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하정우 “내 진짜 모습 아는 윤종빈 감독…작업할 때 가장 긴장”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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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정우가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경덕 인턴기자 배우 하정우가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경덕 인턴기자

“에어부산 타고 고향 같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돌아왔어요.”

13일 오후 6시 해운대구 KNN시어터. 배우 하정우가 ‘액터스 하우스’ 무대에 올랐다. 이 섹션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자신의 연기 인생과 철학을 직접 들려주는 스페셜 토크 프로그램이다.

이날 하정우가 등장하자 객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휴대폰을 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서 설레는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포토타임을 마친 하정우가 “안녕하세요. 하정우입니다”고 입을 떼자 관객들은 큰 박수를 치며 그를 반겼다. 하정우도 “2005년 ‘용서받지 못한 자들’을 이곳에서 처음 선보인 후 본격적으로 영화를 하기 시작했다”며 “그래서 그런지 더 의미 있다”며 반가워했다.

하정우는 1시간가량 진행된 행사에서 최근 대중에게 선보인 넷플릭스 ‘수리남’부터 출연작인 ‘터널’ ‘더 테러 라이브’ ‘황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하정우는 차분한 목소리로 각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부터 촬영 전과 후, 뒷이야기 등을 털어놨다.

다음은 진행자와 배우 하정우의 일문일답.

-2005년에 ‘용서받지 못한 자들’로 BIFF를 찾았다.

영화제 기간 내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윤종빈 감독과 ‘용서받지 못한 자들’을 들고 왔는데 4개 부문 상을 받았다. 그때 영화 관계자들과 선배들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미팅도 하는데 꿈만 같더라. 정말 뜨거웠다.

-윤종빈 감독의 첫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리즈인 ‘수리남’에 함께 했다. 처음 ‘수리남’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강인구라는 캐릭터를 어떤 사람으로 봤는지 궁금하다.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야 해서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고민을 하면서 캐릭터를 연기했나.

일단 여섯 시간짜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기간 안에 방대한 분량의 촬영을 소화해야 했다. 가장 걱정한 부분은 이 인물을 따라가는 여섯 시간이 지루하게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캐릭터를 좀 더 밀도 있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물리적, 기술적으로도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말이 되나?’ 싶었다. 어떻게 민간인이 국정원과 힘을 합쳐 마피아 두목을 잡고 고군분투하면서 생존을 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실제 모티브가 된 분을 만나보니 그렇게 하셨더라. 그래서 영화에선 명분과 이유를 설명하려고 인물의 전사를 보여준다. 수위를 조절해야 관객이 납득할 것 같았다.

-영화 ‘터널’ 이야기도 좀 들려달라. ‘터널’ 땐 동선 자체가 크지 않아서 그 당시에 어려웠을 것 같다.

연출자가 개입해서 이끌어가는 예능 같은 느낌을 받았다. 김성훈 감독님과 배우 김성훈(하정우의 본명). 두 김성훈이 의논을 많이 하면서 장면을 만들어갔다. 자동차 안에 카메라를 군데군데 숨겨놓고 촬영했다. 10~15분짜리를 한 신에 찍었다. 하다가 NG가 나거나 문제가 생겨도 끊지 않고 계속 갔다. ‘PMC: 더 벙커’도 그렇게 진행했다. 사실 첫 시작은 ‘더 테러 라이브’였다. 그때 그런 방식으로 효과적이란 걸 알았다. 10~15분을 혼자 연극처럼 하면 쭉 찍어서 편집하는 방식이었다.

배우 하정우가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경덕 인턴기자 배우 하정우가 1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액터스 하우스’에 참석해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경덕 인턴기자

-배우가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게 연기할 때 편한가? 아니면 제약이 많은 게 나은지 궁금하다.

다 힘들다. 어떤 것이든 고생스럽다. 쉽지 않다. 가장 어려운 건 내가 이해하지 못했거나 현실감 없는 장면, 혹은 신빙성 없는 장면을 찍어야 할 때다. 사실 시나리오가 100% 완벽할 수 없으니 30% 정도는 배우가 현장에서 채워줘야 한다. 그런데 안 채워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땐 굉장히 괴롭다. 이걸 볼 관객이나 시청자가 이게 가짜라는 걸 느낄 걸 알기 때문에 그걸 생각하면 힘들다.

-관객들에게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는 게 굉장한 도전이었겠다.

