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희망人④] "코로나가 인생을 바꿔놨죠" 아이디어 믿고 창업한 박성현 대표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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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 속 직장 관두고 회사 차려
엘리베이터 비접촉 센서 개발해 특허 등록
버스 하차벨, 식당 호출벨 등 확장 계획
"사람들이 코로나 불안서 벗어날 수 있길"

제2차, 3차 등 끊임없는 코로나19의 직격탄에 신음하는 소상공인들. 폭락한 매출에 계속되는 고정비 지출은 마치 공식이 돼 좌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는 코로나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주는 무기력함을 버텨내고, 위기의 상황을 발판 삼아 새 도전에 나선다고 합니다. 작금의 고통 상황을 사회의 새 트랜드로 여기고 희망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4인을 만나봤습니다.


지난 23일 부산 사하구 '아이닉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현 대표. 그는 올 5월 퇴사 후 '언택트' 제품인 엘리베이터 센서를 개발해 8월 창업했다. 김보경PD 지난 23일 부산 사하구 '아이닉스' 사무실에서 만난 박성현 대표. 그는 올 5월 퇴사 후 '언택트' 제품인 엘리베이터 센서를 개발해 8월 창업했다. 김보경PD

아이닉스 박성현(41) 대표는 올해 5월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40대에는 내 사업을 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꿈만 갖고 있던 박 씨에게 '코로나19'라는 거대한 변수가 생겼다.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던 사업 아이템이 지난 1월, 코로나19와 함께 다가왔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일상이 조심스러웠던 시기. 무심코 탔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들이 주먹을 쥐고 손등으로 버튼을 누르고는 황급히 손 소독제를 바르는 모습을 보며, '손 대지 않고도 버튼을 누르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을 정리한 뒤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창업 이야기를 꺼냈다. 12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했다.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아내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난관

첫걸음부터가 난관이었다. 이전 회사에선 개발에만 몰두하면 됐지만, 창업을 하고 보니 회사 경영부터 행정, 세무, 회계를 모두 혼자 해내야 했다. 막막할 때마다 아내 김혜란 씨는 '구원투수'가 돼줬다. 동종 업계에서 경영지원 업무 경험이 있는 아내가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내는 언제나 희망과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올해 4월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스타트업 100'에 신청해보자고 제안한 것도 아내였다. 이 사업은 정부가 5년 동안 소재·부품·장비 분야 100곳의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시는 창업도 하기 전이어서 '무모한 도전'이라 여겨졌지만, 아내의 응원에 '밑져야 본전'이란 심정으로 제안서를 냈다. 직원 60명 중 40명이 카이스트 졸업생들로 구성된 기업, 700명의 직원을 둔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했다. 박 대표의 도전에 현장 실사를 나온 심사위원들마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개인 신분으로 후보기업인 60개사에 선정됐다. 비록 최종 20개사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686개 기업 중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구나'라는 희망을 품게 된 순간이었다.


지난 10월 울산·경북·경남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최하고 시리즈벤처스가 운영한 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 100 IR 데모데이에서 발표하는 박성현 대표. 시리즈벤처스 제공 지난 10월 울산·경북·경남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최하고 시리즈벤처스가 운영한 소재·부품·장비 스타트업 100 IR 데모데이에서 발표하는 박성현 대표. 시리즈벤처스 제공

"60개 기업에 선정되면서 장비, 소프트웨어, 재료 등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이 부품들을 개인적으로 샀다면 절대 못 샀을 걸요. 지원사업 덕분에 운좋게 갖출 수 있었죠."



홀로서기

12년 동안 개발 업무를 맡아온 터라, 제품 개발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엘리베이터 버튼 옆 센서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스위치가 켜진다. 적외선을 쏴 반사되는 빛의 양을 계산하는 원리다. 햇볕이라는 변수에도 오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개발해 특허도 냈다.


박 대표가 개발한 엘리베이터용 비접촉 스위치 모듈의 특허증. 박성현 씨 제공 박 대표가 개발한 엘리베이터용 비접촉 스위치 모듈의 특허증. 박성현 씨 제공

막막한 건 그다음이었다. 제품을 만들었지만, 홍보할 길이 없었다.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는 제품인데, 정작 코로나19 탓에 '찾아가는 홍보'를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홍보 업무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터라 더 막막했다. 맨땅에 헤딩하듯 아내와 함께 발품을 팔아 10층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에 처음으로 제품을 설치했다. 이후에는 운 좋게 7층짜리 다른 오피스텔과도 계약을 맺었다.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부산역 경부선 엘리베이터에 제품을 설치한 날이다. 평소 알고 지냈던 지인의 소개로 코레일과 연이 닿았다. 불특정 다수가 끊임없이 오가는 부산역 5호기 엘리베이터에 센서를 적용했다. 이용하던 사람들이 "신기하다"며 여러 번 작동해보는 모습을 보며 '개발하길 잘했다' 싶었다.

역시 가장 좋은 홍보는 '입소문'. 10층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한 주민이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에도 이 제품을 적용하면 어떨지 알렸다. 비접촉 엘리베이터 센서는 점점 입소문을 타는 중이다. "몇 번 사용해보고 나면 엄청 편하거든요. 요즘 같을 때는 특히 남들이 사용하는 것들 만지기 찝찝하잖아요. 한 번 사용해본 분들이 입소문을 조금씩 내주시는 것 같아요."


부산역 경부선 5호기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비접촉 센서. 버튼 옆 센서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버튼이 눌러진다. 박성현 씨 제공 부산역 경부선 5호기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비접촉 센서. 버튼 옆 센서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버튼이 눌러진다. 박성현 씨 제공

희망을 찾아

박 대표의 아이디어는 엘리베이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접촉 센서를 엘리베이터뿐 아니라 생활 속 여러 곳에 적용할 생각이다. 버스 하차 벨, 식당 호출 버튼, ATM기 버튼, 빌딩 도어락 등 확장성이 무한한 사업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생각해보면 활용할 수 있는 영역이 많더라고요.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언택트' 패러다임은 계속 갈 것 같아요. 지금은 비록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는 박 대표의 인생을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코로나 시대에 하루하루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삶보다는 도전을 선택했다. 도전의 원동력은 오히려 '불안'이었다. "코로나19가 너무 무서웠어요. 이건 걸리면 내 주변 사람까지 괴롭게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막연했던 제 인생 계획을 코로나19가 앞당겼죠. 각국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생긴다고 하니 더 걱정이네요.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영상·편집 김보경 PD harufor@busan.com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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