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필즈상 수상, 한국 수학교육의 쾌거라고?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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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이, 미국 건너간 뒤 천재 수학자의 길
대입 위주 지겨운 암기식 한국 수학교육
생각하는 능력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수학교육의 성과인가 한계인가. 다양한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부산일보DB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수학교육의 성과인가 한계인가. 다양한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부산일보DB

■ 한국계 수학자 필즈상 첫 수상

지난 5일 낭보가 날아들었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의 필즈상(Fields Medal) 수상 소식. 덩달아 한국 수학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선 필즈상은 국제 수학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4년에 한 번 시상하는 데다 40세 미만 수학자들에만 준다는 점에서 노벨상보다 타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허 교수가 높은 평가를 받은 건 대수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한 대목에서다. 대수기하학은 방정식을 통해 도형이나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 조합론은 중·고 교과에 나오는 ‘경우의 수’를 기초개념으로 하는 분야다.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1968년 제시한 ‘리드 추측’ 등 11개의 난제를 푼 게 그의 업적이다.

한국계 최초 수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수학계의 쾌거로 여겨진다. 특히 올 2월 국제수학연맹이 한국 수학의 국가 등급을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상향한 것과 함께 한국 수학계의 경사다.


■ 한국 수학교육의 경사?

허 교수의 이채로운 성장사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미국 국적이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한국에서 교육받았다는 점이 언론 보도에서 부각됐다. 한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성장해 세계적 기초과학 학자로 거듭났다는 논리가 거기서 나온다. 한국 교육의 쾌거라는 것이다.

다른 시각도 만만찮다. 한국 교육의 성공 사례이기는커녕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경우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어릴 때부터 수학 영재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시험 위주의 제도권 교육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인을 꿈꾸던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들어간다. 그래도 마음 붙일 데 없는 건 마찬가지. 학점은 D와 F가 수두룩했다. 우울증도 생겼다.

그를 붙잡은 건 해외 석학 초청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본 수학자였다. 개인적인 인연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미국에 건너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불태우고 천재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 그의 성취를 한국 교육 시스템의 성과로 보는 것은 견강부회가 아닐까. 좋은 스승을 만난 행운에다 아이를 믿고 늦은 성장을 묵묵히 성원해 준 부모의 뒷받침이 컸다고 본다. 되레 천재를 거두지 못한 한국 교육의 현실을 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한국 수학교육은 대입에서 시작해 대입으로 끝난다. 거기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기대하긴 어렵다. 부산일보DB 한국 수학교육은 대입에서 시작해 대입으로 끝난다. 거기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기대하긴 어렵다. 부산일보DB

■ “수학은 곧 세상을 보는 눈”

여기서 허 교수의 인상적인 수상 소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에서는 보기 힘든 면모라서 그렇다. 우선 “심리적 안정감”. 추상적인 기초학문에 꼭 필요한 덕목이란다. 젊은 과학자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도 했다.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교육에 반하는 개념으로 읽힌다.

“어릴 적 시인을 꿈꿨다”는 소망도 예사롭지 않다.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진정한 수학자가 아니다”고 했다. 시가 세상의 진실을 간결한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라면, 수학은 우주의 본질을 숫자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둘의 아름다움은 닮았다.

“다른 사람과의 공동 연구”도 강조했다. 골방에서 혼자 머리 싸매는 수학자의 이미지는 편견일 뿐이다. 동료들과 적극 협력하지 않으면 더 멀리,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는 40세가 되기도 전에 어떤 깨달음에 닿은 듯하다. 하나의 이치에 지극하게 닿으면 세상과 인생을 보는 통찰이 생기는 모양이다.


■ 대입(수능)에 갇힌 교육의 한계

한국처럼 전 국민이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라도 없다. 물론 수학 자체의 문제일 리 없다. 모든 게 입시로 연결돼 있는 완강한 그 구조가 문제다. 우리 아이들이 공식만 외워 지겹도록 문제 풀기를 되풀이한 암기식 반복 학습의 결과는 ‘수학 흥미도·자신감 세계 꼴찌’(2019년)로 나타났다.

한국 수학의 모든 과정은 대입(수능)에서 시작해 대입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문제는 생각을 하든, 하지 않든 3분 내외로 한 문제를 풀게 돼 있다.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기본 원리에 대한 깨침)을 함양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는 수학의 근본 취지는 공염불이다. 생각을 키우는 학습은 수능을 망칠 뿐이다.

입시와 맞물린 수학교육의 가장 큰 고질은 ‘변별력’에 있다. 입시 난이도가 계속 높아지는 이유다. 그런데, 많이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문제와 많이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지식수준 이상의 내용이 버젓이 나온다. 학원에 다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좋은 학원에 다닌다고, 문제를 많이 푼다고 생각하는 능력이 얻어지는 건 아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다. 한국 수학자의 필즈상 수상은 기적에 가깝다.


허준이(오른쪽)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이 주관하는 필즈상을 수상하는 모습. 연합뉴스 허준이(오른쪽)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이 주관하는 필즈상을 수상하는 모습. 연합뉴스

■ 우리는 바꿀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을 키우는 학생들이 결국 성공한다는 사실, 허 교수가 증명했다. 그는 전형적인 늦깎이였다. 대학 4학년이 돼서야 수학을 시작했다. 지름길 놔두고 둘러 가느라 쌓은 다양한 경험이 결국에는 자산이 된다. 어릴 때부터 접한 시와 글과 음악 등등, 거기서 여러 가지가 통합돼 창조가 이뤄졌다.

한 군데 매몰되면 새로운 사고의 접합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 허 교수도 서로 다른 수학 영역을 왔다 갔다 하다 발상이 전환되면서 난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은 경우다. “굽은 길이 사실은 최선의 경로였다”는 그의 말 그대로다.

이제 한국의 수학교육 방식은 변해야 한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푸는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에서, 여유롭게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사실 우리는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견고한 교육 시스템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할 뿐.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가 더 많은 점수를 받기를 원하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필즈상을 탄 허 교수의 생애 자체가 그래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기존과 다른 가치관으로 커서 성공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가능성. 진정, 생각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이 소망에 동참하는 건 어떤가.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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