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섭의 플러그인] 메가시티 좌초 땐 부울경은 무엇을 잃게 되나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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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경남과 울산, 최근 잇따라 이탈 선언
‘부울경의 꿈’ 무산될 최대 위기 봉착
‘수도권 집중 공동 대응’ 의기투합
힘들게 쌓은 신뢰 관계 크게 훼손
자발적인 현안 추진 동력도 상실
정치 변수 넘을 극복 방안 찾아야

〈맹자〉의 첫머리에 나오는 맹자와 양혜왕 사이의 대화는 ‘이익’에 대한 중층적인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국시대였던 만큼 당장 눈앞의 가시적인 이익을 바라는 양혜왕에게 맹자는 공의에 바탕을 둔 긴 호흡의 ‘인의(仁義)’로 응수했다. 양혜왕의 단견을 지적하는 쪽도 많으나, 당시 상황에 비춰 보면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언급할 만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 보존이 최우선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양혜왕 입장에선 곧바로 나라에 이익이 되는 방안이 필요했고,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현실을 종식해야 하는 맹자로서는 결국 인의가 최선의 방안이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고 맹자가 단기 이익을 백안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합당한 명분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맹자와 양혜왕의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부울경 특별연합(메가시티)의 좌초 위기를 보면서 문득 이 대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년 6개월간의 우여곡절 끝에 내년 초면 불완전하게나마 첫 출발의 꿈에 부풀었던 메가시티가 좌초 위기에 놓인 것도 결국은 내 몫으로 떨어질 ‘눈앞의 이익’이 원인이다.

지난달 19일 박완수 경남지사는 “부울경 특별연합은 비용만 들고, 실익이 없다”며 불참을 선언하면서 대신 행정통합을 대안으로 내놨다. 일주일 뒤 김두겸 울산시장도 “현재 상태로는 부울경 특별연합에서 울산이 얻을 부분은 거의 없고, 울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도 어렵다”며 역시 메가시티 불참을 선언했다. 경남과 울산 모두 지금 상태로서는 자기들에게 돌아올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 지자체장이 거론한 ‘이익’이 메가시티 출범 석 달을 앞둔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경남은 서부경남의 소외, 울산은 부산 빨대 효과 등을 많이 우려하는 듯하지만, 여기에 대한 의론은 여전히 분분하다.

그럼에도 두 지자체장은 지금과 같은 수도권 일극 집중을 막기 위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모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이를 연결해 보면 메가시티 중단·불참의 이유로 든 이익이라는 것이 대체로 단기 이익임을 짐작하게 한다. 수도권 집중 완화를 통해 부울경이 기대할 수 있는 중장기 이익보다는 당장 지자체장으로서 존재감을 각인할 수 있는 단기 이익의 확보 여부를 더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 지자체장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이번 메가시티 사태를 통해 확실하게 실감하는 셈이다.

경남도와 울산시가 이탈을 밝히면서 내년 초부터 특별연합 사무를 시작하려던 애초 계획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게 됐다. 부울경은 물론 전국에서도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메가시티가 이처럼 위기에 처한 모습을 지켜보는 지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메가시티라는 공통 목적물이 막판 암초에 부딪힌 것도 그렇지만,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에 쌓인 불편한 감정은 상당 기간 남을 것 같다. 가장 걱정되는 대목은 부울경 상호 간의 신뢰 훼손이다. 아무리 지리·역사적으로 한 뿌리임을 강조하고 현재의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만한 곳으로는 부울경밖에 없다고 자부한다고 해도, 눈앞의 작은 이익 앞에서 이런 것들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만다는 현실을 이번에 똑똑히 목도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예전의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도 저절로 떠오른다. 신공항 입지와 신항 명칭, 물 문제 등 공통 현안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지만, 부울경 어디에서도 중재나 화해를 주선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겉으로는 한 뿌리임을 내세우면서도 결국 또 각자도생으로 갈라서면서 생기게 될 상호 간 신뢰 훼손은 부울경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게다가 부울경 메가시티는 순전히 지역에서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동력을 씨앗으로 추진된 사안이다. 대한민국에서 수도권에 유일하게 대응할 역량이 있는 곳이라는 자부심과 지역균형발전의 선도자가 되겠다는 대의가 합해져 시작된 만큼 부울경의 자존심과도 직결된 최대 현안이다. 그런데도 지자체장 교체라는 정치적인 변수 앞에서 위기를 맞았다. 앞으로 부울경이 지역의 대형 공통 현안을 놓고 다시 자발적인 동력을 형성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이번 메가시티 좌초 위기가 너무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부산 빨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력한 ‘수도권 빨대’는 갈수록 온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데, 부울경은 언제까지 와각지쟁(蝸角之爭)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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