이야기가 재미있는 게 상업영화의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재미가 없으면 그건 존재 가치가 없다고 본다. ‘터널’의 원작 소설을 읽어봤을 때 너무나 비극이었다. 이게 과연 상업영화로서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톤과 매너를 잘 조절하려고 했다. 그 안에서 몸부림치고 살아남으려고 하는 모습은 코미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이춘연 대표와 ‘더 테러 라이브’를 함께 했다. 여러 작품을 앞둔 상황이라 바빴던 걸로 알고 있는데 무리해서까지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 ‘더 테러 라이브’를 봤을 때 ‘뭐야 이거’란 생각이 들었다. 좀 이상했다. 괴상하고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 시나리오를 봤더니 너무 재미있더라. 뭐랄까. 아주 촘촘하게 잘 짜인 영화의 설계도를 보는 느낌이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연극 연습을 할 때 바닥에 테이핑을 하고 시작한다. ‘더 테러 라이브’를 준비할 때도 그렇게 연습했다. 감독님이 손석희 앵커를 많이 참고해서 캐릭터를 쌓은 걸로 알고 있다. 잘 설계된 시나리오와 대사였다. 처음에 제작진에서 프롬프터를 준비해줬는데 그렇게 하면 너무 기계처럼 연기할 것 같아서 통으로 암기를 했다. 생중계하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다. 완급조절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나홍진 감독과 ‘추격자’ ‘황해’ 두 편을 함께 했다. 그 중 ‘황해’에선 거의 무성 영화에 가까운 현실적인 슬랩스틱 연기를 보여줬다. 행동으로만 캐릭터를 설명해야 하는 역할이라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실제 사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 오랫동안 작업했다. 감독님들이 취재를 정말 열심히 해서 작품을 준비하신다. 아주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이야기 보따리를 가져오는 거다. ‘황해’ 때도 재중동포 이야기를 듣고 사연을 들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방향과 완급 조절의 정도를 잡는다. ‘멋진 하루’ 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주인공인 분이 실제로 감독님과 친했던 분인데 이야기만 들어도 너무 매력적이더라. 당시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와서 얼굴을 한 대 때려도 웃으면서 농담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현장에 가서도 그런 마음으로 하니까 느낌이 달라지더라. 지나고 보니 감독님들의 취재력이 더 대단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황해’ 촬영 후 지친걸로 안다.

지금은 법으로 촬영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출근 시간을 알아도 퇴근 시간을 몰랐다. 2~3일 밤새는 건 기본이었다. ‘황해’는 나의 마지막 필름 영화다. 필름 많이 쓴 걸로 세계 기네스북 2위에 기록돼 있을 거다. 회차는 210차 정도, 날수로는 11개월을 찍었다. 변수도 많았고. 사건 사고도 많았다. 심지어는 날씨조차도 도와주지 않았다.

후반부 버스정류장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때 8월이었는데 이례적으로 8월 장마가 왔다. 촬영을 해야 하는데 정말 비가 계속 오더라. 버스 차고지에 막차가 들어온 뒤부터 첫차 나가기 전까지만 촬영할 수 있는데 비가 와서 오랫동안 못 찍었다. 2시간 동안 피 분장을 하고 촬영을 기다리면 비가 오고 이걸 계속 반복했다. 한 달 동안 그랬다.

-‘범죄와의 전쟁’도 빼놓을 수 없다. 캐릭터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들려달라.

실제 조폭 두목을 만났었다. 유명한 분인데. 그분과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인터뷰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하면서 흥미로워하더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윤종빈 감독은 시나리오 쓸 때 필요한 재료 이야기를 쭉 듣고 저는 옆에서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더 깍듯하고 더 예의 있고 잘 차려입는 것 같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영국의 신사 느낌이 나게 캐릭터를 잡았다. 흐트러짐 없고 건강하면서 번듯한 느낌 말이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한 영화 ‘군도’에서 민머리로 등장한 것도 인상 깊다. 윤 감독이 대학 시절 하정우가 연극 ‘오델로’에서 민머리였던 걸 떠올리고 추진한 걸로 안다. 윤종빈 감독의 페르소나로도 불리는데 함께 작업할 때 시너지 효과가 있나.

윤종빈 감독에게 ‘오델로’ 때 모습이 강렬하게 남아있던 것 같다. 윤종빈 감독은 나의 진짜 모습을 잘 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적인 시간을 많이 보내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덜하거나 가짜 연기하면 바로 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덜 하는 날이 있는데 그걸 귀신같이 알아낸다. 많이 불편하다. 어떤 작업보다 윤 감독과 작업하는 게 가장 긴장되는 작업이다.

-관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면.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도 만들고 있다. 폐막 앞둔 이 시점에 저를 초대해줘 감사하다. 3년 만에 완전 부활한 영화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었다. 황금의 목요일 저녁에 이렇게 귀한 시간 내줘서 너무 감사하다. 반가울 따름이다. 얼마 전에 영화 ‘피랍’ 촬영을 마쳤는데 모로코, 이태리에서 촬영했다. 뉴질랜드 걷기 예능도 곧 선보일 것 같다. 배우 여진구, 주지훈, 샤이니 민호와 함께 뉴질랜드 남섬을 종단하는 이야기다. 1000km를 걷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캠핑카로 이동하는 내용이다. 다음 달부터는 ‘하이재킹’ 촬영에 들어간다. 촬영을 시작하면 대전 세트장에서 살지 않을까 싶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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