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희망人③] “여행 올스톱, 매출 50분의 1토막” 백지에서 다시 시작한 손민수 반장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김보경기자 harufor@busan.com , 이재화기자 jhl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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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에 부산여행특공대 휘청
성수기 앞두고 줄줄이 ‘예약 취소’
빠른 결단으로 ‘언택트 여행’ 도전
올 10월 명란셀프쿠킹클래스 안착

제2차, 3차 등 끊임없는 코로나19의 직격탄에 신음하는 소상공인들. 폭락한 매출에 계속되는 고정비 지출은 마치 공식이 돼 좌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는 코로나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주는 무기력함을 버텨내고, 위기의 상황을 발판 삼아 새 도전에 나선다고 합니다. 작금의 고통 상황을 사회의 새 트랜드로 여기고 희망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4인을 만나봤습니다.


■ 한숨

하루 종일 사무실 전화가 울려댔다. 성수기 봄방학이 코앞이지만, 여행 예약 문의는 한 건도 없다. 예외 없이 모두 ‘예약 취소’.

“그래도 그때는 버틸 만했습니다.”

부산여행특공대 손민수(43) 반장이 말한 ‘그때’는 올 2월 말이다. 본격적으로 국내에 코로나19 전파가 시작된 시기였다. 지난 22일 부산 동구 이바구충전소에서 만난 그는 속 시원하게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 3월이 되니 거짓말처럼 전화 한 통이 오지 않는 겁니다. 예약 취소가 끝나니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죠. 매출은 거의 50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너무나 급격히 상황이 악화되니 처음에는 괜히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도 다른 전염병 때처럼 금방 괜찮아질 거라 여겼다. 그러나 갈수록 확진자는 늘었고 주변 해외여행사를 중심으로 폐업이 속출했다. 직원들이 모두 사라진 텅 빈 부산여행특공대 사무실에는 한숨이 메아리쳤다.

손 반장은 동업자인 죽마고우 정봉규 씨와 빠르게 결단했다. 코로나 초기 4월이 채 지나기 전에 ‘언택트 여행’을 기획해 실행에 옮겼다. 도전적인 그의 성향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그렇게 좌충우돌 8개월이 흘렀다.


부산여행특공대 손민수 반장. 김보경 PD 부산여행특공대 손민수 반장. 김보경 PD

■ 아픔

산복도로 주택 사이로 보이는 아랫동네 불빛이 따뜻했다. 저녁 송년회 때 들어찬 술기운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서서히 날아갔다. 부산 하늘의 달이 여느 때보다 반짝였다.

딱 1년 전, 손 반장이 기억하는 2019년 연말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부산여행특공대는 그해 10월 역대 최고 매출을 찍었다. 11월에는 5년간 공들인 KTX 연계 투어 프로그램이 성사됐다. 대규모 투자로 일본 현지에서 결제가 가능한 여행 시스템도 구축했다. 2019년이 채 지나기 전 다음에 프로그램에 참여할 130개 학급의 학생을 받아놓기도 했다.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7년간 적자였습니다. 고생한 보람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죠. 하루 평균 홈페이지 방문자가 여름에는 7000명까지 올랐었습니다. 이제 차츰 빚도 갚고 내후년에는 흑자도 날 거라는 기대감이 컸죠. 지난해 연말 회식 분위기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슬쩍 창밖 먼 산을 바라본 손 반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국내 코로나가 처음 시작됐을 때만 해도 ‘딴 세상 이야기’로 여겼다. 메르스, 신종플루 등 여행업계에 치명적인 전염병 사태를 다 겪었던 터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는 집에 9개월 동안 월급 한 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여행시장은 회복했고, 오히려 일본 여행이 전성기를 맞기도 했죠. 코로나도 길어봤자 6개월이라 생각하고, 딱 그 정도만 버틸 수 있는 규모의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코로나 확산 속도나 범위가 다른 질병과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3월에 이어 4월 매출이 사상 최저로 떨어지자 모든 것이 ‘올스톱’ 됐다.

“여름 성수기에 대비해 아이디어 내고 시스템 구축하고 새로 나온 홈페이지 오류도 잡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는데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죠.”


과거 코로나19 발병 이전 손민수 반장이 부산 동구 산복도로에서 투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손민수 제공 과거 코로나19 발병 이전 손민수 반장이 부산 동구 산복도로에서 투어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손민수 제공

■ 초심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좌절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7~8년간 쌓아 온 노하우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또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되새기며 재기할 힘을 얻었다고.

