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것들] “교사의 암묵적 괴롭힘도 폭력”… 극단 선택한 학생이 남긴 질문, 폭력의 재정의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일보 주니어보드 '요즘것들'

체벌·폭언 없어졌다 하지만
학생들 잇달아 극단적 선택
교사·학생 간 폭력 인식 차이
시대 맞게 폭력 범주 조정해야

올해 2월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한 고교생의 유가족이 지난달 딸이 다니던 중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인 장면. 유가족 제공 올해 2월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한 고교생의 유가족이 지난달 딸이 다니던 중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 중인 장면. 유가족 제공

“요즘은 교단에서 욕설이나 폭언 못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부산의 한 여자중학교 교사는 말했다. 현장을 목격했던 A 양 동급생들은 “그것은 학대가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와 학생들의 증언은 간극이 컸다.


A 양은 올해 2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나이는 17세. 휴대전화 속 마지막 메모에는 2년 전 중학교 재학 당시 만났던 교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유서를 본 부모는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2년 전 교사의 만행이 나열돼 있다. 학생들 앞에서 A 양에게 소리를 지르고, 유독 A 양의 행동과 복장을 엄격히 단속하는 일들이다. 과한 부분이 있지만 교사의 말처럼 ‘욕설이나 폭언’은 없다.

그러나 A 양은 교사의 잇따른 꾸중이 있던 그해 처음 자살 시도를 했다. 학생회장이었던 A 양은 일주일에 한 번 등교하는 위기관리대상 학생이 됐다. 2년 후 A 양은 숨졌다.

특이 사례일까. 다른 교실에도 A 양들이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의 한 예고에서는 교사의 괴롭힘을 호소하던 B 양이 끝내 숨졌다.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C 양은 교사 괴롭힘 사건 이후 잠을 자지 못한다. 과호흡도 왔다. 현재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하루 절반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들에게 교사에게 ‘찍혔다’는 것은 교우관계와 학업에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오게 한다. 교권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고는 하나, 여전히 학교 안에서 생활기록부를 쥔 사람도, 말을 현실화할 힘을 가진 것도 교사다. 10대에게 학교는 여태까지 경험한 사회의 절반이다. 좁은 세계에서 한 번의 실패가 가져오는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부산지부 김찬 청년활동가는 “체벌은 사라졌지만 체벌의 동기도, 체벌하던 교사도 남아 있다”며 “상벌점제나 차별, 공개적 모욕 등 더 은밀한 방식으로 체벌은 수단만 달라진 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괴롭힘’과 A 양의 ‘극단 선택’ 사이 남겨진 질문이 많다. 교사의 괴롭힘은 증거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 A, B, C 양이 호소하는 괴롭힘의 종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폭력을 설명하는 말은 교사가 말했듯 ‘욕설이나 폭언, 폭행’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이 말하는 ‘폭력’은 다른 층위다. 교사가 A 양에게 폭력적이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동급생들은 때리고 욕하는 장면을 말하지 않았다. 아래층까지 들리게 큰소리로 혼내고, 회의록을 던지고, A 양에게만 유독 복장 검사가 엄격하던 장면을 기억해 냈다. 그들에게 폭력은 공개적인 모욕, 차별, 위협으로 남았던 것이다.

폭력은 계속해서 모양을 바꾼다. 체벌이 있던 시기, 때리고 욕하는 것이 10대가 인지하는 폭력이었다면 체벌이 사라진 지금은 과거에 폭력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암묵적인 위협과 공포까지 폭력에 포함됐다. 폭력의 개념이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에서는 새로운 폭력의 모양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나 이미 교실에서 학생들은 그것을 ‘학대였다’고 재판한다.

폭력에 더 많은 이름이 붙어야 한다. 이제는 일상어로 자리 잡은 말 ‘가스라이팅’은, 존재하기 전에는 폭력으로 분류도 되지 않던 행위다. 이름 없는 폭력들은 증발해 버린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타인에 대한 폭력이 시작된다고 했다. 과거의 ‘폭력’ 개념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폭력을 포괄하기에 비좁은 틀이 되어 버렸다. 욕설과 폭언, 폭행 말고도 존재하는 ‘폭력’들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