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이야기] 초밥의 위기…기후 변화, 일본 가다랑어·와사비에 영향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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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 계속 먹을 수 있을까?

일본 남서부 고치 현은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가다랑어 어업으로 유명한 곳이다. 가다랑어는 일본에서 회나 초밥, 또는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를 만들어 먹는 중요한 요리 재료다.

고치 현의 어부들은 최근 들어 전례 없이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면서 걱정이 많아졌다. 아주 살찐 가다랑어가 많이 잡힌다는 사실이다. 가다랑어가 살찐다는 것은 플랑크톤 같은 먹이가 많아졌다는 걸 의미한다. 플랑크톤이 늘어났다는 것은 바다의 수온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뜻한다. 실제로 고치 현 앞의 토사 만 수온은 지난 40년 사이에 섭씨 2도 가량 높아졌다. 즉 살찐 가다랑어는 기후변화를 상징하는 장면인 것이다.

가다랑어가 통통하다면 어민으로서는 돈을 더 벌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들은 걱정하는 것일까. 단기적으로 보면 가다랑어 무게가 많이 나가니 당장은 수입이 늘어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수온이 계속 오르면 미네랄이 풍부한 해수가 수면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된다. 나중에는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가 줄어들고 가다랑어는 결국 굶어죽게 된다.

일본 어업은 어민의 고령화로 애를 먹고 있다. 이미 최근 30여 년 사이에 많은 어민이 어업에서 손을 뗐다. 이런 터에 기후변화 때문에 가다랑어처럼 환금성이 높은 어종이 사라지면 어업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가다랑어로 만드는 회나 초밥, 가쓰오부시를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높아지고 있다. 40년 전만 해도 수십 개였던 고치 현의 가쓰오부시 공장은 최근 들어 서너 개로 줄었다. 남은 공장들도 머지 않아 문을 닫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우려한다.

와사비도 가쓰오부시와 비슷한 처지로 내몰렸다. 와사비를 키우려면 기온이 너무 높아도 안 되고 습도가 지나치게 높아도 안 된다. 와사비 생산에 가장 적합한 기온은 21도 정도다. 최근 들어 일본 최대의 와사비 생산지인 시즈오카의 기온은 30도를 훨씬 넘는다. 시즈오카만 그런 게 아니다.

해발 1000m 이상 산이 많은 오쿠타마 산맥에 자리 잡은 도쿄 북서부의 오쿠타마 마을은 19세기부터 와사비 농사를 지었다. 이곳에서도 기온 상승 때문에 와사비 농사가 잘 안 돼 농가 75%가 농사를 포기했다. 기온이 높아진데다 과거보다 비가 많아지고 심지어 홍수도 자주 일어난다. 수질도 과거에 비해 매우 나빠졌다. 지금처럼 기온이 계속 높아지면 머지않아 와사비를 더 이상 재배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고 현지 농민은 걱정한다.

가다랑어와 와사비가 사라지면 결국 일본 초밥에도 결정적 타격을 미치게 된다. 두 재료가 없는 초밥은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기후변화는 일본 음식문화의 상징인 초밥마저 없애버리거나 변화시키게 될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두운 전망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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