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댓글과 <송하비결>
<송하비결(松下秘訣)>은 조선 후기 김씨 성을 가진 송하노인이라는 사람이 썼다고 알려진 예언서다. 조선 말 이후 현대에 이르는 120년의 국운을 2800여 자의 사자성어로 예언했다. 2003년 이를 해석한 책이 발간됐는데 IMF외환위기와 월드컵, 9·11 테러 등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해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송하비결>이 또다시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인터넷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 필명 '드루킹' 김 모(48) 씨가 <송하비결>을 신봉해 이를 근거로 여러 예측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본침몰설'이다. 드루킹은 '동해적룡 내우괴란(東海赤龍 內憂壞亂·동해의 붉은 용이 무너지는 환란이 있으리라)'이라는 문구를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 열도가 침몰한다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일본 침몰 시 탈출한 일본인을 한국으로 끌어들여 개성공단에 투자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드루킹이 김경수 의원에게 일본 오사카 총영사직을 집요하게 요구한 것도 <송하비결>의 예언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드루킹은 또 현재 책으로 나와 있는 <송하비결>은 틀린 해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해석한 것을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예언서는 <송하비결> 외에도 꽤 많다.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며 그 밖에 <도선비기> <격암유록> 등이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 예언서는 현재의 시각에서 알아서 꿰맞추는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송하비결>의 경우에도 한반도 전쟁 등 책 발간 이후의 예언 대부분이 빗나가면서 논란을 빚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서는 예언 그 자체의 맞고 틀림보다는 그것이 생기고 퍼져 나가는 사회적 배경과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드루킹은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그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인물이다. 이를 위해 여러 댓글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매크로'라는 첨단 기술까지 사용했다. 그런 그가 <송하비결>이라는 예언서를 근거로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주장을 펼쳤고 이를 믿고 추종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인터넷 댓글 조작과 <송하비결>이라는 예언서의 기묘한 조합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유명준 논설위원 jo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