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천 명에다 한 명이 더 죽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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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나의 조부모님은 한국전쟁 때 황해도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이었다. 두 분 모두 내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세한 사정은 들은 바 없지만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살림살이를 어깨에 짊어진 채 고향을 떠나는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이주가 아닌,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딛는 발걸음. 삶의 터전을 잃고 아무것도 없이 낯선 곳으로 이주해 온 조부모님은 필연적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었고 그 가난은 자손에게로 쉽게 대물림되었다. 그러니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 하더라도 과거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전쟁이 끝나도 남은 이들의 삶은 리셋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이 이어지고 상처가 이어지고 공포와 불안이 이어진다.

전쟁 기간 동안 남한과 북한을 합쳐 약 300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당시 한반도 인구 비율로 따져보면 인구의 10% 정도가 죽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 전쟁통과 피란길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쟁 앞에서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인 사상자들의 수가 점점 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삶의 터전은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폭격에 무너지고 불타버린 집들과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의 사진을 뉴스에서 볼 때면 마음이 괴롭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진 한 장이지만, 그곳에서 전쟁을 겪어내는 이들의 고통은 사진 한 장이나 기사 한 줄로 나타낼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개인의 삶을 폭력적으로 뭉뚱그리고 지워버린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이처럼 폭력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익명화되어 무력하게 사라져버리는 인간 개인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역사는 유골들을 어떻게든 제로(0)의 상태로 결산하려 애쓰고 있다./천 명에다 한 명이 더 죽어도, 여전히 천 명이라고 말한다./그 한 명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야스오의 기아 수용소’ 중에서)

죽은 이가 1000명이든 1001명이든 역사에서는 중요치 않다. 거대한 서사의 줄기와 대략적인 숫자로만 기록될 뿐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개인의 삶은 배제되고, 미시적인 작은 이야기들은 지워져 버린다. 존엄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의 생이 무참히 망가지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한 개인의 고통 어린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피란 행렬과 피 묻은 얼굴 사진을 나는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분단국가라는 상황은 우리를 전쟁의 불안에서 완전히 놓여날 수 없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 외교와 안보 문제는 자주 정치적으로 이용되곤 했다. 불안 심리를 이용하면 상대를 가스라이팅 하기가 쉬우니까 말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당시의 고통을 잊지 못하거나 과거의 영향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한 그 불안을 온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대선 전이지만, 글이 실리는 금요일엔 이미 차기 대통령이 정해졌을 것이다. 새로 꾸려지는 정부가 부디 평화와 공존의 미래를 지향하기를, 역사적 비극이 국민 개개인의 삶을 얼마나 무참히 무너뜨리는지를 잊지 않고 무거운 책임감 속에서 신중한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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