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도시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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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글로벌화로 로컬 가치 더 높아져
빈집으로 새로운 가치 창출 사례
상상력 통해 살고 싶은 지방 가능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는 공간과 시간에 관계없이 여러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하는 시대의 최대 산업은 ‘관광’이 될 것이라고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로 유명한 하라 켄야 일본디자인센터 대표는 도시와 공간포럼 2022 ‘뉴노멀과 엔데믹, 도시 공간의 미래’ 기조강연에서 발표했다.

첨단 디지털 장비만 있다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필요한 정보를 찾고 소통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앉은 자리에서 전 세계를 둘러볼 수도 있고 세계를 누비면서 일을 할 수도 있다. 2030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이동할 것이라는 하라 켄야는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로컬의 가치는 높아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똑같은 도시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주는 곳에서 머물기를 원한다. 토지의 장점을 재해석하는 것, 지역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고 콘텐츠와 사람, 부동산 등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연결해 로컬문화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이 떠나는 농어촌에는 떠나고 남는 빈집이 있습니다.’ (주)다자요의 남성준 대표가 빈집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다자요는 제주에서 시작한 빈집을 활용한 유일한 합법 숙박 모델이다. 여기서 합법이 중요한 이유는 원래 펜션 등 숙박업을 하려면 주인이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빈집이라는 이유로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법을 바꾸고 특례 범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유휴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는 다자요만의 빈집프로젝트가 통했기 때문이다.

빈집의 주인은 개발이 되어 가치가 오르기를 막연히 기다리며 다른 곳에 살면서 당장의 투자는 부담스러워한다. 아니면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도 고향의 집을 팔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남 대표는 빈집 주인을 찾아 10년 이상 장기 무상임대를 이끌어 냈다. 대신, 집 주인에게 집을 잘 관리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자요는 빈집을 셀럽(전문가)들의 취향이 담긴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룸을 꾸민 제품들은 대기업부터 지역의 작은 업체들 제품으로 숙박을 통해 이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룸이 쇼케이스로 변모해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다자요에서 머물다 간 이들은 그곳에서 사용했던 제품들을 바로 구매할 수 있다. 공간 매출의 1.5%는 마을에 기부한다. 비대면 보안 시스템, 에너지 절감을 위한 IoT 시스템, AI 인식을 통한 사물감지 시스템 등 빈집이 로컬, 과학기술과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지금은 남 대표가 빈집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무상으로 임대해 주겠다며 빈집 주인들이 찾아 온다. 다자요처럼 숙박업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많은 빈집을 살고 싶은 집,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검증됐다.

빈집은 쇠퇴하는 지방 도시의 단면이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빈집이 빈집이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 문제와 산업구조의 문제, 더불어 정주 여건 개선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올해 8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은 무주택 서민 등 내 집 마련과 주거 성향 수요에 부응할 수 있도록 우수 입지에 양질의 주택을 충분히 공급해 주택 시장의 근본적 안정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민간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와 향후 5년간 270만 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과도한 규제 등으로 양질의 주택이 공급되지 못했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라는데, 그동안 부동산 시장의 문제는 투기 과열로 인한 집값 상승에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자재값 상승과 은행 금리 인상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면 빈집 정책을 재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메타버스 안에서 점점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실 세계와 가상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자신의 라이프나 미래가 가상공간에서 더 활발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나아가 가상공간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도시는 도시계획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더해져 만들어진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수성에 공간적 상상력을 더해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로컬의 가치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시의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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