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희망人②] "예술은 언제나 힘들었지만, 늘 버텨왔습니다" 극단 '해풍' 이상우 대표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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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창단해 10년째 이어온 극단
공연 일주일 앞두고 코로나 탓 극장 '휴관'
유튜브 구독자 1000명 모아 생중계 도전
'부산연극TV'로 전환, 부산 연극 홍보 나서

제2차, 3차 등 끊임없는 코로나19의 직격탄에 신음하는 소상공인들. 폭락한 매출에 계속되는 고정비 지출은 마치 공식이 돼 좌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는 코로나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주는 무기력함을 버텨내고, 위기의 상황을 발판 삼아 새 도전에 나선다고 합니다. 작금의 고통 상황을 사회의 새 트랜드로 여기고 희망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4인을 만나봤습니다.


지난 22일 부산 북구 창조문화활력센터 소극장에서 만난 극단 '해풍' 이상우 대표.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부산 연극계의 '홍보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 '부산연극 TV'를 진행하고 있다. 김보경 PD 지난 22일 부산 북구 창조문화활력센터 소극장에서 만난 극단 '해풍' 이상우 대표.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부산 연극계의 '홍보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 '부산연극 TV'를 진행하고 있다. 김보경 PD

30년 연극 인생,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다. 2011년 '극단 해풍'을 만든 뒤 2016년까지 5년 동안 갖은 이유로 6번 이사를 다녀야 했다. 2017년부터 북구에 자리를 잡고, 천신만고 끝에 북구 상주 예술단체로 선정됐다. 이제야 안정기에 접어드나 싶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까지 말이다. 올 2월 23일.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공연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공무원들이 극장을 찾아왔다. 이내 입구에 휴관을 알리는 공문이 붙었다. 공연을 위해 3개월을 달려온 배우들과 이상우(49) 대표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새로운 '길'

이 대표의 '정신줄'을 꽉 붙잡아준 건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은 좌절하기보다 해법 찾기에 나섰다. 5명의 배우들은 이 대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회의를 거쳐 '유튜브 온라인 생중계'라는 대안을 만들었다.

유튜브를 잘 몰랐던 이 대표는 별 생각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길로 이 대표는 잠자고 있던 개인 계정을 '극단 해풍 TV'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첫 걸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고퀄리티' 온라인 생중계를 하기 위해서는 구독자가 1000명 이상이어야 했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구독자 1000명을 모아야 한다니…. 막막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배우들과 함께 발품 팔며 구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간절함이 통했을까. 나흘만에 1000명의 구독자가 모였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다. 1000명의 구독자가 모이더라도, 생중계를 하려면 유튜브 측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허가를 받는 데만 또 한 달의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온라인 생중계를 할 수 있는 다른 어플을 찾아 생중계를 진행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렇게 소극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올 2월 이상우 대표가 연출을 맡은 프로젝트 극단 '아프로디테'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장면. 극단 '해풍' 제공 올 2월 이상우 대표가 연출을 맡은 프로젝트 극단 '아프로디테'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한 장면. 극단 '해풍' 제공

코로나 고통은 금세 끝나지 않았다. 휴관은 풀렸지만, 실내 50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340석, 108석 규모의 소극장에 50명도 못 들어가다니보니 작은 극장이 유난히도 크게 느껴졌다. 게다가 '구포1919'라는 작품은 출연진만 44명이 나오는 작품. 관객을 5명밖에 못 받게되자 이 대표는 출연진을 30명으로 줄였다. 그래도 들일 수 있는 관객은 고작 19명이었다. 빈 자리를 조금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배우들 중 10명은 객석에서 등장했다. 배우들은 19명의 관객을 위해서도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부산의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과 1920년 부산경찰서를 폭파한 의열단원 박재혁 의사와의 만남을 극적 상상으로 꾸민 '진심'이라는 작품은 코로나19 탓에 공연 일정이 계속 미뤄졌다. 상반기에서 8월로, 또 한 번 연기돼 9월에야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여기 소극장이 관객들로 가득 찼거든요. 코로나 이전에 단체 관람을 왔던 남학생 한 명이 포토타임 때 아빠 역을 맡은 배우를 '와락' 끌어안았던 게 생각나요. 지금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북적이는 관객들, 관객들과 함께했던 포토타임이 가장 그립네요."


