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신포에서 부산 넘어온 진짜 북한음식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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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13년 새터민 운영 모란봉음식점
메뉴 대부분 ‘100% 북한식’으로 구성
옥수수황태국수‧함흥냉면‧야채만두에
아바이순대‧가자미식해‧콩고기밥‧두부밥

북한에서 살 때 해먹던 음식을 부산에서 만들어 파는 모녀가 있다. 장사만 하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에도 열정을 쏟아 주변에서 호평을 받는 사람들이다. 부산지하철 1호선 온천장역 4번 출구 인근 금정구 오시게길에 자리를 잡은 ‘모란봉음식점’의 황현정 대표와 딸 김수형 씨가 바로 그들이다.


아바이순대와 가자미식해. 아바이순대와 가자미식해.

황 대표는 동해에 붙은 북한 함경남도 신포 출신이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서 5년간 지내다 2009년 부산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복지시설에서 일했지만 2018년 딸이 합류한 이후 음식점을 시작했다.

황 대표는 “복지시설에서 일하다 보니 야간근무가 많아 딸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남북에서 헤어져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같이 지낼 수 있는 일을 고르다 식당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 살 때 어머니는 물론 이모도 요리를 잘 했다. 두 분 어깨 너머로 음식을 배웠다. 고향에서 명절 등에 먹던 음식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일부 음식만 빼고 대부분 100% 북한 방식대로 요리한다.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덧붙였다.

모란봉음식점 메뉴는 대부분 북한 음식이다. 옥수수 황태국수, 함흥냉면, 야채만두, 아바이순대, 가자미식혜, 콩고기밥, 두부밥 등이다.


옥수수 황태국수. 옥수수 황태국수.

황태국수는 신포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음식이다. 황 대표는 “신포는 북한에서 명태가 가장 많이 나는 지역이다. 명태 철이 되면 다른 지역에서 작업을 하러 많이 온다고 한다. 황태가 흔하다. 튀김이나 찜도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

황태국수 육수는 황태 대가리와 뼈에 파, 양파, 마늘을 넣어 끓여 만든다. 면은 옥수수 가루로 만든다. 밀가루는 많이 먹으면 느끼해지지만 옥수수는 깔끔하고 개운하다. 육수에 면을 넣은 뒤 참기름으로 볶은 찢은 황태 살과 마늘, 매운 고춧가루 등으로 볶은 고사리를 고명으로 얹는다.

황태국수는 육수는 부드러우면서 매우 고소하다. 황 대표의 설명대로 옥수수 면은 담백하면서 밀가루보다 고소하다. 고사리는 볶은 덕분에 특유의 고소한 맛과 향이 강하면서 약간 매콤하다.


함흥냉면. 함흥냉면.

모란봉음식점의 함흥냉면 육수 맛은 독특하다. 우리나라의 다른 냉면 집에서 내놓은 육수와 매우 다르다. 달고 시원하다. 처음에는 너무 단 게 아닌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먹을수록 단맛은 사라지고 시원하고 상큼한 맛이 강했다.

북한에서는 함흥냉면 육수를 따로 끓이지 않는다고 한다. 찬물에 설탕, 식초,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는 게 고작이란다. 겨울에는 동치미에 면을 넣어 먹는다. 평양냉면의 경우 닭고기로 육수를 만든다. 모란봉음식점은 부산 사람의 입맛을 고려해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로 육수를 끓인다. 감초 등 한약재도 일부 넣는다.

면은 감자전분과 고구마전분을 반반씩 섞어 만든 반죽으로 뽑는다. 시장에서 사온 면이 아니라 가게에서 황 대표가 직접 뽑아낸다. 그래서 면은 매우 쫄깃하고 탱탱하다. 일부 냉면가게에서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면의 질감이 떨어지지만 이곳의 면은 그렇지 않다.


야채만두. 야채만두.

야채만두도 매우 특이하다. 겉모습만 보면 송편처럼 보인다. 실제로 겉의 피는 송편처럼 매우 쫄깃하다. 북한에서는 야채만두 피를 만들 때 양강도의 언 감자전분가루를 사용한다. 황 대표는 양강도 감자전분가루를 구할 수 없어 강원도에서 가져온다. 북한에서는 피를 두껍게 만들지만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해 북한보다는 얇게 만든다. 만두 속에는 양배추, 대파, 땡초 등에 간 삼겹살을 섞어 넣는다. 북한에서는 고기를 다져서 넣기 때문에 씹는 맛이 좋다고 한다. 모란봉음식점에서 파는 야채만두의 정식이름은 ‘남북통일 야채만두’다. 어서 통일을 이뤄 고향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야채만두는 꽤 맛있다. 피가 송편처럼 떡 느낌이 나면 이상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자가 먹기에는 따뜻할 때보다 약간 식었을 때 맛이 더 좋게 느껴진다.


아바이순대와 가자미식해. 아바이순대와 가자미식해.

아바이순대는 구포시장에서 돼지창을 사와서 손질해서 쓴다. 북한식 순대에는 찹쌀이 들어가는데 모란봉음식점에서도 찹쌀, 시래기, 선지, 대파, 양파 등을 넣는다. 말 그대로 100% 북한식이다. 순대는 맵지 않고 약간 간간한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으로는 담백하고 개운하다. 우리나라 순대처럼 당면 대신 밥이 씹혀 식감이 새롭다.

아바이순대는 가자미식해와 함께 나온다. 두 음식을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기 때문이다. 모란봉음식점의 가자미식혜는 지금까지 먹어본 가자미식해 중에서 최고다. 황 대표는 “원래 식해는 신포에 붙어 있는 북청에서 많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가자미식해에 사용하는 가자미는 손바닥만 한 것을 사온다. 가자미를 손질해서 소금을 쳐 반건조한다. 여기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엿기름을 넣어 삭힌다. 가자미가 60% 정도 삭혀지면 무 말랭이보다 약간 두껍고 길게 자른 무를 넣어 다시 삭힌다. 이렇게 해서 한 달 정도 보관하면 맛있게 익는다. 황 대표는 “추운 북한에서는 가자미식해를 만들어 먹으려면 두 달 정도 걸린다. 부산은 날씨가 따뜻해서 한 달 만에 잘 삭는다.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모란봉음식점의 가자미식해에서 가자미는 잘 삭아 부드럽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 반대로 무는 상당히 아삭하다. 순대는 약간 삼삼한 반면 가자미식해는 매콤얼큰하기 때문에 둘을 함께 먹으면 딱 좋다.


인조고기밥. 인조고기밥.

인조고기밥은 콩에서 기름을 빼서 피를 만들고 안에 쌀밥을 넣은 음식이다. 피는 쫄깃하면서 매콤하고 쌀밥은 삼삼해 먹기에 딱 좋다. 두부밥은 유부초밥과 비슷하다. 유부 대신 두부로 피를 만들었다. 밥에는 고춧가루 기름에 들깨, 대파를 넣은 양념을 발라 매콤상큼한 맛을 더했다. 인조고기밥과 두부밥은 북한에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할 대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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