서 새삼 증명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곡면 공간의 집합체 타이중 국립가극원
안과를 식당으로 재생시킨 궁위안옌커
색소폰 박물관과 카발란 양조장 등
멋스러운 건물과 볼거리 가득한 문화도시
춘수이탕 본점 '원조 버블티'도 맛보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 타이중 국립가극원

타이베이에서 고속철도(THSR)로 1시간이면 닿는 곳 타이중. 대만 북부와 남부를 잇는 거점 도시이자 온난한 기후 덕분에 대만 내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도 손꼽힌다.

이번 대만 정부 초청 코스엔 들어 있지 않았지만 타이중에는 대만 최초의 국립미술관을 비롯, 안도 다다오 설계로 유명한 야저우 대학현대미술관, 100여 년 된 양조장을 예술의 공간으로 활용한 문화창의산업원구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도 있다. 타이중이 최근 각광받게 된 것도 어쩌면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이런 예술 공간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타이중 국립가극원 1층 현관 전경.
타이중 국립가극원은 지난해 9월 30일 문을 연 곳으로, 외관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직선과 날카로움은 완전 배제된 곡면 공간의 집합체였는데 '단순한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건물 전체가 극장 같은' 곳이었다. 설계자는 201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모던 디자인에 '자연주의'를 입히는 건축가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伊東豊雄·1941~ ) . 
타이중 국립가극원 1층 대극장 전경.
빅토리아 왕 총예술감독의 안내로 지상 6층, 지하 2층으로 이뤄진 국립가극원 투어를 시작했다. 대극장, 중극장, 소극장 등 3개의 전용 극장과 다목적 공간, 야외 원형극장, 스카이 가든 등 각각의 공간 구성은 말할 것도 없고, 벽면과 천장, 계단까지 총 58개의 기하학적인 곡면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지하 2층에 위치한 소극장의 경우, 상하로 개폐되는 파티션을 열면 야외극장으로 이어졌다. 건물 어디에 있든지 소리와 빛,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도록 했다는 건축가의 말도 빈말이 아닌 듯했다. 국제공모 설계에서 개관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프로그램도 무용, 연극, 음악, 예술 전시, 영화상영, 콘퍼런스 등으로 풍부했다. 로컬 아티스트 지원 등 프로그래밍 파트 근무자만 16명.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1층 로비 한쪽에 들어와 있는 디자이너 컬렉션 숍마저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www.npac-ntt.org

국립가극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타이중 새 청사도 둘러봄 직하다. 이게 시청 건물이 맞나 싶을 정도여서 연이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재생의 공간, 궁위안옌커와 형무소 연무장
일제 식민통치 시대 안과병원 건물을 개조한 디저트 전문점 '궁위안옌커' 외형.
신흥 도시가 흔히 그렇듯 타이중엔 현대적 감각의 신축 건물만 있는 건 아니다. 독특한 실내 디자인과 패키지가 인상적인 디저트 전문점 '궁위안옌커(宮原眼科)'와 옛 형무소 건물을 연무장으로 탈바꿈시킨 '타이중 형무소연무장(台中刑務所演武場)'도 인상적이었다. 
'궁위안옌커' 실내 모습.
궁위안옌커는 1920년대 미야하라 다케쿠마 박사가 운영하던 병원 '궁원안과'(1927~1945)가 전쟁과 지진, 태풍 등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하자 '리추(日出)'라는 회사가 사들여 2010년 디저트 전문점과 식당으로 리노베이션한 곳이다. 오리지널 벽돌 벽과 목조 프레임은 살리면서도 모던한 유리 지붕을 얹었다. 실내로 들어서면 3층 천장 높이까지 이어지는 대형 책장 안에 책이 가득한, 마치 '해리포터'에 나올 것 같은 도서관 분위기로 꾸며졌고, 밀크티·아이스크림·초콜릿·케이크·옛 대만 음식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대만이 자랑하는 파인애플파이 '펑리수' 등은 CD 케이스처럼 포장해 마치 책인 양 전시 판매하고, 각종 대만 차는 LP 음반 재킷 안으로 쏙 들어가 선물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건물 이름도 '궁원안과' 그대로인 궁위안옌커를 사용한다. www.miyahara.com.tw
옛 형무소 건물을 개조한 '연무장'과 벵골보리수.
타이중 역사건축인 '형무소 연무장(演武場·무예를 연습하는 장소)'은 타이중 시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37년 일본 무술 체육관. 한때 타이중 감옥으로 사용했으며, 감옥이 1992년 교외로 이전되고 나서 2006년 화재가 발생하자 민간 재단에서 개조해 운영 중이다. 유도와 검도 수련 외에도 종이접기, 궁도 등 6가지 다양한 예술 활동이 가능하고, 본관과 부속 건물 사이엔 거대한 벵골보리수 나무가 잘 자라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버블티 원조 '춘수이탕'에서 만들기 체험도
춘수이탕의 버블티
타이중에 간다면 여행자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진한 밀크티와 부드럽고 쫄깃한 타피오카 과립이 만나 절묘한 맛을 보여 주는 음료 '쩐주나이차(버블티)'를 1987년 처음으로 선보인 '춘수이탕(春水堂)' 본점이다. 이곳에선 쩐주나이차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쩐주나이차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 들어가는 알갱이(타피오카)는 무엇인지 알려준다. 본격적인 실습에 들어가 버블 블랙티와 버블 밀크티 두 종류를 직접 만들고 시음까지 한다. 그뿐만 아니라 체험이 끝나면 수료증과 미니 셰이커도 선물로 준다. 체험비는 1~2인 520 NTD(대만달러·약 2만 원), 3~7인 480 NTD, 8인 이상 380 NTD. 체험 시간대가 식사 시간 전후라면 춘수이탕이 자랑하는 '뉴러우멘(牛肉麵·소고기면)'도 함께 맛보면 좋다.

