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 부산] '음악 순례자'들의 성지, 추억의 음악 감상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금은 사라진 부산 추억의 장소를 다시 기록하는 ‘레코드 부산’. 그때 그 사람을 만나, 추억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개인 오디오가 귀하던 시절, 음악을 듣기 위해 사람들은 '음악 감상실'로 모였습니다.

음악 감상실은 차도 마시고 수다를 떨 수 있는 음악 다방과는 달리, 정말 음악을 듣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극장처럼 의자도 모두 앞을 향해 있고, 조명도 어두운 느낌이었죠. 팝 음악을 주로 다루는 '무아'나 '랩소디' '르네상스' '예그린'과 같은 음악 감상실도 있었고, 또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감상실도 있었습니다.

레코드 부산 세 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무아 음악 감상실 출신의 최인락 디제이, 예그린 음악 감상실 출신의 김현민 디제이를 만나 추억의 음악 감상실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1971년 부산 중구 광복동에 문을 연 무아 음악 감상실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는데요. 당시 2만 3000장이 넘는 음반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고가의 오디오, 수준급 디제이들의 음악 선곡으로 '음악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1993년 부산진구 서면에 문을 연 예그린 음악 감상실은 후발 주자에 속했는데요.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뮤직비디오의 시대가 펼쳐지면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LP보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시간에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친구, 연인이 만나서 갈 곳이 많지 않았던 시절. 그 시절의 청춘들은 대부분 음악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을 찾곤 했는데요. 리퀘스트 용지에 꾹꾹 눌러 쓴 신청곡이 나올 때면, 괜히 더 특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죠. 비가 오는 날이면, 음악 감상실 앞에 긴 줄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아에는 1층부터 4층까지 줄이 이어졌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도에까지 보조 의자를 깔아야 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끌던 음악 감상실은 1990년대 중반부터 하나둘씩 사라집니다.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개인 오디오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모여서 음악을 들을 필요가 없게 됐죠. 음악 감상실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 무아와 예그린도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현민 디제이는 "예그린이 문을 닫기 전 단골손님들에게 '언젠가는 예그린 음악 감상실을 다시 열겠다'고 약속했는데, 20년이 넘도록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아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음악 감상실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라디오 등을 통해 디제이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두 사람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데요. 부산 음악 감상실의 상징과도 같은 무아 음악 감상실을 복원하는 꿈입니다. 최인락 디제이는 "처음엔 디제이로 평생을 살아온 우리 두 사람이 위안을 받기 위해 행사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동참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우리 다음 세대에도 이 문화를 계속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음악 감상실의 추억, 영상을 통해 만나보시죠.

*'레코드 부산'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출연=남형욱·서유리 기자

그래픽=이지민 에디터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