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희망人①] "다들 망할 거라고 했죠" 김밥집 2호점 낸 정진우 씨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김보경기자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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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점 확진자 발생에 6개월간 낙인
지난해 최고 매출에도 사업 확장 제동
'되는 방향' 고민하며 재기
코로나 3차 대유행 속 가맹점 늘려

제2차, 3차 등 끊임없는 코로나19의 직격탄에 신음하는 소상공인들. 폭락한 매출에 계속되는 고정비 지출은 마치 공식이 돼 좌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는 코로나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주는 무기력함을 버텨내고, 위기의 상황을 발판 삼아 새 도전에 나선다고 합니다. 작금의 고통 상황을 사회의 새 트랜드로 여기고 희망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4인을 만나봤습니다.


그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 오전부터 손님이 들어차더니 순식간에 만석이다. 떠들썩한 전염병에도 가게 밖은 하나 대기 줄이 늘어졌다. 쏟아지는 주문서를 잠시 제쳐두고 냉수부터 들이켰다. 슬쩍 감기던 눈꺼풀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김 위에 속반찬을 올리시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기분 좋은 한숨이 나왔다. 멋쩍은 표정으로 뭉친 어깨를 두세 번 토닥였다.

“야, 뭔데? 도대체 무슨 일이고?”

전화기를 든 채 멍하니 섰다. 끊자마자 다시 울려대는 전화벨이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기사를 찾아보니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에 ‘도리마리’가 보였다. 문득 최근 한 젊은 학생이 조용히 ‘혼밥’한 기억이 스쳤다.

올 3, 4월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자체 격리에 집안일이 겹치며 수시로 단축 근무를 했다. 가족회의 도중 ‘폐업’ 소리까지 나와 가슴이 내려앉았다. 막막하고 암울한 기분을 어쩔 수 없었다.

수개월이 흐른 뒤 12월 17일. 해운대구 좌동에 김밥전문점 도리마리 2호점이 문을 열었다. 힘겨웠던 지난날은 온데간데없고, 코로나 3차 유행 속 당당히 새 가맹점이 오픈했다. 지난 23일 2호점에서 만난 정진우(35·기장군 정관읍) 대표는 부끄러운 미소로 길고 길었던 과거를 복기했다. 창밖 개업 기념 풍선과 초대형 트리가 조용한 연말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지난 17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 도리마리 2호점을 오픈한 정진우 대표. 김보경 PD 지난 17일 부산 해운대구 좌동에 도리마리 2호점을 오픈한 정진우 대표. 김보경 PD

■ 낙인

꼬박 5달이 걸렸다고 했다. 올 2월 씌워진 ‘확진자 가게’ 낙인을 벗기까지. 그는 손님이 나가자마자 테이블, 터치식 출입문, 정수기 손잡이를 소독했다. 일부러라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 더 크게 움직였다.

“여름 때까지는 손님들이 ‘확진자 왔던 가게 아니냐’고 했었죠. 매일 꼼꼼히 방역하니 괜찮다고 말씀드리지만, 완전히 인식을 바꾸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에게 이런 전염병은 2012년 동래구에 본점을 오픈한 이후 처음이었다. 발병 초기 땐 수입이 사라졌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라 여겼다. 메르스 때도 그랬다.

실제 매출은 2달 만에 제자리를 찾았다. 포장 손님이 줄 서서 순번을 기다리고, 배달도 몰리고…. 옛 명성을 서서히 회복하는가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코로나 2차, 3차 유행이 도졌다.

“직원 없이 어머니와 둘이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는데 또다시 코로나가 터지더라고요. 원래 목표했던 것들이 하나둘 무너지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었습니다. 특히 최근 3차 유행이 터진 뒤에는 매출도 절반 가량 다시 줄었습니다.”


부산 동래구에 있는 도리마리 온천동 본점. 정진우 제공 부산 동래구에 있는 도리마리 온천동 본점. 정진우 제공

■ 재기

도리마리는 오픈 이후 매년 매출이 올라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 가장 좋을 때, 물 들어왔을 때 코로나가 터져버린 것이다. 정 대표는 잠시 입을 꾹 다문 뒤 말을 이었다.

“지난해 상표 등록도 새롭게 했고, 이전 대기업에 다니며 배운 시스템도 안착시켰었습니다. 매출, 시스템, 홍보(입소문) ‘3박자’를 갖췄죠. 계속되는 코로나 패닉 상황에 이 모든 게 주춤하게 된 겁니다.”