타이중에 머문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야시장 방문도 빠트릴 수 없다. 펑자 야시장(逢甲夜市)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고, 대만의 주요 먹거리 외에도 한국에서 건너간 길거리 음식까지 다채롭게 맛볼 수 있다.

색소폰과 위스키 제작의 작은 강국, 대만
'리엔창 색소폰'에서 만든 색소폰.
대만이 한때 세계 3대 색소폰 제작국이었던 사실은 현지에 가서야 알았다. 타이중 후리(后里)는 색소폰의 고향으로 1970년대에는 30개의 색소폰 공장이 있어서 전 세계 색소폰의 3분의 1가량을 생산했다. 최근엔 대만 색소폰이 5위로 밀려났지만 오히려 합리적이고 다양한 가격대, 이를 뛰어넘는 우수한 품질의 색소폰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리엔창(Lien Cheng·LC) 색소폰'을 이끌고 있는 장충야오 대표는 말했다. 장 대표는 색소포니스트이자 1945년 대만 최초의 색소폰을 선보인 장리엔창의 손자. 색소폰 박물관까지 갖춘 LC 색소폰은 2004년부터 관광 공장으로도 변신했다. www.sax.org.tw
 
'카발란' 위스키 양조장에서 전시 중인 오크통.
대만산 위스키도 마찬가지다. 물 좋고 공기 맑은 북동부 이란 현에 자리한 대만 위스키 브랜드 '카발란(Kavalan)'은 2005년 양조장 설립 후 2008년부터 싱글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 무대에서 베테랑 브랜드를 제치고 인정받고 있다. 2015년 WWA(월드 위스키 어워드) '세계 최고의 싱글 몰트 위스키' 선정, 2016년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 '세계 최고의 싱글 캐스크 싱글 몰트 위스키' 등으로 뽑혔다. 덕분에 카발란 양조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었고, 재료와 제조 과정을 살펴보는 무료 가이드 투어까지 생겼다. 카발란 위스키의 중후한 향은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을 이용한 숙성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안내자는 설명했다. www.kavalanwhisky.com 
대만 위스키 '카발란'
'푸통푸통' 대만 여행을 마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편의상 타이중과 이란 편을 이번 글에서 다뤘지만 실제는 타이베이로 돌아가서 하루를 더 머물렀다. 타이베이를 떠나던 날 아침엔 비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떠나는 게 아쉬워 그리스, 슬로바키아, 칠레에서 온 기자와 함께 '타이베이 그랜드 호텔' 뒷산을 올랐다. 작은 사찰이었는데 큰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리고 경을 외는 경건한 모습의 대만인을 만났다. 등산로 입구 좌판에선 금방 딴 것 같은 과일과 야채를 파는 중년 부부도 만났다. 모닝커피 한 잔을 하려고 들른 등산로 가게에선 아침 차를 마시는 러닝셔츠 차림의 어르신도 만났다. 후덕한 표정이 좋아 보여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활짝 웃으며 포즈까지 취해 준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스펙터클한 밤 놀이터처럼 찾았던 야시장에서도 불쑥불쑥 내미는 여행자의 카메라를 곧잘 미소로 받아주던 그들이었다. 정 많고 친절한 대만인이 보여 준 따뜻한 환대는 어쩌면 우리가 다시 대만을 찾게 하는 진정한 힘일 것이다. 26개국 28명의 기자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서 이구동성으로 들려준 마지막 한마디는 '결국은 사람!'이었던 것처럼!

대만 타이중·이란/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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