올해 9월 극단 해풍의 '진심' 공연 당시 관객들과 인사하는 이상우 대표의 모습.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관객석이 군데군데 비어있다. 극단 '해풍' 제공 올해 9월 극단 해풍의 '진심' 공연 당시 관객들과 인사하는 이상우 대표의 모습.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관객석이 군데군데 비어있다. 극단 '해풍' 제공

새로운 '창구'

이 대표가 부산에서 극단을 이끌어오며 가장 막막했던 건 공연을 홍보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신생 극단들은 제작비, 연습비, 대관비까지 내고 나면 이미 적자다. 홍보비를 마련하는 건 언감생심. 발품팔아 포스터를 붙이는 것조차 '불법 게시물'로 단속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지인의 지인들만 오는 데 그쳤다.

수년 동안 이 상황을 지켜본 이 대표는 부산시장이나 지역 문화계 인사를 만날 때마다 연극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홍보 창구'라고 강조해왔다. 생각보다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유튜브 구독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주변에서 무엇이라도 해보라고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그토록 갈망했던 '홍보 창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유튜브 '부산연극TV'에서 부산 지역에서 진행될 공연을 소개하는 이상우 대표(왼쪽). 부산연극TV 캡처 유튜브 '부산연극TV'에서 부산 지역에서 진행될 공연을 소개하는 이상우 대표(왼쪽). 부산연극TV 캡처

극단해풍TV를 '부산연극TV'로 바꾸고 부산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신청했다. 부산에서 공연될 작품을 소개하고, 새롭게 개관하는 극장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다. 부산 연극인을 소개하는 콘텐츠도 만들어 극단과 배우를 소개했다. 마음 한편에 부담감도 있었지만, '숙제'를 마치고나니 한 달 동안 8개 영상을 올리게 됐다. "지금은 구독자가 1000명이지만, 시민들이 관심가져주면 1만 명이 될 수도 있고, 욕심 부리면 10만 명이 될 수도 있잖아요. 꾸준히 부산 연극을 알리고, 언제 어디서 공연을 할 수 있는지 알리면 부산 연극계가 좀 더 공연할 맛이 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이 대표는 지원사업이 끝나더라도, 부산연극TV의 콘텐츠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지금처럼 짧은 기간에 많은 영상을 올리진 못하더라도, 한 달에 1~2개 제작을 목표로 힘 닿는 데까지 해볼 계획이다.


새로운 '힘'

인터뷰 내내 이 대표는 다른 연극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내비쳤다. "저희는 올해 부산북구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로 선정되고, 다른 사업도 하나 따내서 지원금을 받았어요. 2년 연속 사업이라 2021년 지원사업에 신청하지 않아도 지원을 받거든요. 올해같은 코로나 상황에서 지원금이 없었다면, 버텨낼 힘이 정말 없었을 거예요. 많은 극단들이 지원금 없이 코로나19를 버텨내고 있는 상황에서, 제 잘난 이야기를 하기가 정말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더더욱 부산연극TV를 저희 극단만이 아닌, 부산 연극계를 위한 채널로 쓰고 싶어요."

내년에도 부산연극TV와 극단 해풍의 항해는 계속된다. 해풍은 내년에 5개 작품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다른 목표는 비정기적으로 운영 중인 어린이 극단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것.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조금씩 준비해나갈 계획이다.

"연극은, 그리고 예술은 언제나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늘 버텨왔고, 최고의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죽어라 노력했습니다. 버티고, 견디고, 살아남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겁니다. 다 같이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동료들에게 전하는 이 대표의 메시지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영상·편집 김보경 PD harufor@busan.co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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