“부산 원도심, 산복도로 어르신들의 위대한 삶을 알리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듣고 현재 내 삶에 감사함을 느끼는 여행을 만들어보자는 거였죠. 7~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무너지면 더는 산복도로를 알릴 방법이 없다는 거죠.”

손 반장은 코로나 상황을 직시했다. 암울해 하거나 뒷걸음칠 시간이 없었다. 매출은 없고 인건비 등 고정비는 계속 나가고…. 여행 이동 수단인 ‘부산 시티버스’까지 멈춘 상태에서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면대면 방식의 여행 프로그램은 일찌감치 접었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부분은 버리고, 수익이 나는 쪽을 극대화하기로 했다. 기존 사업에 미련 두지 않고 비대면 방식에 맞는 새 사업도 구상했다.


명란셀프쿠킹클래스가 운영 중인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충전소. 손민수 제공 명란셀프쿠킹클래스가 운영 중인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충전소. 손민수 제공

■ 전략

손 반장은 동업자와 함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언택트, 비대면에 맞는 아웃도어, 레저 분야를 고민해 ‘구봉산 트레킹’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참가비는 단돈 1000원. 오르기→힐링숲 산책→요가 등 코스. ‘팁 투어’라는 새로운 여행 스타일도 접목했다. 여행이 끝난 뒤 만족도에 따라 참여자들에게 약간의 ‘팁’을 받는 흥미 요소를 더했다.

“가만히 있어도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 건 똑같잖아요. 놀면 뭐 하겠어요. 뭐라도 해야죠. 하하.”

구봉산 트레킹이 나름 인기를 얻으면서 새 사업도 진행했다. ‘힘내라 부산 시민들’ 프로젝트. 코로나에 지쳐 있는 시민들을 위한 무료 해안산책로 트레킹 코스를 만든 것이다.

“인건비 안 받고 우리가 몸으로 때울 테니, 시티버스만 지원해달라고 해서 진행했죠. 태종대~중리~흰여울마을을 돌면서 좋은 공기를 쐬고 지역 이야기도 듣는 콘셉트였습니다.”

부산여행특공대는 코로나 이전부터 준비하던 ‘명란셀프쿠킹클래스’도 지난 10월 동구 초량동에 오픈했다. 코로나가 계속 유행했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동구 이바구길 활성화 사업의 하나인 명란셀프쿠킹클래스는 일본 명란젓의 시작점이 부산 초량동임을 알리려는 취지로 추진됐다. 방문객들이 직접 명란으로 파스타 등의 음식을 만들며 힐링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코로나 상황에 맞게 명란셀프쿠킹클래스를 ‘프라이빗’식으로 바꿔 운영했다. 요리법이 담긴 동영상을 만들어 보조 스텝 없이 방문객이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최대 5~6명이던 수용 인원도 4명으로 줄였다. 만일 한 팀이 2명이더라도 동시간대에 추가 고객을 받지 않았다. 방역은 한 팀이 끝날 때마다 하고 있다. 현재 명란셀프쿠킹클래스는 3주간 주말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언택트 감성여행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이라고 해서 허겁지겁 당장의 수익을 좇지 않았습니다. 차근차근 부산여행특공대 브랜드를 다시 알리고자 했습니다. 코로나19에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명란셀프쿠킹클래스 참가자들이 남긴 인증 사진. 손민수 제공 명란셀프쿠킹클래스 참가자들이 남긴 인증 사진. 손민수 제공

■ 희망

여행업 20년 경력의 손 반장은 동종업계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제로 매출’에 끊임없는 지출 등 어느 업계보다 코로나 충격이 클 거라고 했다. 사실 주변의 위로도 별로 힘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다들 힘드시겠지만, 결국은 이겨내야겠죠. 용기를 잃지 말고 냉철하게 현재를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백신이 나오더라도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지금의 어려움뿐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이제 코로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지 언택트, 비대면의 트렌드가 조금 빨리 왔다고 여길 뿐이라고.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급격한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내면의 노력이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 이전부터 혼행(혼자여행), 혼산(혼자 산행)이 유행했었잖아요. 어떤 상황을 특별하게 여기면 더 두렵고 막막해질 뿐입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4월부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10km씩 아침 조깅도 하고 있다.

“코로나가 주는 무기력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일 달리며 스스로를 계속 깨우쳤습니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새로운 정신력을 주기도 했죠. 2021년에는 분명 더 성장한 시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영상·편집 김보경·이재화 PD harufo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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