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다시 찾아온 공동경비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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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영화 ‘육사오’ 스틸 컷. 씨나몬(주)홈초이스 제공 영화 ‘육사오’ 스틸 컷. 씨나몬(주)홈초이스 제공

한국영화의 화려한 서막을 쏘아올린 작품 중 한 편은 아마도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공동경비구역’)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 간의 총격사건이 발생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남북한 합동 수사단이 꾸려지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수사단은 사건의 본질보다는 이념의 갈등으로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이를 위해 중립국감독위원회는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을 파견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살인사건의 실체로 파고 들어간다.

새천년이 시작되고 만들어진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미장센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동시에 남북문제를 인간 대 인간, 군인들의 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첫 번째 영화로 대중적 인기도 함께 얻었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후, ‘공동경비구역’처럼 최전방 GP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 한 편 개봉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우정을 나눈 군인들이, 2022년에 이르면 공동급수구역 JSA에서 단합하는 영화 ‘육사오’는 ‘공동경비구역’을 떠올리게 하지만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한 웃음을 만들고 있어 ‘공동경비구역’과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로또 1등 당첨금 57억 얻기 위한

남북 눈치전 다룬 코미디 ‘육사오’

이념 갈등에 자본 결합한 기발함

시대 어울리는 소재로 웃음 유발

말년 병장 ‘천우’는 우연히 1등 당첨 로또를 줍고 달콤한 미래를 꿈꾸지만, 로또가 북으로 날아가면서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천우는 그 로또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를 돕기 위해 뼛속까지 군인 ‘강 대위’, 어리바리해 보이는 관측병 ‘만철’이 남한 측 로또 원정대를 꾸린다. 그리고 로또를 주운 북측 군인 ‘용호’와 북한 정치지도원 ‘승일’, 대남 해킹 전문 북한 병사 브레인 ‘철진’이 로또 당첨금을 가지기 위해 남한 군인들과 협상을 시작한다.

영화 ‘육사오’는 코미디 영화지만 억지로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다. 로또 1등 당첨금 57억을 얻기 위한 남북의 치열한 눈치 싸움과 협상이라는 상황 자체가 주는 웃음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현실에서도 있음 직한 일이라 수긍할 만하다. 최전방 GP에서 일어나는 대북심리 방송과 공동급수구역 JSA에서 성사된 남북 평화회담 장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무겁고 어두운 회담이나 체제 선전용 방송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서 모처럼 극장에서 낄낄대며 웃을 수 있다. 또한 ‘공동경비구역’에서는 협상 중재를 위해 한국계 스위스인 소령으로 배우 이영애가 등장했다면, ‘육사오’에서는 보급관 류승수가 평화의 중재자로 등장하고, 당첨금을 안전하게 전달받기 위해 포로 맞교환 대신 군인 맞교환 작전을 펼치며, 거액을 분배하기 위해 남한 막내 병사가 은행으로 가는 여정까지 영화는 차근차근 웃음의 단계를 높여나가고 있다. ‘달마야 놀자’ 각본을 쓴 박규태 감독이 15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기에 웃음에 공을 더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제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한국전쟁 날짜인 육이오(6.25)와 헷갈릴 수 있지만, 감독은 “로또를 보면 45개의 번호 중 6개를 맞히면 1등 당첨이라고 하며 그 의미를 담아 6/45”라고 설명한 바 있다. 소소한 웃음과 더불어 영화 장면마다 의미를 담아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공동경비구역 JSA’가 최근에 개봉했다면 2000년만큼의 파장이 일었을까 궁금해졌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분단국가임을 기억할 때는 정권이 바뀌거나 프레임을 바꿀 때 말고는 현실을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산이나 통일이라는 단어가 아주 오래된 단어처럼 들리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육사오’는 어쩌면 조금은 민감하고 이제는 시들한 감정인 남북 이념 갈등을 ‘자본’과 결합하여 풀어나가고 있어 기발하다. 즉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리는 소재라서 누구나 가볍고 경쾌하게 영화를 만날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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