특히 야심 차게 준비한 ‘가맹 사업’이 발목 잡혔다. 100군데 후보지를 돌아보며 2호점 오픈을 준비해온 터였다.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2호점 후보지가 빼곡히 적힌 스마트폰 메모장을 펼쳐 보였다. “동래구, 남구, 해운대구, 북구 뭐 부산에 안 가본 데가 없죠. 중간에 계약이 파기되기도 하고 정말 고생하며 준비했습니다.”

주춤했지만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이 가게가 자신의 유일한 목표이자 미래로 여겼다. 코로나가 오든 뭐가 오든 극복할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지금 힘든 건 나중에 있을 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주문 걸었다.

“어떻게 하면 잘 홍보할까, 더 좋은 음식을 만들까 이런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를 위해 직장 생활하며 상권 분석, 대리점 체계 등도 배웠죠. ‘우리 가게’에 모든 초점을 맞추며 준비해왔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매장 손님 대신 포장·배달 손님이 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코로나 3차 유행 전인 올 11월이 될 때까지는 매출이 크게 줄지 않았다. 물론 이 때문에 코로나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힘들 때 아무래도 가족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같이 일하는 어머니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며 제가 더 힘내고, 힘이 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17일 오픈한 도리마리 2호점 전경. 김보경 PD 지난 17일 오픈한 도리마리 2호점 전경. 김보경 PD

■ 전략

정 대표는 멈추지 않는 코로나를 정면 돌파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매일 1000명 이상 나오는 대유행 시기에 당당히 2호점을 열었다. 잠시 늦췄을 뿐 꿈꾸던 가맹사업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주변에서도 말렸다. ‘망할 거다’라는 말까지 들었다.

“해운대, 양산 등 멀리서 본점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김밥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정말 큰 힘이 됐죠. 더는 코로나에 계속해서 끌려다니며 제 미래를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코로나를 기회로 삼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매번 인스턴트 음식을 시켜 먹던 고객들이 이제는 신선한 집밥을 찾을 거라 생각했다. 또 배달 음식 대부분이 혼자 먹기엔 부담스러운 양인 만큼, 1인 식사 위주의 메뉴 개발에 힘썼다.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보다 ‘되는 방향’을 고민한 것이다.

“저희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신선한 재료입니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습니다. 이런 점을 코로나 시기에 집중 어필하면 되겠다고 확신했죠.”

‘건강한 음식’에 더해 ‘안전한 식당’이라는 이미지도 만들어가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케어 시스템을 도입해 출입문에 인증 스티커를 붙였다. 또 직원과 손님의 직접적 대면을 피하려 본점에 없는 키오스크 시스템을 구축했다. 50%가량 매출이 떨어진 시기에 오히려 투자를 늘린 셈이다.

트렌드에 맞게 배달의 민족뿐 아니라 쿠팡이츠, 요기요 등 유통 창구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현재 손님 부담이 높은 배달료도 현실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 중입니다.”


도리마리 2호점 입구. 김보경 PD 도리마리 2호점 입구. 김보경 PD

■ 희망

“코로나 너 진짜 아... 죽일 수도 없고... 두고 보자. 하하”

인터뷰 말미 정 대표는 웃으며 코로나에게 한 마디 던졌다. 또 내일 코로나가 끝난다면 집에 있는 마스크를 다 버리겠다고 했다. 매장에는 ‘코로나 안심구역’ 배너를 설치하고 싶다고.

“손님들이 매장에서 마스크 없이 웃으며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이 너무 그립습니다.”

코로나 아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 대표도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코로나의 고통을 뼈와 살로 매일 느끼는 중이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맛있고 깔끔해요’ ‘○○김밥은 비교도 안 됨’ 등 인터넷에 올라온 방문 리뷰를 볼 때면 다시 힘이 난다고….

그는 코로나를 무시하고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2년 뒤에는 미국 LA에 해외 가맹점을 오픈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조금만 더 견디고 힘내면 분명 하루하루 기쁘게 장사할 날이 올 겁니다. 이제는 제2, 제3의 코로나 위기가 오더라도 극복은 물론이고, 더 큰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뚜벅뚜벅 제 길을 가렵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영상·편집 김보경 PD harufor@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김보경기자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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