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구자경 회장의 각별했던 ‘고향 진주 사랑’, 그룹 발상지 ‘부산 사랑’으로 이어져
14일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생전에 부산·경남에 적지 않은 발자취를 남겼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경남에서 보내고, 20대 이후 40대까지 교사와 기업인으로서는 대부분 진주와 부산에서 생활했다.
대학·도서관·복지회관…
고향 인재 양성·복지 힘 쏟고
‘20년 그룹 본사’ 부산 지원
그는 1925년 4월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아버지 구인회, 어머니 허을수의 6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 지수초등을 거쳐 당시 경남지역 수재들은 다 모인다는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구 명예회장은 1945년 3월 모교인 지수초등 교사로 부임, 한동안 교육자로 지냈다.
1950년 4월, 그는 아버지 명에 따라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부산의 락희화학공업사 이사로 전직한 뒤 본격적인 경제인으로 살게 됐다. 당시 구인회 창업주의 락희화학공업사 히트상품 ‘락희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구 명예회장의 삶도 바뀐 것이다 .
구 명예회장은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1980년대 들어 고향인 진주에 연암공업대학을 설립하고, 진주시립 연암도서관을 상대동 현 위치로 이전, 새로 지었다. 구 명예회장은 또 진주시장애인복지회관은 물론 지수초등에 체육관과 식당 등을 지어 이 학교에 ‘불망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고향 진주 주민들은 ‘애틋한 고향의 정과 끈을 지닌 최후의 LG그룹 총수일 것’이라고 평한다. 허성태(70) 전 지수면 주민자치위원장은 "내년이면 모교 지수초등이 개교 100주년을 맞는데 고향 사랑이 각별했던 구 명예회장님이 떠나 너무나 애석하다"고 했다.
구 명예회장이 경영에 발을 들인 락희화학공업사는 1947년 1월 부산 서구 대신동에서 창립됐다. LG는 락희화학에 이어 1958년 금성사, 1962년 락희비니루공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외연을 확장하게 된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부전동공장, 연지공장과 동래공장, 초읍공장, 온천동공장 등 생산시설을 연이어 지으며 국가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는 1998년 연지동에 LG사이언스홀을 개관하기도 했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15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부산 시민과 함께 LG그룹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구 회장님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를 드린다”고 애도했다.
이선규·배동진·이상배 기자 sunq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