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부산, 미식의 도시!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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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식관광도시 전략 추진키로
부산 지명 딴 향토음식도 잘 살려야

부산은 '영화의 도시'다.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여기다 하나 더 보태 앞으로는 부산을 '미식의 도시'라고 불러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올해 부산시가 실시한 부산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내·외국인의 부산 관광 목적 1위가 '음식(맛집 탐방)'이었으니 절대 과장이 아니다. 부산시도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춰 지난 9월에 '글로벌 미식관광도시 부산 조성 전략' 수립을 위한 부산미래혁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미식관광도시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맛있는 부산'을 꿈꾸면서 부산 음식의 과거-현재-미래의 모습을 짚어 봤다.


조선방직은 사라졌지만 조방이란 지명은 조방낙지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았다. 조선방직은 사라졌지만 조방이란 지명은 조방낙지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았다.


■ 맵고, 짜고, 먹을 게 없다?

과거 경상도 음식은 평가절하되었던 게 사실이다. 경상도 음식은 걸쭉하고 짜다는 인식이 많았다. 부산 음식도 '국밥 말고는 먹을 게 별로 없다'라거나 '맵고 짜고 간이 센 편이다'는 말을 들었다. 고기라고 하면 바닷고기를 먼저 생각할 정도로 생선을 많이 먹었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부산의 진짜 맛은 복국이나 돼지국밥 같은 국물 요리에 있다"고 말한 대목은 진면목을 꿰뚫었다. 부산시는 부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비롯해 많은 정보를 집대성해 2014년 디지털 부산역사문화대전을 편찬했다. 여기서는 부산의 향토음식에 대해 "부산은 20세기에 들어와 급성장한 신생 도시이며, 항구 도시의 특성상 외국인의 출입이 빈번하였고, 6·25 전쟁 시기 피란으로 외부 유입 인구가 많았다. 이러한 유동성 때문에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정성이 강한 음식 문화가 발전하기 어려웠던 점도 있다"고 기술한 대목이 나온다. 널리 사랑받은 음식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한 것이다. 당시 부산역사문화대전은 향토음식으로 동래파전, 생선회, 흑염소불고기와 산성막걸리, 곰장어구이, 해물탕, 아귀찜, 재첩국, 낙지볶음, 밀면, 돼지국밥, 복어요리, 붕어찜의 사례를 들었다. 그동안 돼지국밥과 밀면은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부산에 오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반면에 붕어찜과 재첩국(낙동강 산) 등은 이제 부산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이 향토음식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전망한 점이 인상적이다. "부산의 지정학적 여건은 외래 식문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식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산은 역사와 문화가 결집한 매력적인 향토 음식이 지속해서 창출될 수 있는 도시다."


APEC나루공원에서 나이트푸드테라스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 제공 APEC나루공원에서 나이트푸드테라스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 제공

■영화와 음식, 제대로 만났다

글로벌미식관광도시 부산의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행사가 진행 중이다. 13일까지 주말마다 수영강변에서 열리는 '나이트푸드테라스'. 푸드테라스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직접 먹고 음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음식전문가들과 함께 나누는 이벤트다. 지난 7월에 열린 부산푸드필름페스타에서 부산관광공사와의 협업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반응이 뜨거워 재개한 것이다. 지난 22일에는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와 이지수 아미치 오너셰프가 '바다의 맛'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23일에는 독특하게도 돼지국밥과 함께 위스키 잔술을 판매하는 양산돼지국밥 김성운 대표가 나와 '순대와 위스키의 페어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나 재즈공연을 보고 와인과 음식 토크를 즐긴 뒤, 해운대리버크루즈로 수영강과 광안대교 야경까지 둘러보면 잊지 못할 부산 여행이 되는 것이다.

음식 영화와 맛 체험을 결합한 부산푸드필름페스타는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섯 번째 영화제였던 올해의 주제는 '술 마시는 인류, 호모 바쿠스'로, 공식 건배주가 창녕 단감으로 만든 와인 '단감명작(맑은내일 양조장)'이었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는 지역과 상생하면서 전통적 가치를 재발견해서 확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음식영화제의 성공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전남 목포시는 지난달 '목포미식페스타'라는 이름으로 부산푸드필름페스타의 형식을 고스란히 따라했다고 한다. 부산미래혁신회의에서 나온 '글로벌 미식관광도시 부산 조성 전략'은 한마디로 코로나 이후 핵심 여행 트렌드인 미식 관광을 활용하여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명지 파밭이 신도시로 바뀌며 명지대파의 명성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부산일보DB 명지 파밭이 신도시로 바뀌며 명지대파의 명성이 깨질 위기에 처했다. 부산일보DB

■부산 지명 음식 이렇게 많았나

얼마 전 부산문화재단의 의뢰로 부산 지명을 딴 부산 음식에 대한 글을 쓰며 다소 놀랐다. 부산의 지명을 딴 음식이나 식재료가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가덕대구, 가덕숭어, 구포국수, 기장미역, 낙동김, 대변멸치, 명지대파, 산성막걸리, 조방낙지, 칠암붕장어(가나다순) 등 10개가 넘는다. 지명이 붙은 음식이나 식재료는 그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유래가 깊고 특색 있는 맛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부산의 지명과 결합한 부산 음식 속에는 부산사람의 자부심이 들어 있었다. "가덕도 육소장망 숭어잡이는 1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어로법이다. 국내 미역 양식의 첫 배양지는 기장이다. 낙동김이 섞여야 고급상품이 된다. 근대적인 대파 농업은 명지에서 시작됐다. 조선방직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지만 조방낙지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 이름에는 노동자들의 애환이 묻어 있다." 부산의 지명이 붙은 여러 음식을 보면서 부산은 참 다양한 식재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부산을 바다와 산과 강을 동시에 품은 삼포지향(三抱之鄕)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부산만 한 곳이 잘 없다.


가덕도 육소장망 숭어잡이 모습. 부산일보DB 가덕도 육소장망 숭어잡이 모습. 부산일보DB


■향토음식의 위기와 기회

평양냉면, 전주비빔밥, 충무김밥…. 이름만 들어도 어떤 재료를 넣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이 온다. 그런 면에서 부산의 식재료는 아쉽다. 최원준 시인은 가덕숭어를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개발하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피자의 원조라고 불리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피자(Napoli pizza)가 이 같은 모범 사례다. 이탈리아에서도 예전에 피자는 싸구려 음식으로 취급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나폴리 피자 장인들이 협회(APN)를 결성하고 인증제를 시행한 덕분에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되었다. 질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낙동김'이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 지역 식재료와 음식이 오랜 역사와 높은 품질에도 불구하고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부분은 개선되어야 한다. 가덕도공항 건설로 가덕대구와 가덕숭어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명지의 파밭이 신도시로 바뀌며 명지대파의 명성도 깨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우리의 창의성과 노력에 따라서는 나폴리 피자처럼 세계적인 음식이 될 가능성도 있다.

부산푸드필름페스타 박명재 디렉터는 "서울은 서울미식주간을 정해 서울 대표 식당 100곳을 소개하고, 선정된 식당의 음식을 맛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재래시장에서는 셰프와 바텐더가 시장에서 구한 식재료를 활용해 창작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부산시도 '부산 맛집' 책자만 만들 게 아니라 이제는 부산미식주간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부산의 대구, 숭어, 미역, 김, 대파, 붕장어가 제대로 된 요리법을 만나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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